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고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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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고독하기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3.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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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다. 집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밥도 혼자 먹고, 게임도 혼자 하고, 공부도 혼자 한다. D가 생각하는 가족은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자신이 말을 하면 집안이 시끄러워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고립감을 선택하며, 조용하고 소심한 행동은 만성화된 성격으로 느껴진다. D는 태블릿에서 그림 어플을 깔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다. 그림을 그리고 지우다 보면 마음속에 억압된 다양한 감정들이 표현돼서인지 평온함을 경험한다.

D는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를 겪었다. 그 충격으로 말과 행동이 거북이처럼 느려졌고,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경험하면서 더욱 고립된 생활로 치닫게 됐다. 이때부터 게임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고, 낮과 밤이 바뀌었으며, 성적은 자꾸만 떨어지고, 부모님과의 갈등은 더욱 고조됐다. 활동적이고 부지런한 부모님은 D의 행동들을 반복적으로 지적했고, 누적된 잔소리는 독화살이 되어 커다란 상흔으로 자리했다. 그래도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집과 떨어진 기숙학교로 자진해 진학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집에 와 있는 시간이 늘면서 부모님의 거친 언어 폭력에 자신을 비하하는 감정들이 반복적으로 잦아졌다.

자기비하는 외부의 공격성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방어기제이다. 이런 방어기제는 우울증(depression)과 피학증(Masochism)에 주로 나타나며, 자신을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 수도 있다. 또한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의식적 활동을 위축시켜 올바른 판단을 저해시키고, 스스로 고독을 즐기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향이 건강한지 아닌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나 훈련이 외부 전문가를 통해서 매우 필요하다고 하겠다.

《달과 공주》라는 동화책은 상담이나 심리치료에서 공감(empathy)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달을 갖고 싶어 하는 공주에게 왕이나 왕비, 그리고 덕망 높은 학자들은 달을 따올 수 없다고 달랬지만, 공주와 친하게 지내던 광대는 공주로 하여금 적극적 상상(active imagination)을 통해 공주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인도하고, 공주가 말한 황금빛 구슬을 만들어줌으로써 공주가 뛸 듯이 기뻐했다는 내용이다.

광대처럼 대상자와 공감을 잘하는 A상담자는 D가 그림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감정을 순화시키는 행동이 강점이라고 생각됐다. 이에 상담 시 자유 연상(free association)을 활용해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상(images)을 태블릿에 표현할 수 있도록 안내했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무의식에 내재돼 있던 감정들을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도록 인도했다. 이러한 반복 과정을 통해 D가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즐거웠던 추억들이 회상되고, 부모님의 사랑을 되새김질하는 재경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D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시도하고, 거실에 앉아 함께 TV를 시청하는 등의 작은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적극적 상상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출발해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이미지들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적극적인 행위이지만, 상(images)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인위적 행위는 아니다. 다만 무의식에 잠재된 부정적 정서와 이미지를 의식화함으로서 재경험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 루이스 프란츠(Marie-Louis von Franz)의 적극적 상상의 네 단계를 소개한다. 여러분들도 한 번 해보시라. 첫째, 자아의 복잡한 생각(mad mind)을 비운다. 둘째, 무의식의 환상 이미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구체화시킨다. 셋째, 본 이미지를 그리거나 이름을 붙이고 언어로 구체화시킨다. 넷째, 적극적 상상을 통해 얻어진 결과들을 삶 속에 적용한다.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기보다는 혼자 사색하거나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고독과 혼자만의 사색이 정신적인 성숙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교류가 없이 고독의 껍질을 보호막처럼 단단하게 쌓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버린다면 건강한 사회인으로의 발달에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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