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77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10〉 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10〉 늦은 출발입니다. 오전 10시 10분에 집을 나와 오늘은 홍주성지를 거쳐 덕산 쪽으로 나가려고 길을 잡았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천주교인이 홍주목 안에 생겨났어도 설마 홍주목사와 홍주진영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홍주성 안에서는 교우촌을 형성하지는 않았겠지요?홍주성 안으로 오가던 사람들 틈에 잠시 섞여있던가 형리에게 잡혀서 문초를 받거나 옥 터에 갇혀 있다면 모를까 그래서 지금의 홍성군청 자리에 있던 동헌에서 아주 먼 곳에 신앙촌을 이루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주로 합덕, 당진에 천주교 신앙촌이 유독 많아 오래된 성당은 거의 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 | 글=조현옥 전문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5-10-15 15:37 홍주목(洪州牧)과 왕사(王師) 보우(普愚)국사의 고향 홍주목(洪州牧)과 왕사(王師) 보우(普愚)국사의 고향 홍주, 공민왕 7년(1358) 왕사(王師) 보우(普愚)의 고향 목(牧) 승격홍주(洪州) 조선이 망할 때까지 600여 년 동안 충청지역의 중심지 홍성사람들은 지금도 홍주인(洪州人)이라고 스스로를 부르고 있다. 홍주(洪州)가 공주·충주·청주와 더불어 충청지역의 대표적 중심지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연유에서 출발한다. 더구나 충남도청이 공주시대와 대전시대를 거쳐 2012년 말부터 충청도 홍주 땅에 정착했기 때문에 그 자부심은 더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어떤 이유에서인지 홍주(洪州)가 목(牧)의 위치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10-12 15:57 성종 도단련사, 현종 지주사 이후 ‘홍주(洪州)’로 고쳤다 성종 도단련사, 현종 지주사 이후 ‘홍주(洪州)’로 고쳤다 홍주(洪州)의 연혁을 보면 ‘ 10년(927년) 정해 3월에 왕이 운주(運州)에 들어갔다고 하였다. “지금의 홍주(洪州)이다.”라고 하였다. 성종(成宗) 을미(성종14년, 995년) 에 운주 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고, 현종(顯宗) 임자(현종3년, 1012년) 에 단련사를 폐하고 지운주사(知運州事)로 고쳤다가, 뒤에 홍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도단련사(都團練使)란 고려 초기에 설치되었던 지방관 중 하나다. 성종 14년(995) 지방제도를 재정비하기 위해 전국을 10도(道)로 나누고,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8-20 10:08 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2> 홍성군이 천년홍주의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창조지역사업인 ‘타임 오딧세이 in 홍성’의 본격 추진을 위한 시동을 건다. ‘타임 오딧세이 in 홍성’사업은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서 공모한 창조지역사업에 선정돼 추진하는 역사문화 골목길 복원, 정비사업 이다. 국비 16억 원, 지방비 4억 원 등 2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는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히는 천년 홍주 역사문화 골목길’ 사업과 더불어 홍주성 해자(홍성천, 월계천)에 야생화를 식재하고 홍성천 하상주차장에는 홍주골 전통놀이 벽화를 제작하며, 옛 보안대 앞에서 홍성고 입구를 역사문화 골목길로 만드는 등 ‘스토리가 있는 명품 테마 길’ 조성에 나설 계획이다. 천년홍주 역사문화 골목길, 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 한기원·장윤수 기자 | 2015-08-10 10:09 우리 고장의 ‘독립장’ 추서 독립운동가들 우리 고장의 ‘독립장’ 추서 독립운동가들 이 땅에서 일제를 물리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들이 홍성군에서도 많이 나왔다. 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운동가가 198명이나 된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우리 고장의 독립운동가들을 살펴보았다. 정부는 독립 유공자들에 대해 공적에 따라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등의 순으로 수여하는데 홍성군의 경우 대한민국장은 한용운, 김좌진 2명이고 대통령장은 없으며 독립장이 4명이다. 