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홀로 지낸 할아버지의 첫 차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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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홀로 지낸 할아버지의 첫 차례상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7.01.26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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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회 청소년봉사단 10년 전부터 차례 음식 대접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아이고 고마워라. 너희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30년 동안 찾아오는 이 없이 쓸쓸하고 적적하던 송창규(사진, 77) 할아버지의 집이 모처럼 분주하다. 청로회 청소년봉사단(회장 원예린) 회원들이 설 명절을 맞아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밥솥이 고장 나면서 어려움을 겪던 할아버지를 위해 봉사단원들은 새 밥솥과 라면을 들고 할아버지를 찾았다. 할아버지께 세배를 드린 단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할아버지 댁 청소를 시작했다.

송창규 할아버지가 홍성에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고향인 논산을 떠나 서울 등지를 오가며 건축 일을 하던 할아버지는 지인이 있던 홍성으로 와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에게도 소중한 가족들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지만,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던 중 아내와 작별하고 아들과도 연락이 끊긴 지 30년이 흘렀다.

“나도 젊었을 땐 인기도 많고 좋았지. 노래도 잘 불렀고 관광열차도 끌어보고 했는데,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아내와 헤어져버렸어. 아들하고도 연락이 끊겼고. 이제는 매일 방에 들어와 봐야 얘기할 사람 하나 없으니 참 외롭고 쓸쓸해. 말도 없이 지내다 보니 음성까지 변해버렸어.”

폐와 심장이 좋지 않아 스턴트 시술을 두 번이나 받고, 매일 약을 챙겨야 했던 할아버지의 고된 삶. 홀로 지낸 30년 세월동안 매 끼니 식사를 챙기는 것도 쉽지 않은 할아버지에게 제사나 차례는 상상도 못할 사치였다. 그럼에도 올해는 청로회 청소년봉사단원들의 음식 대접으로 차례를 지낼 수 있게 됐다. 할아버지는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좀처럼 꺼내 입지 않던 깨끗한 옷을 만지작거렸다.

청로회 청소년봉사단의 명절 차례음식 대접의 시작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여 년 전 청로회 이철이 대표는 청소년들과 함께 홀로 사시는 할머니 댁을 방문했는데, 할머니는 “나도 여잔데, 나도 여잔데…”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왜 우시는지 물어보자 할머니는 평생 꽃 한 송이 못 받아보고, 제사 한 번 제대로 지내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에 청로회 봉사단에서 할머니께 꽃바구니 안에 제사음식을 담아 드린 것이 계기가 돼 해마다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차례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송창규 할아버지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기분이 좋고, 정말 행복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날 할아버지 댁을 방문한 원예린(홍주고 3) 회장과 김소진(홍주고 3), 채예린(홍주고 3) 학생 등 봉사단원들은 미소를 잃지 않고 차례를 지낼 할아버지 댁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청로회 멘토 멘티 캠프에 참여하면서 봉사단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제가 첫째다보니 맘 속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언니들을 만나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 정말 좋았죠. 이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청로회 동아리 활동이 있어 봉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원예린 회장의 말이다. 청로회 봉사단은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가평에 위치한 꽃동네로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홍주고 1학년 박용민 회원은 이번 꽃동네 봉사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면서 소감을 밝혔다.

“정신적으로 아픈 꽃동네 식구들이 우리를 먼저 반겼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를 하고, 나중에는 여가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가졌는데, 낯설고 무서웠지만 함께 웃고 떠들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꽃동네에 오기 전에는 물질적인 봉사가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과 마음으로 봉사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가족들을 위해 편견을 없애는 봉사를 하기로 다짐합니다!”

사회적인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봉사를 실천하는 청로회 봉사단원들의 손길에 홍성에는 따뜻한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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