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남도의원
문학박사
올해 가을은 유난히도 비도 많이 왔지만, 산야의 나뭇잎은 빨갛고 노랗고 아름다웠고 오색으로 물들여진 가을 풍경은 산들이 온통 색동저고리를 갈아입은 듯이 저마다 예쁜 모습으로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들판의 억새 잎은 험한 세상을 버티면서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날카로운 인내의 칼을 몸에 간직하고 자신을 굳건하게 지키면서도 억새꽃을 환하게 피워내며 부드러움으로 하얀 머리칼을 자랑하는 모습이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지긋한 중년의 노신사를 바라보는 듯하다.
빨간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은 아름답게 가을을 단장하며 곱게 늙어가는 중년 여인의 화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랄까? 봄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을 연상한다면 분명 가을의 단풍 드는 나뭇잎은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모습이 더 정겹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가을은 흔히 사색의 계절,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하는데 올해의 초가을도 너무 더워서 기상의 이변을 느끼는 계절이었다. 나는 홀로 있는 시간에는 새소리, 바람 소리, 낙엽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야트막한 남산, 매봉재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는데 찬바람이 불어 대는 늦가을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버스는 잘 뚫린 고속도로를 속력을 내며 버스 내 스피커에서 나오는 단장을 맞춰주는 음악소리와 함께 잘도 달렸다.
차창 밖으로 11월의 남도의 풍경은 글자 그대로 만추의 서정이랄까!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 가을은 정말 장관이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떠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기분이 홀가분하고 설레는 기분이다. 우리 인생도 잠시 머물다 갈 시간적 공간적 존재이지만 이렇게 여행은 몸과 마음의 변화를 가져다주고 삶의 에너지를 북돋게 해주는 것 같다.
여행은 자기와의 떠나는 시간여행이라고도 하고 움직이는 독서라고도 하는 말도 있지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하는 광고가 언제인가 한때 유행했던 일이 있었는데 삶의 활력소를 주는 것이 바로 새로운 변화이고
안 가 본 곳으로 여행을 떠나서 나를 잊어버리고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여행이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동료들과도 떠날 수도 있고 혼자만의 여행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집이 최고다”라는 말도 있고 일상의 행복 즉 평범함이 주는 행복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떤 여행이든 떠나는 그 자체가 일상의 탈출로 변화를 시도하고 반복되는 지루함과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설렘도 안겨주면서 나를 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기에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지식을 깨닫고 알게 되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배우가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에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 라는 음악을 틀어 달라고 유언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늦가을에 떠나는 여행, 겨울 바다로 떠나는 여행은 쓸쓸함을 주는 것 같지만 내안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나를 반겨주는 것은 아닐런지!
그렇게 아름다운 계절 늦가을에 기대어 오색의 풍경과 함께하며 지나오며 나를 찾지 못하고 허겁지겁 살아온 것이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하얗게 내리는 날 겨울 바다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그 바다에는 하얀 파도와 훨훨 나는 갈매기 떼가 나를 반겨 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