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평야와 철마산의 기개,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금마’
상태바
드넓은 평야와 철마산의 기개,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금마’
  • 황희재·정다운 기자
  • 승인 2022.10.23 08:3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희재의 홍주낭만기행 ④발전의 잠재력을 가진 금마면

한 작가는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형식인 여행기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다양한 실패담과 예상치 못한 역경들이 담겨 있다. 가장 효율적인 일정을 세워 바삐 취재를 다니던 홍성이 아닌 땅에 발을 딛고 천천히 둘러본 홍성, 기자의 시선이 아닌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홍성을 새로운 목소리로 들려주고자 한다. 홍성의 11개 읍·면을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하며 경험한 일들과 방문한 장소들, 느낀 점들을 기록했다.<편집자주> 

 

여행자 황희재의 시선


2주간의 수습기자 교육을 마치고 서울에서 돌아온 정다운 기자가 홍주낭만기행의 길동무로 합류했다. 금마 여행은 지난주 목요일 저녁에 시작해 금요일 점심 무렵까지 진행되는 일정이었다. 이미 해가 저문 저녁시간, 면지역에 불이 켜진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문을 연 식당이 하나도 없을까 걱정돼 금마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먹을거리를 구입했다. 숙소에서 마실 막걸리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마트 영업시간은 오후 8시까지였다. 마트 점원이 추천해준 금마면의 한 식당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어두운 시골길로 차를 몰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사내 놈 둘이 차안에 있으니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귀신이야기로 흘러갔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사후세계와 인생무상을 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켰다. 주택 대문 앞에 묶여 있는 개 한 마리가 큰 소리로 짖어댔다. 대문 밖으로 할머니가 나왔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기나긴 수다와 함께한 락교와 막걸리.

조금 더 길을 해매다 숙소에 도착했다. 잠시 누워 쉬려고 했으나 길동무는 곧바로 막걸리와 안주를 테이블에 올렸다. 안주는 식초물과 소금에 절인 염교 장아찌(락교)였다. 한번 시작된 수다는 그칠 줄 모르고 자정 너머까지 이어졌다. 청소년 시절 록 밴드 활동을 했다는 정 기자는 나와 음악 취향이 꽤나 비슷했다. 이날 밤 20세기 최고의 기타리스트는 에릭 클랩튼으로 정리됐다.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에릭 클랩튼의 걸작 ‘Layla’의 화려한 도입부를 입으로 흉내 내는 길동무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조건적인 동조뿐이었다.

다음날 엄청난 숙취와 함께 잠에서 깼다. 빈 막걸리 병이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길동무는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간이냉장고에 들어있던 생수 2병을 전날 모두 마셔버린 탓에 수분 보충이 시급했다. 

숙소에서 나온 우리는 철마산 3·1공원으로 향했다. 각자 흩어져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 소풍 온 아이들과 약수통에 물을 받으러 온 노부부가 렌즈에 담겼다. 3·1공원 옆으로 아름다운 전원주택단지도 눈에 들어왔다. 
 

화양리 화전마을.

마지막 방문지인 화양역으로 이동했다. 화양역으로 향하던 중 우연히 마주친 어느 골목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길목을 따라 줄지어선 오랜 건물들이 언덕 위 철로를 앞에 두고 덩그러니 놓여있는 형국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앞에 펼쳐진 을씨년스러운 골목 풍경은 우리의 심미안을 자극했다. 골목 귀퉁이에 있는 폐건물의 창문에는 ‘양념통닭’, ‘후라이드치킨’과 같은 글씨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

골목 초입에서 사진을 촬영하던 정 기자에게 동네주민들이 다가왔다. 화양리 화전마을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과거 골목 끄트머리에 화양역사 건물이 있었다는 사실과 역전 상권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옛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줬다.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는 길에 철도와 옛 골목길을 테마로 화전마을에 관광지를 조성한다면 대박이 날 것 같다는 둥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점심 메뉴는 닭개장이었다. 미각이 검증된 지인에게 추천받은 집이었기 때문에 역시 맛이 일품이었다.
 

철마상.

여행자 정다운의 시선


금마면은 천안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 내게 다소 생경한 지역이다. 지역신문기자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금마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선배와 함께 준비한 이번 기획 취재는 내게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퇴근 후 선배와 함께 찾아간 금마의 밤은 고요했다. 우리는 해가 짧아진 탓에 사진을 확보할 수 없다는 핑계로 하나로마트에 들러 술부터 샀다. 마트가 오후 8시에 닫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의 판단력을 자화자찬했다. 

칭찬도 잠시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ㅅ’ 고깃집으로 향했다. 식당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도시에서 볼법한 깔끔한 내·외관, 자리는 만석, 모두 젊은 직원들로 구성돼 활기가 넘쳤다. 고기의 맛은 일품이었다. 가게를 나서는데, 찌개거리라며 돼지고기를 챙겨주는 직원의 모습에 금마의 인심이 느껴졌다. 차를 몰고 봉서저수지로 향했다. 수면 위에 달빛이 번져 있었다. 사진을 남기려 했지만 어두워서 포기했다. 

금마면 소재 무인텔.

숙소는 금마면 소재 무인텔로 잡았는데, 자리가 거의 꽉 차 하마터면 비박을 할 뻔했다. 다행히도 두 자리가 남아있었다. 선배와 나는 짐을 풀고 락교에 홍주막걸리 한잔하며, 음악 얘기, 세상 얘기에 취해 잠들었다.

아침이 밝아 온 금마는 어제와는 다른 풍경으로 우리를 반겼다. 신선한 공기와 함께 황금들녘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피곤했지만, 피로가 가시는 풍경이었다. 숙소를 나선 우리는 철마산 3·1공원으로 향했다. 추모비 앞에서 묵념과 함께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184명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겼다.
 
소풍 온 아이들의 목소리에 이끌려 올라간 산책로엔 들꽃이 피어있었다. 정상에 다다르자 우뚝 선 철마정(정자)과 철마상(동상)이 보였다. 철마정에 올라 내려다 본 금마의 모습은 힘이 넘쳤다. 봉화대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선조들의 기개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듯 했다.
 

산에서 내려와 무인역인 화양역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몇 번이고 길을 잘못 들어 한 마을에 들어갔다. 복고풍 감성이 느껴지는 골목이었다. 나는 골목 구석구석을 돌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때 동네주민이 다가와 “뭐 때문에 사진을 찍고 계슈? 어디서 오셨슈?”라며 정겨운 사투리로 내게 물었고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동네 주민들에 따르면, 우리가 차를 세워둔 자리가 원래 화양역 입구였단다. 과거 골목에서 슈퍼를 운영했던 한 주민은 “명절에 하루 300~500만 원도 거뜬히 팔았다”며 “화양역이 무인역이 되면서 동네가 많이 쇠퇴했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도 없고 동네가 다시 번성하긴 힘들 것 같다”고도 했다. 그렇게 주민들의 속사정을 들으며 40여 분을 대화했다. 아쉬움과 회한, 기대감 등 많은 것들이 뒤섞여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시골에 홀로 남아 대문을 지키는 우리 할머니를 닮아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지역신문기자의 마음 한편에는 찡한 무언가가 남았다. 생경했던 금마가 다시 보이는 이유는 조용하지만 굳센 이들의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철마정.
여행 이튿날 아침 숙취를 달래준 해장국.
철마산 3·1공원에 핀 들꽃 샤스타데이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홍주짱 2022-11-04 10:39:04
넘넘 재미있는 기사 잘 읽었읍니다 ^^~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