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철이 삼촌네 집인가요?
상태바
여기가 철이 삼촌네 집인가요?
  • 이철이 청로회 대표
  • 승인 2018.03.31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이삼촌의 쉼터이야기<64>

2013년 1월 하순 경이었다. 초저녁에 부부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쉼터에 찾아왔다.
“여기가 철이 삼촌네 집인가요?”
“예, 제가 철이 삼촌입니다. 저를 찾아오셨나요?”
내가 정중하게 대답하자 두 분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나는 두 분을 방으로 모시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했다. 두 분은 차를 마시고 나서 쉼터에 찾아온 이유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두 분 슬하에는 여자중학교 2학년짜리 손녀가 있다고 한다. 가영(가명)이는 일 년 전에 엄마가 음독자살을 한 이후부터 수시로 가출을 하고 그 때마다 경찰 지구대를 찾아가 손녀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며칠 전에도 가영이가 가출을 해서 지구대에 갔는데 경찰관 한 명이 “철이 삼촌을 만나보라고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이의 가정사가 궁금해 물었다.
“아이 아빠는 어디 계신가요?”
할머니는 손바닥으로 눈가를 훔치며 “아이 엄마 아빠는 이혼했어요. 그래도 가영이는 꿋꿋하게 잘 지냈는데 엄마가 자살한 것이 큰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튿날 나는 가영이를 찾아서 쉼터로 데려왔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가영이는 여중 2학년의 순진한 마음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나와 가영이는 처음 만난 날에 아빠와 딸이 되기로 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아빠라는 책임감 때문에 매일같이 가영이에게 전화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영이가 늦거나 안 들어오면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그때마다 가영이에게 전화를 해 빨리 집에 들어가도록 타일렀다. 가영이는 내 말을 잘 따랐고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입학해 기숙사에 들어갔다. 어느 날 학교에서 보호자 호출 전화가 왔다.

“가영이가 기숙사 규칙을 어기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나는 교장선생님과 생활 담당 선생님 앞에서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가영이 행동이 야속해 속도 상하고 배신감도 느껴져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선생님들께 사정사정해 술 사건은 간신히 용서받았다.    

“삼촌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가영이는 나를 배웅하며 용서를 빌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럴 수도 있어. 다음부터는 조심하거라.”
가영이는 그 뒤로 큰 말썽 없이 학교생활을 잘 했고 학원까지 다니며 지방의 한 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얼마 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가영이의 아빠가 되어 장례를 도왔다. 나는 가끔 가영이와의 만남을 생각해본다.

여중 2학년 때 가영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가영이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영이가 예민하던 청소년기에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가정과 학교에 잘 적응해 준 것이 감사하다. 가영이의 앞날에 행복하고 기쁜 일만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