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날들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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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날들의 흔적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3.12.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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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 〈45〉
조영자 〈초롱꽃〉 36×26㎝ 수성싸인펜.
조영자 〈초롱꽃〉 36×26㎝ 수성싸인펜.

손 떨림이 심해서 그림 그리기를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76세에 100세의 시어머니를 봉양하시는 어르신이었습니다. 손이 떨려 그림 그리기를 할 수 없다고 한사코 뒤로 빠지시더니 어느 날은 스케치북에 한가득 그림을 그려서 가져오셨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쭤봤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손 떨림 증상이 덜한데 호기심이 생겨 한 번 해보기로 한 것이 스케치북 한 권을 다 쓰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손 떨림은 심리적인 원인이 더 컸던 것입니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손 떨림 증상이 있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손 떨림만이 아니라 보청기에 돋보기, 마스크까지 쓰고도 그림을 그리시고 계십니다. 허리를 다친 적이 있었는데 그 후유증으로 조금만 책상에 앉아 있어도 다리가 부어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런 분에게 그림 그리기는 사치인 것 같아 말씀드리기조차 죄송합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그림을 그리십니다. 그림 그리기가 재미있다고 하십니다. 

재미를 느낀다면 무엇이든 하시는 게 좋습니다.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무력감, 우울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림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그리고 칠하시면 됩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색채와 기호로 그리다 보면 기분이 나아지고 속이 후련해집니다. 살아 있는 날들의 유일한 흔적이 될 것입니다. 재미를 느낀다면 그림 그리기를 계속하라고 권하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고 희망을 가지시라는 뜻입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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