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오펜하이머>(2023)의 크리스토퍼 놀란, <듄: 파트2>(2024)의 드니 들뇌브와 더불어 최근 국내외적에서 주목받는 영화감독 중 하나다. 그의 영화는 장르와 관계없이 스토리텔링의 근본 속성인 이야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예거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야기 자체로 보자면 <송곳니>(2009)는 동화, <더 랍스터>(2015)는 우화, <킬링 디어>(2017)는 신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는 역사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각 장르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상상력을 무한 확장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는 기이하고, 충격적이고, 서늘하다. 그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상상력으로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는데, 최근작 <가여운 것들>(2023)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의 특유의 무한한 상상력에 괴기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영화 <가여운 것들>은 1992년에 출간된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 《가여운 것들》은 휘트브레드상과 가디언소설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소설 《시계 태엽 오렌지》(1962)의 저자로 유명한 문학사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앤서니 버지스는 그레어를 “월터 스콧 경 이후 스코틀랜드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국내 번역본에서는 특이하게도 그레이를 ‘편집자’로 명기하고 있는데, 저자 스스로 자신이 ‘스코틀랜드 공중보건 담당관 아치볼드 맥캔들리스 박사의 젊은 시절 일화’를 편집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소설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서문, 스코틀랜드 공중보건 담당관 아치볼드 맥캔들리스 박사의 젊은 시절 일화들, 의학박사 빅토리아 맥캔들리스가 손주 혹은 증손주에게 보내는 이 책에 관한 편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비평적·역사적 주석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중간중간에 삽화들이 실려 있는데, 이 삽화들은 작품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소설 읽기를 방해하며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소설 《가여운 것들》을 원작으로 한 불온한 영화 <가여운 것들>은 당황스러움을 넘어 보는 사람을 불쾌하고 불편하게 한다.
전술했듯이 영화 <가여운 것들>은 원작 소설에서 ‘스코틀랜드 공중보건 담당관 아치볼드 맥캔들리스 박사의 젊은 시절 일화들’ 가운데 몇몇 에피소드를 서사의 큰 줄기를 삼고 있다. 원작 소설에서 벨라의 여행 경로는 ‘글래스고에서 오데사로, 오데사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지브롤터로, 지브롤터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글래스고’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과정이 ‘리스본, 알렉산드리아, 파리, 런던’으로 보다 압축적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각 경유지에서 벨라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성장한다는 점에서는 소설과 영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감독은 원작 소설을 흥미롭게 재현하면서 자신이 이전 영화에서 즐겨 구사하던 영화적 코드와 장치들을 다채롭게 변주하고 있다.
《가여운 것들》의 책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버려진 서류 더미에서 발견된 한 권의 책, 죽음에서 부활한 여자에 얽힌 기록은 과연 진실일까? 《프랑켄슈타인》의 포스트모던적 재해석.” 이 문구들은 《가여운 것들》의 성격과 내용, 그리고 의의 등 작품에 관해 많은 정보를 설명하고 있고, 이를 통해 이 작품이 앞서 언급한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헌사이자 변주라고 추론할 수 있다.
영화 <가여운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기본적으로 액자소설로서 월턴 선장이 누이 사발 부인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월턴,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괴물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삼중 구조 형식을 취한다. 월턴 선장은 화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작품을 시작하고 끝맺는다.
《프랑켄슈타인》은 낭만주의 ‘고딕 소설’의 전통을 따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일반 고딕 소설과 다르게 중층적인 의미를 지녔고, 그 때문에 발표 당시부터 지금까지 다양하게 해석 또는 분석돼 왔다. 해럴드 블룸의 ‘낭만적 자아 신화의 해석’이 대표적이다.
그는 괴물을 낭만주의 문학에서 흔한, 사회에서 추방된 낭만적 반항아 또는 전형적인 유배자의 원형으로 본다. 또 다른 지배적인 해석은 셸리 집안의 전기적 배경과 관련해 이 작품에 영향을 끼친 실제 인물을 추적하려는 시도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인조인간과 생명 창조 내지 생명 복제를 예고한 과학 소설의 효시로 보는 분석도 있는데, <가여운 것들>은 이 해석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여운 것들>은 ‘《프랑켄슈타인》에서 만약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피조물을 좀 더 따뜻하게 대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을 수 있다. 영화에서 백스터 박사는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창조물에게 대한 것과 다르게 벨라를 헌신적으로 돌보고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킨다. 그 덕분인지 벨라도 빠르게 사회화 돼가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한다. 그녀는 제국주의와 남성중심주의에 반발하고 여성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대안적 시대정신을 모색할 정도로 지적으로 완전한 인간에 도달한다.
따라서 영화 <가여운 것들>은 ‘벨라의 모험과 성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란티모스 감독의 정교한 연출과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덕분이다. <가여운 것들>은 여러 면에서 전작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를 떠올리게 한다. <더 페이버릿>에서 나타나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암투, 신분 상승의 욕구, 애정의 집착적 갈구, 라이벌에 대한 견제와 음모, 불타는 복수심 등의 감정은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데 <가여운 것들>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은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등장인물의 감정을 독특한 카메라 워크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평상심과는 거리가 먼 이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장치는 광각렌즈다. 인물을 광각렌즈로 포착해 미묘하게 일그러뜨리는 촬영 방식은 앙각의 카메라 레벨과 결합돼 더욱 그 효과를 증폭한다.
카메라 워크뿐만 아니라 독특한 무대 설정 또한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감정을 고조시킨다. 조명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빛이 닿는 공간과 빛이 닿지 않는 공간은 분명하게 분리돼 있고 이는 화면에 강력한 콘트라스트를 형성하며 뚜렷한 명암의 대비를 이룬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관객은 영화 속 등장인물의 감정에 동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여운 것들> 뿐만 아니라 란티모스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관객은 등장인물의 감정에 동화되기 어렵다. 오히려 등장인물과 감정적으로 분리되며 궁극적으로는 영화와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기존의 영화 문법 체계를 거스르는 ‘불온한’ 영화임이 틀림없다.
사전적으로 불온은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을 가리킨다. 그의 영화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확한 단어는 없을 정도로 딱 들어맞는다. 불온한 그의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불편하고 섬뜩한 기운이 길고, 진하고, 오래 간다. 그런데도 그의 다음 영화가 또 기다려지는 이유는 왜일까?
윤정용 <문학평론가·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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