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 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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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게임' 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 정세인(디트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0.12.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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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인(디트뉴스 편집위원)
닭은 오래전부터 가축으로 사육되면서 우리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우리나라에서 닭이 사육된 것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생의 맷닭이 울안에서 길러지면서 가축화된 것이다. 닭은 잡식성으로 아무 것이나 잘 먹고 각종 질병에도 강하기 때문에 놓아 기르기가 좋고 잘 자란다. 각종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병충해 방지에도 도움을 준다.

닭이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것은 다름 아닌 먹을 것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닭고기 뿐 만 아니라 달걀은 우리에게 풍부한 영양가를 공급해준 고급음식이다. 특히 인삼과 함께 푹 고아 먹으면 더위에 지친 여름철 기력을 보강하는 대표적인 여름나기 식품이다. 또한 장모가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주었던 풍습이 남아있을 정도로 정력식품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은 설날 떡국에 꿩고기를 넣어 먹었지만 꿩이 부족해지자 닭고기를 대신 넣어 먹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꿩 대신 닭'이다. 무엇이 부족해 대신한다는 포괄적인 의미로 변했지만 한편으론 닭요리가 일반화됐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돼지고기 다음으로 많이 먹는 육류가 닭고기다. 지난해 국내에서 도축된 닭은 약 6억8000만 마리에 이른다. 외국에서 수입한 닭을 제외한다고 해도 국민 1인당 적어도 한 달에 한 마리 이상은 먹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옛날에는 백년손님이라는 사위에게만 주던 닭고기가 이제는 서민들의 고단백질 섭취 식품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흔하고 많이 먹다 보니 닭요리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개인별 취향이나 지방별로 갖가지 재료를 혼합하고 끓이거나 볶거나 튀기는 등 다양한 요리법이 개발되었다. 우리나라 전통의 닭백숙은 물론 닭개장, 닭갈비, 불닭, 통닭, 닭볶음탕, 닭 한 마리와 닭튀김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주식으로는 물론 간식으로, 술안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도 닭고기다. 그중에서 일반적으로 󰡐치킨󰡑이라고 불리는 닭튀김은 손쉽게 배달시켜먹을 수 있는 장점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80년대 서울에 켄터키프라이드 치킨 매장이 상륙하면서 시작된 치킨은 호프집의 열풍을 타고 생맥주의 대표안주로 성장해왔다. 현재 전국 치킨매장은 5만여개로 시장규모가 연간 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 상륙한 치킨 연간 5조원 시장규모로 성장
이런 가운데 며칠 전 부터 대형마트인 롯데마트가 5000원짜리 치킨을 판매하면서 전국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5천원이라면 보통 1만 5천원 정도하는 동네 치킨의 3분의1 수준이다. 배달은 하지 않고 무 값 등은 따로 받는다지만 가격 경쟁력이 우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형마트가 저가 공세로 동네 치킨 집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다.

치킨 시장은 별다른 기술이 필요없고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장에서 밀려난 소시민들의 창업 업종으로 인기를 끌어왔다. 이 때문에 동네마다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다 보니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마트까지 나서서 5000원짜리 저가 치킨으로 공세를 취하자 영세업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반면 롯데마트는 대량구매로 원가를 낮춰 이런 가격이 가능하다고 맞선다. 롯데마트 측은 5천원 치킨을 마트 당 한정 판매하고 있고 무 등은 별도로 값을 받고 있으며 방문고객에만 판매하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콜라와 무 각종 소스와 할인쿠폰까지 배달해주는 기존 치킨업소와는 분명 시장 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입장이다.

프랜차이즈 자영업자들의 반발과 공정위 제소 움직임 등 논란이 확산되자 급기야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트위터에 글을 올려 원가를 지적하며 󰡒영세상인들이 울상지을만 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까지 나서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는 모르지만 롯데마트 측은 오는 16일부터 통큰치킨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롯데마트 측의 판매중단 선언으로 치킨논란은 일단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롯데마트 5000원짜리 치킨 판매 찬반논란 결국 16일부터 중단키로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들이 즐겨먹는 치킨 판매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대형마트의 물량공세로 영세상인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우려스런 일이다. 비단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재벌들의 문어발식의 사업 확장으로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대형업체들이 골목시장까지 침범하는 것은 스스로 자제하고 당국의 적절한 규제도 뒤따라야 한다.

한편으론 과다한 치킨 가격과 위생상의 문제 등도 되짚어보아야 한다. 솔직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싸고 양도 많고 질좋은 치킨을 판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닭 한 마리의 원가가 3-4천원인데 치킨 한 마리에 1만 5000원 이상을 주고 먹으면서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롯데마트가 통큰치킨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닭보다 6배나 비싼 치킨 값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일부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과다한 광고로 원가를 높이고 담합을 통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골목에서 힘겹게 영업하며 살아가는 영세 치킨집이나 비싼 값에 치킨을 먹어야 하는 소비자에게 달가운 일은 아니다.

국제정치 관계에 '치킨게임'이라는 용어가 있다.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이 벌인 자동차 게임에서 유래했다. 한밤중에 도로 양쪽에서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 충돌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다. 핸들을 꺾은 사람은 치킨(병아리)으로 겁쟁이 취급을 받는다. 닭싸움의 치열함을 표현해 치킨게임으로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어느 한 명도 핸들을 꺾지 않으면 충돌해 결국은 양쪽 모두 자멸한다.

이번 사태가 치킨게임으로 비화돼 대형마트와 영세 자영업자가 충돌해 서로 피해를 주고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은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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