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주먹 속의 얼음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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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주먹 속의 얼음 조각”
  • 윤정용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0.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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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극작가 톰 스토파드는 《사랑의 발명》(1997)에서 실존 인물 앨프리드 하우스먼과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들의 문학과 사랑을 묘파하고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우스먼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시를 번역한 고전학자이자 《슈롭셔 젊은이》(1896)라는 시집을 쓴 시인이다. 반면 와일드는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1890)과 희곡 《진지함의 중요성》(1895)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 후기 영국문학사에서 유미주의 혹은 탐미주의를 선도한 대표적인 문인이다. 하우스먼과 와일드가 실제 만났는 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스토파드는 여러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랑의 발명》에서도 ‘과거의 현재화’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극작 방식을 통해 두 사람의 만남을 극화한다.

《사랑의 발명》의 극적 주제는 하우스먼과 와일드의 ‘조금 특별한’ 사랑으로 수렴된다. 하우스먼과 와일드 모두 동성애자였지만 사랑에 있어 둘은 사뭇 달랐다. 하우스먼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사랑을 숨기려 애쓴 반면 와일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의 사랑을 드러냈고 과시했다. 하우스먼은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해 모지스 잭슨에게 첫눈에 반한다. 잭슨과 절친한 친구로 지내다가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학업도 포기한 채 잭슨의 곁에 머문다. 그는 잭슨에 대한 사랑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평생 혼자 간직한다. 그는 사랑 대신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 번역과 연애시 쓰기에 전념한다. 그 결과 그는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획득한다. 즉 그는 고전 문학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를 받고 《슈롭셔 젊은이》라는 베스트셀러 시집의 시인이 된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후회한다.

와일드는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16세 연하의 옥스퍼드 대학생 앨프리드 더글러스와 동성애에 빠져들 정도로 자유분방한 삶을 구가한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앨프리드와 거리를 활보하고 호텔을 드나든다. 

그는 “동성애는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된 아름답고 고결한 애정 행위다”라고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앨프리드의 아버지 퀸스베리 남작의 폭로와 고소로 와일드는 법정 소송에 휘말렸고 결국 2년의 강제 노역형을 선고받아 레딩교도소에 수감된다. 수감 중에도 그는 앨프리드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며 자신의 사랑을 숭고함을 역설하지만 앨프리드는 그를 외면하고 다른 여인과 결혼한다. 와일드는 연인뿐만 아니라 가족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고, 심지어 국적까지 박탈당한다. 출소 후 그는 파리로 망명하고 그곳에서 가난과 지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앨프리드와의 사랑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 사랑으로 그가 이룬 문학적 성과는 송두리째 부정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사랑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 “내 심장은 당신의 사랑으로 피어난 장미입니다”라고 노래한다. 《사랑의 발명》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음을 앞둔 늙은 하우스먼과 죽음을 앞둔 젊은 와일드는 예술과 사랑을 주제로 긴 대화를 나눈다. 주로 와일드가 대화를 이끌어간다. 그는 “진리란 아주 별개의 것이며 상상력의 산물”이고 “예술이란 전형적인 것이 아닌 예외적인 것을 다루는 것”이라고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한다. 더 나아가 그는 “예술은 그것의 주제에 종속될 수 없으며,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전기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연애관을 “친구를 배반하는 일은 사소한 것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배반은 평생의 후회입니다”라고 요약한다. 그에게는 사랑의 대상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그는 결코 자신의 사랑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우스먼이 와일드의 삶을 “일종의 연대기적 실수”라고 비판하자 와일드는 “쏟아지는 광채가 되지 못하느니 차라리 추락한 로켓이 더 나은 법”이라고 응수한다. 그는 하우스먼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고집스럽게 슬픔 속에서 사는 사람들로 지칭하고 단테의 시를 인용해 그들을 위한 자리가 지옥에 마련되었다고 반박한다. 와일드는 하우스먼의 명예로운 삶을 “수치, 비겁함, 굴종”의 삶이라고 요약한다. 

그는 무릇 “예술가는 거짓말을 해야 하고, 속임수를 써야 하고, 남을 현혹해야 하고, 자연한테 불성실해야 하며, 역사에 대해 경멸적이어야 한다”라고 역설한다. 

