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짧은 삶 살아간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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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짧은 삶 살아간 내 딸아
  • 이철이 <사회복지법인 청로회 대표>
  • 승인 2016.03.03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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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삼촌의 쉼터이야기<9>

03년 5월 어느 날 한통의 전화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며칠 전에 전학 온 우리반 아이가 며칠째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선생님과 대화를 끝내고 여학생 자취방을 찾아가 노크를 하니, 한참 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또 한번 노크하니 그때 여학생이 속옷으로 문을 열다 다시 옷 잘 입고 나오라고 하니 왜 그러냐고 한다. 상담해야한다고 말을 한 후에야 옷을 입고 나온다. 나오면서 하는 말이 “삼촌 나 학교 안다니고 자퇴할게요”라고 한다.

그럼 안된다고 학교를 다녀야하는 이유에 대해 설득을 하기 위해서 방에 들어가 상담을 하자고 하니, 방에 못 들어가게 한다. 그때 신발장에서 남자아이 운동화가 두 켤레가 있었다. 이것을 본 순간 방에 누가 있구나 생각했고 방문을 열어보니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 두 명이 속옷으로 방에 있다. 옷을 입게 하고 데리고 온 것이 이 여자아이와 나와의 인연이 되었다. 쉼터에 데리고와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지만 매일 술과 담배, 가출 등으로 나를 너무 힘들게 한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행동에 변화가 오기 시작해 중학교졸업을 무사히 마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잘 지내고 있는 찰나에 고등학교 1학년 때 큰 사고를 쳐버렸다.

이때 이 아이를 포기 할까까지 생각해 봤지만 한번 더 용서와 인내를 갖고 함께 살기로 하고는 용서를 했다. 언젠가 졸업할 때쯤에 “삼촌 상담할 시간이 필요해요”라며 결심한 표정을 보이며 말을 했다. 무슨 상담인가 하니, 대학진학에 대한 문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중·고등학교 다닐 때 너무 힘들게 해서 대학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보내고 싶지 않다기 보다는 이 아이가 대학을 가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란 고민이었다. 어떤 학과로 가고 싶냐고 물으니 무역마케팅학과에 가서 취직해 좋은 직장에 다니고 싶다고 한다. “그래, 잘 할 수 있어. 그리고 술·담배 안한다고 약속해주면 보내줄거야”라고 약속을 받아낸 후에야 대학 원서를 냈다. 며칠 후 딸아이가 싱글벙글 방방 뛰며 신나하니 대학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대학에 가서는 고등학교때처럼 행동하지 않고 학교에 잘 다니고 학과 총무일까지 도맡아 하며 대학생활을 무척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설 명절이 돼서는 며칠 후에 큰집가서 할머니께 새배인사를 드리고와도 되냐길래 차비 5만원을 쥐어주고 잘 갔다오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딸아이가가 나와 “아빠 빨리와. 아빠 빨리와”라며 말하더랬다. 꿈 자리가 좋지 않아 깨보니 새벽 3시였다.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 대뜸 딸아이에게 전화를 해보니 전화를 받지 않아 속이 탔다. 잠시 후 딸의 할머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삼촌 아이가 잘 못된 것 같아요”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달려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안흥으로 갔다. 12월의 바닷바람이 유난히도 무섭고 냉정했다. 도착한 후에 주변일대를 돌아다니며 딸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작은아버지와 5시간동안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가 속이 좋지 않다고 잠시 바람 쐬러 나간 것이다. 그게 이 아이가 세상과 마지막 작별이었던 것이다. 술에 취해 구토를 하다 바닷속으로 빠져 버린 후 5일만에 찾은 딸의 시신 앞에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고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장례식을 잘 치른 후에 쉼터에 와서 우리 딸 소지품을 정리해보니, 지난 딸과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21년의 짧은 삶을 살다가 갈 것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고 가나… 그래도 내 딸인건 변하지 않고 우리 쉼터 가족이었으니…
내딸 ◯◯야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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