이들 4명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 이필봉의병활동하다 일진회 끄나풀 살해일경에 붙잡혀 투옥됐다 중국망명이필봉(1884.12.11 ~ 1950. 3. 5)은 오양선이 이끄는 의병진에 가담한 뒤 1908년 11월 19일 정택하·전봉학·채한 기획특집 | 홍주일보 | 2015-08-07 16:47 여하정 여하정 잔잔한 물결 위에 낭만과 풍류가 있다하니 원앙의 가족은 낙원이 되고 오가는 사람들 한줄기 바람 곁들여 말간 차 한 잔에 마음도 쉬어 가네 마음도 은은하게 여름을 부르니 저녁별도 취해 물위로 퐁당퐁당 빠지네 연잎에 물방울 동그르르 구르며 절개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말라 하네 뾰족한 소나무의 기개를 엿보려니 부드러운 사랑으로 감싸라는 버드나무 고을을 호령하던 홍주목사의 옛 이야기 들리는 듯 마는 듯 둥둥 떠가는 하얀 구름 물가에 머무니 가는 사람 가는 세월 잡을 수가 있을까 오피니언 | 조승만<시인·수필가, 홍성도서관 문예아카데미 회원> | 2015-08-06 15:09 골목상권의 성공요인과 그 해답은? 골목상권의 성공요인과 그 해답은? 차갑고 번잡한 도심과 대조를 이루는 오래된 동네. 그 지역 토박이들이 아니면 아는 이조차 별로 없었던 골목길이 독특한 개성을 지닌 트렌드의 발상지로 거듭나고 있다. 낡은 주택이나 상가가 밀집해있고 교통이 좋지 않아 쇠락해가던 골목길에 투자와 유동인구가 늘면서 역세권이나 대형 상권 못지 않은 번화가로 성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번잡하고 답답한 대형 상업 문화에 지친 사람들의 방문이 잦아지면서 골목상권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골목길은 대규모 자본이 주도하는 개발에 밀려 고층 건물 뒤로 밀려나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낡고 후미진’이라는 수식어를 벗어 던지고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이자 소규모 자본의 창업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전북 군산시는 군산항을 중심 홍성의 골목상권 경쟁력 테마로 승부한다 | 서용덕 기자 | 2015-08-06 13:44 홍주읍성 국내 최대 규모 수구지 발견 홍주읍성 국내 최대 규모 수구지 발견 홍주읍성에서 국내 읍성 가운데 가장 큰 수구지가 발견됐다.홍성군에 따르면 홍주읍성 성벽 공사 중 땅속에 묻혀있던 수구지가 발견돼 고지도에 있던 수문의 존재가 확인됐다. 홍주성 관련 고지도에 동문과 서문 남쪽에 수문이 각각 표시돼 있어 시냇물이 서문을 통해 성내로 흘러들어와 동쪽 수구를 통해 홍성천으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1925년 홍성군지에는 1871년 그려진 지도에 홍주읍성 동문과 서문 남쪽에 수문이 각각 표시돼 있고 ‘고종 7년(1870)에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읍성을 정비하며 당시 서문천의 물을 끌어 서편 수문에서 동편 수문을 거쳐 남문천, 금마천으로 흐르도록 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이번에 발견된 수구는 서문 남쪽에 있는 것으로 장축 660cm, 단축 440cm 규모로 상석 사회일반 | 이규승 기자 | 2015-08-03 10:18 서해금빛열차 홍성투어 ‘안회당’ 인기 서해금빛열차 홍성투어 ‘안회당’ 인기 서해금빛열차와 연계한 홍성투어가 외지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군은 특히 올해 생생문화재 활용사업이 운영되고 있는 홍주읍성 내 안회당은 서해금빛열차의 매일 운행에 따라 지역의 새로운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지난 2월 5일 개통한 서해금빛열차를 이용해 군을 다녀간 외지관광객이 4개월 동안 3000여 명이라고 밝혔다. 군에 따르면 서해금빛열차 운행이 지난 3월부터 주5일로 확대되면서 조선시대 홍주목사의 동헌인 안회당에는 매일 외지 관광객 30여 명이 방문, 천년 홍주의 역사와 차 향기에 취하고 있으며, 1000원의 찻값이 지역인재 양성을 위한 홍성사랑장학회 장학금으로 적립되면서 군민과 외지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서해금빛열차를 타고 온 미국인 로버트 씨는 “ 사회일반 | 장윤수 기자 | 2015-07-20 15:19 홍성 골목상권의 쇠락 요인과 경쟁력은? 홍성 골목상권의 쇠락 요인과 경쟁력은? 명동골목 등 과거 충남 서북부의 대표 상권법원, 세무서 등 기관 이전으로 중심성 약화역사문화 자원활용 찾아오는 지역 변화 모색법원골목 기존 상권 연계 상생 방안 찾아야몇 년 전만 하더라도 홍성 경제의 중심축은 누가 뭐래도 명동골목을 비롯해 군청 앞 관하골목 등 오관리 원도심이었다. 명동골목을 비롯해 군청 앞 관하골목 등 조양문을 중심으로 하는 골목상권은 홍성군뿐만 아니라 충남 서북부를 대표하는 핵심 상권으로 불렸다. 