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도 화병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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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도 화병은 생긴다
  • 박영준(한의사 전문의)
  • 승인 2010.05.1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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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원장의 한방의학 칼럼]

화병은 1995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Hwa-byung> 이라는 한국식 표현으로 표기되며 우리나라 고유의 한국민속증후군의 하나로 규정되었다. 영어로는 분노증후군(anger syndrome)으로 번역되며 분노의 억압으로 인해서 발생한다고 정의되어있다.

화병은 심리적, 신체적 양면으로 증상이 생기며 현대의학으로는 신경성 질환 또는 스트레스성 증상으로 진단을 받게 된다. 전통적 가부장적 유교적 사고가 팽대했던 과거와 현대의 서구적 사고방식과의 괴리와 급격한 생활환경 변화에서 오는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 등이 큰 틀에서의 원인이라 할 수 있으며 이전에는 주로 여성에게서만 발병되었으나 최근 남, 여를 가리지 않고 발병한다. 그 심리적 증상으로는 분노, 짜증, 신경질, 우울함, 의욕저하, 피해의식, 허탈감, 불안, 안절부절 함, 만성 피로감, 공황장애, 자신감 저하, 불면증, 건강 염려증, 기억력감퇴, 집중 곤란, 머리가 텅 빈 느낌, 중독증 (담배, 알코올, 음식, 약물)등이 나타나며 신체증상으로는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거나 막힌 느낌, 전신동통, 호흡곤란, 수족냉증, 안면홍조, 두통, 현기증, 이명, 위장장애, 체중변화, 요통, 손발이 저리고 팔다리가 쑤심, 만성피로, 기미, 피부염, 탈모 등이 나타난다.
흔히 화병은 화를 참아서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화를 참지 않으면 화병이 생기지 않을까? 아니다.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내봐도 화병은 생기게 된다.

게다가 자꾸 화를 내면 주위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자신에 대한 평판이 나빠질까봐 속으로 참게 된다. 화는 속성상 안에서 밖으로 터져 나오는 기운이므로 억눌린 화는 갈 곳을 잃고 갇혀서 내 안에서 타오르게 된다. 내 몸을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화병은 분노로 시작되지만 차츰 우울, 불안 등 다양한 심리적 증상으로 변해가고 여러 가지 신체증상으로 고착화되어간다.

실제로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상당수가 화병에 해당하는 증상을 여러 개씩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몸이 <종합병원>이라고 말하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여기저기가 다 아프다며 몸의 증상을 고치려는 환자들도 실제로는 화병에서 기인한 증상들인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엔 신체적 증상만 치료해서는 재발이 쉽고 치료도 어렵다. 또한 화병은 그 원인이 없어져도 화병이 낫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주부가 30여 년간 시어머니의 부당한 대우를 참으며 살아왔다고 하자. 그동안 불면증과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운 증상에 시달렸고 지금은 10여 년 전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편하게 살고 있는데도 아픈 것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증상은 계속된다. 현재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없어졌지만 당시의 억울하고 분통한 기억이 무의식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장기간 또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이미 화병이 몸에 굳어져버린 것이다. 이러한 화병에 있어 심리치료가 중요한데 이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편집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 중에서도 나에게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기억만을 주로 떠올릴 수 있는데 심리치료를 통해 그 기억이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게 된다.

자꾸 떠오르는 분노나 미움 원망 등 부정적 정서를 씻어주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심리치료를 통해 억눌린 감정을 표면으로 끌어올려 표현하게하고 하고 싶었던 말을 실컷 하도록 도와주며 최종적으로는 자신과 상대방을 스스로가 용서하고 화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속이 후련해짐을 느끼게 된다. 또한 화병의 치료에는 생각의 습관을 바꿔주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나를 괴롭히는 외부의 상황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외부의 상황은 하나의 현상일 뿐, 내가 어떤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즉,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화병의 장부기관과의 상관관계를 보면 오랜 기간 동안의 슬픈 일이나 억울한 일, 화날 일 등으로 간담의 기운이 울결 되거나 심장 및 비장의 기운이 약화되어 나타나는 질환이므로 간담의 기운을 풀어주고 심장과 비장의 기운을 회복시켜주는 약물치료를 하게 된다. 이외에도 아로마 향기요법이나 청음치료등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화병에 유익한 음식으로는 신선한 야채와 계절 과일, 현미, 녹차, 대추차, 우유, 파, 녹두, 죽순, 산조인 등이 있으며 쓴맛이 나는 음식, 즉 씀바귀나물, 고들빼기, 미나리무침, 메밀국수 등도 화를 다스리는데 좋은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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