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를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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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를 캐다
  • 전만성(화가, 홍성고 교사)
  • 승인 2010.05.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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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전만성의 길따라 마음따라]

 

▲ 봄-나무들. 싸인펜. 25cmX25cm. 전만성


볕이 좋은 날, 이웃에 사는 후배가 달래나 캐러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정들 새가 없었는데도 마음 씀이 엽엽한 게 고마운 생각이 들어 우선 대답부터 해 놓았다. 모처럼 화창해진 봄날에 봄 들판으로 나들이를 간다는 것은 꿈꿔 오던 일이기도 했다.

뜻밖의 제안에 마음이 들떴다. 몇 번이나 해보리라 마음먹었던 일이었지만 젊은 날에는 쑥스러워서 못했던 일이었다.

후배와 도착한 곳은 후배의 고향집 뒷산이었다. 언젠가 한 번 와 봤던 것 같기도 한데 계절은 모든 것을 새롭게 바꿔 놓고 있었다.

후배는 서슴없이 겅중 겅중 도랑을 건너뛰며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퍼내는 흙 속에는 통통 영근 알뿌리가 들어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골라서 흙을 털어내곤 했다. "그게 달래야?" 말을 해 놓고 보니 우스운 노릇이었다. 벼를 <쌀 나무>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싶어 웃음이 났다. 이 나이가 되도록 달래 한 번 만져보지 않았다는 것을 실토한 것 같아서 멋쩍었다.

금새 봉다리 하나가 무끈해 지도록 달래는 파는 곳마다 한 웅큼씩 나왔다. 후배는 요건 씀바귀, 요건 냉이, 요건 쑥! 하면서 내 눈앞에 갖다 대 주었는데 그 때마다 향긋한 봄 내음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간단한 삽질 한 번으로 거저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이! 누가 심은 것도 아니요, 가꾼 것도 아닌데 맘껏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을 넉넉하고도 풍요롭게 했다. 어디 나물뿐이랴! 잎이며 꽃이며 온갖 생명들을 품고 있다가 피워내는 대지가 고맙고도 감사해 입맞춤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이 온통 꽃이요, 새가 노래하고 나비가 춤추는 이 봄이 우리가 받는 축복이요 선물일진데 그걸 누릴 줄 모르고 살았노라고 자백이라도 하고 싶었다. "부지런만 하면 굶어죽지는 않는 게 봄이란다." 할머니 말씀이 뼛속 깊이 스며드는 봄의 들판에 내가 서 있었다.

후배는 내려오는 길에도 눈에 잡히는 것마다 땅을 헤집어 새 싹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었다. 그것들을 만지는 그의 손길은 곱고도 따듯했다. 그의 손길을 보노라니 이 봄 생명이 아닌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역꾸역 주책없이 노래 한 곡조가 목을 타고 넘어왔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나물 캐는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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