이곳 골목상권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오관리라는 지명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 군청을 비롯해 법원, 검찰, 세무서, 경찰서 등의 공공기관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군청만 남아 있지만 다섯 개의 관청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 홍성의 골목상권 경쟁력 테마로 승부한다 | 서용덕 기자 | 2015-07-10 09:51 여하정 배경으로 차 즐기는‘안회당’인기 여하정 배경으로 차 즐기는‘안회당’인기 사람들 | 홍주일보 | 2015-07-07 16:30 홍성 골목상권의 재편… 테마로 승부한다 홍성 골목상권의 재편… 테마로 승부한다 내포신도시 조성 영향 원도심 상권 급속히 재편성원도심 ‘역사와 문화 담은 골목’으로 차별화 ‘승부수’신생상권 ‘법원골목’ 부상 타 상권과 상생 계획 필요전북 군산의 탁류길, 이태원 경리단길, 부산의 구제골목, 대전 성심당길 등 골목상권이 활성화 된 곳의 공통점이 있다면 주변경관이 뛰어나거나 골목에 이야기를 담아냈거나 다른 매장들과 어울림과 소통이 좋은 등 골목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다. 또한 이들 골목에는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고 맛의 길과 추억의 길이 어우러지며 멋진 조합을 이뤄내고 있다. 홍성군에도 여러 개의 골목상권이 존재한다. 홍성읍 최대의 번화가로 불리는 ‘명동골목’을 비롯해 홍성군청 앞 ‘관아골목’신생 골목으로 부상하는 ‘법원골목’ 등이 홍성의 3대 상권이 홍성의 골목상권 경쟁력 테마로 승부한다 | 서용덕 기자 | 2015-07-06 13:29 홍성, 옛 목사고을 고유지명 ‘홍주’를 찾지 못한 유일한 곳 홍성, 옛 목사고을 고유지명 ‘홍주’를 찾지 못한 유일한 곳 홍성의 옛 고유지명 홍주 지명역사 1000년, 충남도청 홍성이전 원년주(州)자 붙은 옛 목사고을 중 유일하게 ‘홍주’만 고유지명 못 찾은 곳일제에 강제로 빼앗긴 고유지명 ‘홍주’ 되찾아 명예 회복해야 여론광복 70년 ‘홍주지명되찾기 범군민운동본부’ 토종지명 되찾기 운동 전국을 비롯해 충청지방에서는 지금도 큰 고을 명칭에 ‘주(州)’자를 붙이고 있다. 옛날 관찰사가 주둔하고 있던 공주(公州)나 충주(忠州), 청주(淸州)가 그런 고을들이다. 그러나 한 때 공주, 충주, 청주와 같은 목사가 있었던 큰 고을 ‘홍주(洪州)’는 1914년 일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 <특별취재팀> | 2015-06-18 11:43 홍주는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 그들이 홍성으로 고쳤다 홍주는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 그들이 홍성으로 고쳤다 홍주군의 홍(洪)과 결성군의 성(城)자를 합해 만든 합성지명일제의 땅이름 바꾸기 속셈 의병항거 등 일제에 저항한 고을충청을 공주(公州)·홍주(洪州) 머리글자 합해 공홍도라 부름일본 황국신민화정책 창씨개명 단행과 창지개명 맥 같이해일제시대 때 한반도의 마을이름과 지명도 침탈의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지명이 한민족의 기상을 일깨운다는 구실을 붙이는 등 일본제국주의는 대대손손 내려오던 산천과 마을 이름까지도 짓밟았다.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쓰는 지명은 열에 서넛은 일제가 식민통치에 편리하도록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예 지명역사 1000년 ‘홍주’ 고유지명 되찾자 | 한관우 발행인 | 2015-06-05 19:39 휘몰아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핀 순절의 꽃들 휘몰아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핀 순절의 꽃들 충절과 충의의 고장이라 불리는 충청도, 특히 옛 홍주목사 고을에는 충신, 열사 등이 많이 배출됐다. 우리고장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충청출신의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정신을 재조명함으로써 이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서 우리고장의 역사인물이 차지하는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의 생명과 재산까지 내놓으며 조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존경받는 사회,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반듯한 사회가 절실히 필요한 오늘이기 때문이다. 지금,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의 삶은 가혹하리만큼 어려운데, 친일인사들은 호가호위하는 현실이다. 조국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이 존경받는 사회돼야지금, 독립운동가 충청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한관우 발행인 | 2015-06-04 09:20 맛의 길과 역사탐방로가 함께… 군산 탁류길! 맛의 길과 역사탐방로가 함께… 군산 탁류길! 물류의 중심에서 추억 찾아오는 관광명소로역사의 숨결과 문학의 향기 남아있는 탐방로맛있는 먹거리와 볼거리 가득한 골목길 코스홍성도 문화관광 인프라 골목상권과 연계해야금요일 이른 아침에 출발해 2시간 만에 도착한 전북 군산의 옛 도심이다. 