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그곳의 공간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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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그곳의 공간과 삶
  • 김상구 칼럼위원
  • 승인 2019.04.11 09: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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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중순이면 홍성·예산의 산비탈에 사과·배꽃이 지천으로 핀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할 때 즈음이면 교교(皎皎)히 흐르는 달빛 아래 꽃들이 누워있는 과수원을 끼고 돌아,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볼륨을 높이며 예당저수지를 돌아보는 일은 춘정(春情)의 호사(好事) 중 호사(豪奢)라 할 수 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는 고향 호숫가를 맴돌며 ‘수선화’라는 유명한 시를 썼고, 바이런은 스위스 래만호수(Lake Leman)를 바라보며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고 읊었다. 독일의 헤르만 헤세도 바람소리, 물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자작나무, 숲과 같은 자연이 삶의 보배라고 노래했다. 자연이 주는 위안은 그 무엇보다도 크며, 자연은 인간을 형이상학적 존재로 만든다. 자연환경과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렇게 작지 않다. 주거공간을 아늑하고 편리하게 만들려는 일은 도시계획에서뿐만 아니라 옛날의 풍수지리설에도 들어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자연과 가깝게 있느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영국의 애니버즈 하워드는 무분별한 도시의 확장을 막기 위해 그린벨트를 생각해 냈다.

요즘 홍성군은 청사 이전 후보지를 10월 확정하기로 하고, ‘청사건립 기본계획 수립 및 타당성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군청을 옮기는 일이 작지 않은 일이니 심사숙고 하는 일은 당연지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체험이 늘 보편성을 띠기 어려운 것처럼, 다수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결정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고향의 신성함을 잘 아는 사람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 방랑을 한 후 돌아온 자가 더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내적 성숙과 비교의 눈빛을 가진 자가 더 시야가 넓을 수 있음을 말한 셈이다. 하이데거가 ‘시인의 시인’으로 불렀던 횔덜린의 기념관을 횔덜린의 고향에 지으려 할 때 정작 고향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냐’라고 반문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홍성군도 청사가 비좁아 효과적 행정을 펼쳐나가기 어려우니 옮기려 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공서들을 읍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이전하는 것이 도시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지는 생각해 봐야한다. 도시는 헐렁하고 느슨한 구조보다는 밀도가 높은 구조 속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돈도 벌고 성공도 하고 기회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 인근의 어느 읍은 관공서들을 외곽 언덕으로 이전해 도심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위적 구상으로 괜찮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이 실패로 돌아간 예는 많다. 서울도 풍수지리의 추상적 개념을 구현한 대표적인 도시라 할 수 있지만 살기 좋은 도시 모습인지는 의구심이 남는다. 구한말 박영효가 서울을 개혁해 보려고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일제가 홍주의 맥을 끊고자 진산인 백월산과 홍성군청 자리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얘기가 설로 전해지고 있다. 1966년 군 청사를 지을 때 쇠말뚝이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군이 청사를 옮기려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삶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는 풍수지리를 이용하는 것도 삶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지세(地勢)에 의지하려는 일이 아닌가 싶다.

홍성군이 2025년에 신청사에 입주하겠다는 로드맵을 만들고 여러 과정을 거쳐 후보지를 결정하겠지만, 군민들은 신청사와 도심의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건축·예술 미학자였던 루돌프 아른하임은 보스턴 코플리 광장이 고층빌딩과 고풍적 교회, 존 핸콕 탑이 미학적으로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광장의 무질서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도심의 무질서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상구 <청운대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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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 2019-04-11 18:45:09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할 둣하다.
결국 사람중심에 서 있을지 아니면 건물중심에 서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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