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의 정치 테러
상태바
미성년자의 정치 테러
  • 이상권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2.01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살인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해 사회적 공포상태를 일으키는 행위를 테러(Terror)라 하고, 이에는 사상적 테러, 정치적 테러가 있고, 특정한 목적이 없는 테러도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1949년 김구 임시정부 주석 암살사건,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 2006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커터칼 테러사건 등의 주요 정치적 테러가 있었다. 한편 최근에 발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등산용 칼 테러가 정치적 테러 사건인 것은 분명해 보이며, 연이어 벌어진 배현진 국민의힘 국회의원에 대한 돌멩이 테러가 정치적 테러에 해당 할 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범인인 15세 미성년의 소년이 “배현진 의원 맞아요?”라고 확인한 다음에 테러를 가했다는 언론보도에 비춰 보면 정치인에 대한 테러인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정치적 의견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정치집단 사이에 혐오와 증오가 오고가면 자연스럽게 국민들 간에도 정치적 극단주의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결과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지하는 정치집단이 상대방 정치집단을 공개적으로 악(惡)이라고 단정하면, 대부분의 지지자들도 상대방 정치집단을 악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집단 간에 주고받는 혐오와 증오는 결국 대립하는 정당 지지자들 간의 혐오와 증오로 확대되어, 종국적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분단의 지옥으로 몰아넣게 된다.

정치적 테러가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정치적 이념과 신념의 차이라고 할 것이지만, 정치적 이념과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는 반드시 정치적 테러가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혹여 그러한 차이가 있더라도, 양보와 타협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사이에 두고, 이성적인 말과 글로 하는 주장이나 논쟁을 거쳐, 다수결이라는 효율적인 정치행위로 갈등을 해결함으로써, 폭력적이고도 극단적인 행위인 정치적 테러에까지는 나아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를 거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전제이다.

정치적 집단 간에 이념과 신념이 다른 것은 사람들마다 각자의 생각과 믿음이 다른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집단 간에 이념과 신념의 차이를 극복해내지 못하면, 결국 집단 간의 정치적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게 되며, 그렇게 발생된 집단적 갈등과 분쟁은 정치적 테러를 유발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 사회라고 보아도 좋다. 그렇더라도 국민들이 정치적 갈등이 분노에까지 이르러 정치적 테러에까지 나아가는 경우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최근에 발생한 두 건의 정치적 테러 사건 중 이재명 대표를 공격한 테러범은 나이라도 60대이고 상당한 기간 동안 주요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된 경력이라도 있다고 하니, 일단 자신의 판단하에 테러를 감행한 것이라고 인정해 주기로 한다. 물론 후에 판결로 진상이 밝혀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하지만 배현진 의원에게 테러를 감행한 15세의 미성년자는 정치적 테러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주머니에 돌을 넣고 두 시간 가까이 범행현장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범행을 저지르고도, 배현진 의원이 목표였던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어린 사람이 자신의 독립적인 정치적 판단하에 배현진 의원에게 테러를 감행한 것이라고는 생각해 주고 싶지 않다. 

정치에서 지지자들의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이들로 하여금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으로까지 나서도록 선동하는 주체는 바로 정치인들이다. 이들의 선동은 각종 뉴스매체를 통하여 거의 동시에 전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심지어 가짜 뉴스까지 횡행하면서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이로써 형성된 분위기는 사회를 불신과 분노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집단적 갈등을 촉진시켜 화합과 통합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폭력까지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오늘날 정치인은 공개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인물로 각종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며, 혐오와 증오 및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

법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 또한 현실적으로도 자기결정권이 결여됐거나 부족한 어린 학생으로 하여금 정치적 테러를 감행하도록 방치한 것이 이 나라 정치인들이다. 아니 더 나아가 정치적 테러까지 유도하는 혐오와 증오의 정치판을 만들었고, 만들어 나가고 있는 자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입만 열고 성명서만 내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끌어내리고, 범죄집단 취급하고, 거짓 뉴스와 음모론을 퍼뜨려 국민들에게 혐오와 증오의 악심(惡心)을 심어주는 정치인들! 그런 저질의 정치로 정권을 잡겠다는 추잡한 속내! 그것이 상대 정치세력과 정치인에 대한 테러를 부추기는 사실상의 교사범죄였음을 고백하고, 속죄하며 자숙해야 할 것이다.

미성년자의 정치테러에는 부모세대의 책임도 있다. 2008년 광우병파동 당시 젊은 여성들이 유모차에는 아기를 태우고, 걸을 수 있는 아이는 손을 잡고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보고 듣는 것으로부터 반드시 배우는 것이 있다. 시위 현장에서, 또 아이들의 집안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웠는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특정 정치적 이념을 과도하게 주입하는 행위는 아동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 정치적 테러에 미성년자가 관련되는 사건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상권 <변호사, 전 국회의원, 칼럼·독자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