이곳은 100여 년 전 개항 당시 모습을 그대로 살린 특색 있는 골목이 역사탐방로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때 물류의 중심이었던 군산항이 바로 연결된 기찻길, 1940년대 중반부터 항구와 공장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던 화물 열차는 7년 전 운행을 중단했다. 2km가까운 철길 마을은 이제 추억을 찾는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명소가 됐다. 이 철길 마을은 군산항을 오가는 화물열차 운행을 위해 60년 전에 조성됐는데, 열차 운행이 멈 홍성의 골목상권 경쟁력 테마로 승부한다 | 주향 편집국장 | 2015-05-22 09:36 명동-법원-내포로 상권지도가 바뀐다! 명동-법원-내포로 상권지도가 바뀐다! 소규모 상점 6556개 중 상당수가 원도심 내 생계기반신생상권으로 ‘법원골목’ 급부상 타 상권들과 윈-윈원도심 ‘역사와 문화 담은 골목’으로 차별화‘승부수’백화점이나 아울렛, 대형마트 등의 공세에 밀려 초토화 되어 가던 골목상권이 다시금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골목상권이 활성화 된 곳의 공통점이 있다면 주변경관이 뛰어나거나 다른 매장들과의 어울림과 소통이 좋다는 특징이 있다. 골목과 골목이 모이면서 마치 쌈지 길의 컨셉처럼 하나의 몰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의 소비패턴은 조금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만족도를 높여주는 요소가 있다면 맛 집이나, 볼거리를 찾아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골목이 뜨는 이유 중에 하나다. 낙후되고 촌스럽다는 의미의 대명사였던 골목이 맛 집 홍성의 골목상권 경쟁력 테마로 승부한다 | 주향 편집국장 | 2015-04-28 15:32 ‘생생 문화재’ 사업 시작 지역 문화재 중심 진행 군은 문화콘텐츠 가치창출을 위해 3곳의 문화재를 중심으로 생생문화재 사업을 진행한다. 올해 생생문화재 사업은 지난해 진행한 ‘쌩쌩(生生)달리자, 홍주성 한바퀴’를 비롯해 ‘시간여행 결성탐험대’, ‘용봉산에는 보물이 있다’ 등 3개 사업이 문화재청 공모사업에 선정돼 홍성읍, 결성면, 홍북면에 소재한 문화재를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쌩쌩(生生)달리자, 홍주성 한바퀴’는 사적 제231호인 홍주읍성을 중심으로 △홍주목사 생생 체험학교 △나는 홍주읍성 생생 알리미 △홍주목사 교과서로 떠나는 홍주천년 여행 △안회당, 연꽃 향기에 취하다 △안회당 다례교실 △안회당 차 문화교실 △안회당 이야기 한국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자치행정 | 장윤수 기자 | 2015-04-28 15:11 100년전 일제에 강제로 빼앗긴 고유지명 ‘홍주’ 오롯하다 100년전 일제에 강제로 빼앗긴 고유지명 ‘홍주’ 오롯하다 충남을 홍주·공주부로 나누고 홍주부에 22개 군현을 둠홍주(洪州)지명 사용 시기 995~1018년 사이로 추정돼홍주·공주·충주·청주 충청 4목 중 ‘홍주’지명 못 찾아1914년 일제 행정구역 개편 때 강제로 ‘홍성’으로 개명사람의 이름에 뜻이 있듯, 우리가 부르는 지명 역시 뜻을 갖고 있다. 깊은 뜻, 재미있고 해석적인 뜻, 슬픈 뜻 등 여러 역사와 문화가 지명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마을의 이름에 역사와 삶의 문화가 담긴 뜻이 있음을 알게 된다면 사는 곳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질 것이다. 현재의 지명이 지명역사 1000년 ‘홍주’ 고유지명 되찾자 | 글=한관우 발행인/자료·사진=한기원 기자 | 2015-04-27 15:24 백월산 휴식·휴양공간으로 체계적인 정비 필요하다 백월산 휴식·휴양공간으로 체계적인 정비 필요하다 백월산 역사·문화·자연·건강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산군민들의 건강 위한 휴식·휴양시설 체계적 조성 필요산이 주민들 삶에 육체적·정신적 힐링 작용하는 시대홍성읍 서쪽에는 홍성의 진산이며 명산인 백월산(白月山·394m)이 있다. 옛날에는 옥산(玉山)이라고도 불렀던 백월산에는 백월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구항면(龜頂面) 오봉리(五鳳里)에 속한다.산성의 일부는 토축(土築), 또는 석축(石築)이지만 대부분이 붕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다. 신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마한시대의 성이 아닐까 추측하지만, 후백제의 견훤군(甄萱軍)이 이용한 성으로 일부 확인되면서, 백월산 동록(東麓)의 해풍성(海豊城)과 더불어, 고려시대 왕건(王建)과의 패권(覇 기획특집 | 한관우 발행인 | 2015-04-13 10:27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91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