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군의회 의원
“끓는 물에 던져진 개구리는 뜨거움을 감지하고 뛰쳐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올리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라는 섬뜩한 비유는 현재 우리가 마주한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와 묘하게 겹친다.
겉으로 보기에 효율성과 발전을 내세우는 통합 논의는 달콤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달콤함 뒤에 숨겨진 지역 고유의 정체성 상실, 주민들의 삶에 미칠 파급력, 그리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은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는 겉으로는 ‘효율’과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와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통합은 신중하고도 폭넓은 공론화를 거쳐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는 주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일부 정치권과 전문가 집단의 주도로 급히 추진되고 있어 강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행정통합이 주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지난 1989년 대전과 충남은 대전의 비약적인 성장과 그에 따른 행정적 독립성 요구, 그리고 중앙정부의 지방자치 강화와 균형발전 정책이 맞물려 법률 제정을 통해 분리됐었다. 당시의 분리는 대전의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여겨졌으나, 3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화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점은 어쩐지 모순처럼 보인다.
통합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비수도권 균형발전’의 허망한 후퇴라 하겠다. 충남도청이 이전한 내포신도시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조성된 충남의 새로운 행정중심지이다. 이제 겨우 기반을 갖춰가고 있는데 통합으로 인해 다시 행정 기능을 대전에 빼앗긴다면, 충남도청 수부도시인 내포는 또 하나의 ‘잊혀진 신도시’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주민의 자존감은 물론이고, 국가 예산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큰 낭비이다.
지방자치는 지역이 중심이 돼야 한다.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방자치의 본령이다. 그런데 통합은 지역의 목소리를 더 멀고 작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전이라는 거대한 도시 안에서 충남의 작은 시·군들은 소외될 가능성이 높고, 정치적 영향력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지역 주민의 참여와 통제력이 약화된 지방자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또한, 통합이 과연 지역 발전의 열쇠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과거 광역시 출범이나 특별시 승격이 늘 지역 발전을 담보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에는, 각 지역이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 더 필요하다. 행정통합은 이런 다원성과 자율성을 해치는 집권화된 방식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주민의 뜻이 통합 논의에 반영되고 있는 가의 여부다. 물론 대전시와 충남도가 지난 한 달여간 시·도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지역 20개 시·군·구를 찾아 행정통합 주민설명회를 진행했다. 그러나 정작 진행된 주민설명회는 통합을 전제로 하는 발표회에 불가했다. 그래서 정작 이 문제의 당사자인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충분히 수렴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경제 논리나 행정 편의주의적 관점에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주민들의 삶을 도외시하는 행위이다. 주민투표와 같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모든 주민이 충분히 통합의 장단점을 인지하고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군민들은 이미 홍성군과 예산군의 행정구역 통합을 위해 근 20여 년간 여러 논의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던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인구 10만이 되지 않는 두 기초 지자체 통합도 이처럼 오랜 시간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도 쉽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행정통합은 백년대계를 논하는 매우 중차대한 사안이다. 단순히 하나의 선거 공약이나 정치적 구호로 치부될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자.
부디 충분한 논의와 숙고,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들의 폭넓은 참여와 동의를 바탕으로 우리 지역의 미래를 결정해야 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