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녹색당
칼럼·독자위원
수도권에 살다가 홍성으로 귀촌한 지 올해로 8년째가 된다. 농촌에서 살기를 택한 건 아무래도 사람이라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농업이 인간 삶의 근본이 돼야 한다는 생태주의 계간지 <녹색평론>의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귀촌을 결심하고 정착하는 건 우리 동네인 홍동면에서는 흔한 일이다. 농업을 가르치는 풀무고등학교와 대안대학인 전공부가 있어서 농업에 뜻을 품은 젊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동안 농사를 지었느냐, 그건 아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었다. 농촌에서도 사람들이 농사만 짓는 것은 아니니 이런저런 다른 일을 하며 지금까지 그럭저럭 살아왔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고 높은 수준의 의지와 실행력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텃밭 농사나 논농사를 조금씩 해봤지만 체험 수준에 머물렀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일상을 살아내며 희미해졌다. 하지만 사람과 자연 모두에게 이로운 유기농이나 자연재배 농사를 짓는 분들을 여전히 존경해마지 않는다.
매일매일을 농사를 짓듯 우리의 근본을 지키며 사는 방법은 없을까? 여기에서 근본을 무어라 생각하면 될까? 그건 원칙일 수도 정체성일 수도 본질이나 핵심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자연으로 하겠다. 종종 자연환경을 걱정하는 뜻의 ‘지구야 미안해.’라는 문구가 보이면 지구가 코웃음 치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구한테 미안할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미안할 일이다. 지구는 인간이 사라져도 남아있을 것이고 급한 건 지구가 아니라 우리다. 기후위기를 넘어 이미 기후 재난이 세계 곳곳을 강타하고 있다. 인간이 바로 자연이라는 걸 인식하고 우리의 젖줄인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지만 아무튼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것은 농사를 통해서만 가능한 걸까?
책 《좋아하는 일로 지구를 지킬 수 있다면》에서는 건축가도 디자이너도 IT 기술자도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도 기자도 변호사도 지구를 지킬 수 있다고 한다. 모두가 농사를 지을 수 없기에 반갑고도 솔깃한 제목이다. 생각해 보면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든 생활 속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해 자연에 부담을 덜 주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참신하게 자신의 일터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길을 개척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귀리 혹은 밀짚으로 만든 컵을 사용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플라스틱 없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재생에너지 발전소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기업을 연결해 주는 IT 기술자 등….
책에 나오는 분들 중, 너무나 존경하는 우리 동네 수제 맥주 양조장 ‘이히브루’를 운영하는 농부님들도 계신다. 자연재배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풀풀농장’을 운영하다가 맥주를 만들게 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다. 부부이신 두 분은 기후위기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농사를 짓고 또 맥주를 만든다. 최대한 국내산 재료를 사용하는 것, 맥주병을 재사용하는 것 모두 맥주 업계에서 절대 흔치 않은 일이다.
재작년, 이 책을 읽고 나는 나만의 가게를 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참, 먼저 언급하지 못했지만, 나는 올봄, 홍동면에 식당을 창업할 예정이다. 두 분의 말씀 중 내가 식당을 창업하게 되기까지 아주 큰 영향을 받은 부분은 다음과 같다. ‘우리 삶의 외연이 너무 넓다. 삶을 조금 더 지역 안으로 응축하면 좋겠다.’ 우리 삶이 대기업 브랜드로 둘러싸여 있고 삶의 외연이 너무 넓기에 삶에서 우리 자신이 소외된다는 말씀이다. 옷이든 식품이든 지역 안에 고유하고 다양한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히브루’는 이미 지역의 명물인 브랜드가 됐다. 프렌차이즈 카페나 식당 간판으로 도배된, 그러나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홍성읍내 명동거리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홍동면의 이히브루 양조장처럼 소박하고 어여쁜 우리만의 가게들로 꽉 찬 거리를 상상해 본다. 물건과 공간과 먹거리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풍요로워지는 지역이라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삶을 살아가라고 내던져진 존재로서 우린 매일매일 ‘먹고’ 살아야 하고, 먹기 위해선 ‘농사’ 지어야 한다. 어차피 먹어야 하는데, 일상에 치여 허우적대며 이상한 걸 입에 넣기보다는 식당을 열어서 매일 정성껏 밥을 해보기로 한다. 재료비가 많이 들 테니 텃밭 농사는 필수다. 기본으로, 근본으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까? 나는 고유한 브랜드를 키울 수 있을까? 내가 발 디딘 곳에서 이웃과 건강한 먹거리를 통해 교류하고 소통하며 자연에 해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먹고’,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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