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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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이야기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1.12.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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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그림그리기 〈37〉
천석성 <고향풍경>.

어르신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재미있다. 천석성 어르신에게 장창주 어르신이 이야기를 건네셨다. 

천석성 어르신은 옛날 젊었을 때 살던 초가집을 그리고 계셨다. 초가집 뒤에는 서낭나무 같은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본채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작은 초가 한 채를 또 그리셨다. ‘측간’이라고 하신다. ‘뱀도 한 마리 그리지?’ 장창주 어르신은 뱀이 집의 주인이라는 말씀이셨다.  

옛날 중학생 때 보았던 〈장마〉 라는 드라마 속의 장면이 떠올랐다. 윤흥길 소설가의 작품을 극화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질척 질척 내리는 빗속에서 지나가는 구렁이를 향해 비손 하던 부인의 모습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 천석성 어르신이 이야기를 받으셨다. ‘지붕 아래 새 구멍에 손을 넣으면 차갑지. 뱀이 그 속에 있는 겨’ 듣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졌다. 새를 잡으려고 초가지붕 아래 구멍에 손을 넣었는데 뱀이 거기 있더라는 말씀이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고 구멍에 팔뚝을 집어넣은 상태에서 느끼는 싸늘함의 공포는 어떠했을 것인가! 뱀은 겨울을 나기 위해 새의 알을 먹는다고 하신다. 

천석성 어르신은 뱀을 그리지 않으셨다. 냇물과 산, 하늘과 해를 그리셨다. 그냥 평화로웠던 옛날의 어느 한 때를 그리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장창주 어르신은 뱀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옛날에는 뱀을 집주인으로 여겨 함부로 죽이거나 해를 가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집주인인 뱀을 해치면 집안에 흉한 일이 생긴다고 하셨다. 구렁이가 무사히 담을 넘어 나가도록 비손 하던 극 중 부인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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