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률센터 농본 활동가
칼럼·독자위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과정 생태농업과는 대도시 집중, 노동 경시, 과도한 경쟁, 엘리트 양성의 왜곡된 교육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인격 및 그들이 지닌 다양하고 고유한 개성을 존중하고 일과 배움과 생활을 통해 개인의 머리, 가슴, 손을 고루 실현시키는 전인교육, 학교 자체가 자립하는 농사마을이 되고 지역 속에 뿌리를 내리는 공동체 교육을 교육의 본질로 추구하는, 울타리 없는 풀뿌리 주민지역대학, 마을과 더불어 사는 대안대학이 되고자 합니다.” (풀무학교 전공부 문집발간모임, 《우리들의 일노래 삶노래》, 책날개에서)
이 글은 제목에 작은 학교라 적었지만, 실은 절대 작지 않은 학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주인공은 홍동‘면(面)’에 있는 2년제 대학,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과정 생태농업과(이하 풀무학교 전공부)이다. 풀무학교 전공부는 풀무학교의 전공과정으로 기존의 고등과정만으로는 농부를 키워내기 어렵겠다는 판단으로 2001년 설립됐다. 학교는 논·밭 농사뿐 아니라 목공 등 농촌 생활에 필요한 실습, 나아가 농적인 삶 혹은 농촌의 삶의 가치를 알게 하는 인문학을 가르쳐왔으며 지금까지 120여 명의 학생이 전공부를 거쳐 갔다.
그리고 2026년, 풀무학교 전공부는 개교 25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해 지난 11월에는 학교와 졸업생 그리고 마을의 이웃들이 모여 스물다섯 번째 추수감사제를 열었다. 학교 관계자뿐 아니라 마을의 수많은 이웃이 전공부가 쌓아온 시간을 축하하며 힘을 보탠 것만 봐도 전공부가 홍동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내게도 학교는 지금의 내 가족, 친구, 동료를 있게 한 아주 고마운 존재이다.
그리고 40.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숫자는 바로 풀무학교 전공부를 마치고 지역에 남은 졸업생의 숫자다. 농촌, 특히 면에 사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마을에 새로 들어온 청년 40명이 지닌 무게를. 무엇이 젊은 친구들로 하여금 학교를 찾아오게 하고, 지역에 남아 살아가도록 했을까.
《우리들의 일노래 삶노래》는 풀무학교 전공부를 거쳐 간 이들의 글을 모은 문집이다. 책에는 학교에 입학해 흙을 접하며 살게 된 경험, 시작의 설렘이 있는 봄날의 일기, 농부의 손이 돼가는 이야기, 함께 생활하며 새롭게 알게 되는 자기 자신과 새로운 관계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배우며 가르치고 가르치며 배우는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농사를 짓겠다고 하는 이들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 농사를 가르치겠다고, 그것도 대농이 아닌 소농을 키우겠다는 학교는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쓴 시기도, 글을 써 내려간 사람도, 주제도 제각각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전공부가 바라는 농부의 모습, 인간의 모습이 무엇인지 각각의 글들을 퍼즐 삼아 유추할 수 있다.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글쓴이들의 올곧은 열정이다. 빡빡한 재정, 농사와 농촌을 경시하는 사회, 세상 풍조와 다른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비난 혹은 무시 속에서도 25년을 제자리에 서서 학생들을 맞이하고, 그 학생들이 지역에 남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을 어떻게 현실에서 실천해 나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 온 학교 구성원들의 열정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농촌에 사는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귀촌인들이 많은 홍동과 같은 지역에서도 농사를 짓기 위해 오는 이들은 더 귀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농촌에서도 다양한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농촌 삶의 근본 토대는 농사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설혹 전업농이 아니더라도 작은 농지를 돌보거나,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하거나 하다못해 농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때문에 모든 농촌에는 농사를 가르치고, 농부의 마음을 일러주는 전공부와 같은 학교가 필요하다.
‘농촌 소멸’이라는 말이 남용되는 오늘날, 인구 3000여 명의 작은 면에 40명이라는 졸업생을 남긴 학교가 우리 동네에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작지만 큰 학교, 풀무학교 전공부의 25주년을 축하한다. 그리고 더 많은 농촌 각지에 수많은 ‘전공부’가 생겨나길 바란다. 다채로운 농촌과 풋풋한 농촌 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리고 어느새 농촌 생활에 익숙해져 열정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이 책 《우리들의 일노래 삶노래》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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