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테 낮은 소리 안 듣고, 잠든 듯이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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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테 낮은 소리 안 듣고, 잠든 듯이 가야지…”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7.01.0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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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노모·74세 아들의 정유년 새해소망>

새해소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병예(95)·김세진(74) 모자의 다른 듯 같은 새해소망 속에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하다. 조 할머니는 구룡리 서구마을의 최고령자이다. 올해 아흔다섯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농사일도 거뜬히 해내고 정정하게 생활하고 계시는 조병예 할머니. 조 할머니는 태안에서 태어나 19세 때 신랑 얼굴도 모른 채 홍성읍 구룡리 서구마을로 시집와서 75년을 살고 계시다.<사진>

갓 시집온 새댁은 홍성에서 제일 무섭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호랑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호된 시집살이를 했다. 당시 시어머니가 직접 두부를 만들고 콩나물을 재배해 주면 한가득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남문 밖으로 팔러 나가곤 했다. 하루는 첫째를 임신한 상태로 여느 때와 같이 장사를 나간 할머니 앞에 갑자기 커다란 개가 나타나 위협을 해 너무 놀란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유산을 했다. 이후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21세에 큰 아들을 낳은 후 5남 2녀를 키워온 조 할머니.

하지만 32세에 뇌졸중으로 남편과 사별한 후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60평생을 오롯이 7남매를 혼자 키워온 할머니는 당시의 힘겨움은 잊은 채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다. 홍성에 살면서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오는 큰아들과 멀리 마산에 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안부전화를 하는 작은 아들. 자식들 생각해 농사지은 곡식을 보내주면 맛난 것 사드시라고 곡식 값의 두 세배 넘게 용돈을 보내주는 7남매에 대해 할머니의 쉼 없는 자랑이 이어진다.

100세를 바라보는 연세에도 조 할머니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새벽같이 기상한 할머니는 집 안팍을 돌며 주변 정리를 하고 농번기에는 집 앞 텃밭에 콩, 깨, 마늘 등 손수 농사를 지어 자식들에게 보낸다. 건강을 생각해 맵고 짠 음식은 삼가고 시원하게 백김치를 담가 밥 한 공기를 비우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 말하는 조 할머니. 조 할머니의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한 때는 마을회관에 나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 커피 두 잔에 드라마를 즐겨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이라고 한다.

“인생 뭐 있남! 자식들 행복하게 사는 모습 보며 큰 욕심 내지 말고 남한테 낮은 소리 안 듣고 목 구녕에 밥 넘길 수 있을 때까지만 살다 가면 그만이지…”

할머니와 마을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이 효심 깊은 큰아들은 집을 비우신 어머니 걱정에 한걸음에 찾아 나선다.

“평생을 허리한번 못 펴시고 7남매를 키우신 어머님께서 마음 걱정 없이 수수무탈하게 편히 사시며 100수 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효심 깊은 아들과 함께 마을회관을 나서며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할머니는 “살아 생전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라며 못내 아쉬워 하신다. 집으로 향하는 모자의 정겨운 뒷모습에서 사는 것이 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없이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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