하우스먼은 와일드가 남기고 간 말을 되뇌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는 젊은 시절의 자신에게 “난 그대를 위해서 죽었어야 했네, 그런데 난 그런 행운을 결코 갖지 못했지! 실제로는”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

박상영의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2021)를 읽는 내내 《사랑의 발명》의 하우스먼과 와일드의 대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랑의 발명》의 하우스먼과 와일드가 《1차원이 되고 싶어》의 ‘나’, 윤도, 태리, 무늬, 희영, 태란, 나미에 등에 겹쳤는지도 모른다. 《1차원이 되고 싶어》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복잡다단한 여러 겹의 사랑이 펼쳐진다. 입시 경쟁에 치여 사는 그럭저럭 공부를 잘하는 소심한 ‘나’는 윤도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윤도에 대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 

반면 ‘나’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태리는 ‘나’를 좋아하고 있고 그런 마음을 ‘나’에게도 남들에게도 숨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태리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나’는 태리와 엮이면 피해를 볼까 두려워 그를 의도적으로 피한다. 태리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심지어 그에게 모욕감을 준다. 하지만 태리는 ‘나’의 성적 취향이 자신과 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에게 더욱 집착한다.

학원에서 만난 무늬는 윤도에 대한 ‘나’의 마음을 알아채고 그것을 빌미로 ‘나’에게 담배 심부름 등 온갖 궂은일을 시킨다. ‘나’는 무늬가 자신의 동성애를 ‘아우팅’할까 두려워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다가 나중에는 그녀와 절친이 된다. 무늬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동성을 좋아하는데 ‘나’에게 그 사실을 고백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미에, 정확하게는 나민혜다. 그런데 나민혜가 좋아하는 사람은 태란, 즉 태리의 누나다. 무늬가 나미에 때문에 괴로워하자 ‘나’는 무늬와 함께 나미에가 사는 집으로 쳐들어갔다가 무늬, 나미에, 태란의 얽히고설킨 연애사의 전모를 알게 된다.

사실 ‘나’ 말고 윤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또 있었는데 바로 희영이다. 학원 교실에서 ‘나’가 윤도에게 몰래 초콜릿을 선물할 때 희영도 윤도에게 초콜릿을 선물했는데 그 광경을 무늬가 목격한 것이다. 희영은 태리의 첫 남자친구이자 그의 절친이다. 희영은 태리에게 차인 후 윤도를 마음에 두었고 학교 축제 때 윤도에게 사랑을 공개적으로 고백한다. 하지만 ‘나’는 윤도에 대한 사랑을 숨기고 있다. 하지만 윤도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아우팅’되고 만다. 

‘나’는 윤도에게 집착하지만 윤도는 ‘나’를 외면한다. ‘나’가 태리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태리는 그런 ‘나’를 위로하며 함께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나가고 권유하지만 ‘나’는 태리에게 또다시 큰 상처를 주고 만다. 희영은 ‘나’에게 상처를 받은 태리를 위로하고 그와 함께 ‘나’에게 복수한다. 태리와 희영의 복수로 ‘나’의 “봉인해놨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요컨대 《1차원이 되고 싶어》 의 주요 서사는 ‘나’의 봉인된 기억이 풀어지는 과정이다.

《사랑의 발명》에서 와일드에게 ‘보시’, 즉 앨프리드는 사랑의 환희와 그로 인한 절망감을 동시에 안겨준 대상이다. 와일드에 따르면, 앨프리드는 “버릇없고 복수심 강하고 매우 이기적이며 그다지 재능 없는” 존재이면서도, 자신을 있게 만든 자이자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는 자이다. 《1차원이 되고 싶어》에서 윤도는 ‘나’에게 앨프리드와 같은 존재이다. 동시에 ‘나’는 태리에게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태란은 나미에에게 그런 존재이고, 나미에는 무늬에게 그런 존재이다. 

한마디로 사랑은 “쥘 수도 놓아버릴 수도 없는 [어린아이의] 주먹 속의 얼음 조각”과도 같다. 이는 소포클레스의 《아킬레스의 사랑》 중 유일하게 후세에 전해져 내려오는 표현이다. 어린아이는 빛나는 얼음 조각이 신기해서 덥석 손에 쥐지만 예상치 못한 차가움에 놀란다. 그 차가움에 손을 털고 싶지만 얼음 조각의 투명함과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손을 펼 수도 쥘 수도 없다.

얼음 조각의 빛남과 차가움은 마치 사랑을 할 때 수반되는 기쁨과 고통이라는 이율배반적 요소를 의미한다. 이는 동성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사랑에 적용된다. 전술했던 와일드가 하우스먼에게 말했던 말의 맥락을 조금 비틀어 말하자면, 사랑은 “수치, 비겁함, 굴종”을 견디는 것이다. 

사랑은 따르는 게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발명은 ‘이상화된 성공’이 아니라 ‘예정된 실패’인지 모른다. 실패가 두려워 포기하면 결국 후회만 남게 된다는 것을 《사랑의 발명》의 하우스먼과 《1차원이 되고 싶어》의 ‘나’가 잘 예거한다. 거듭 말하지만 사랑은 기쁨과 황홀함을 느끼는 동시에 “수치, 비겁함, 굴종”을 견디는 것이다.

윤정용 <문학평론가·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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