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2>
상태바
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2>
  • 한기원·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8.10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년홍주 역사문화골목길, 천년의 스토리가 있는 길로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적산가옥도 이제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는 평이다.

홍성군이 천년홍주의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창조지역사업인 ‘타임 오딧세이 in 홍성’의 본격 추진을 위한 시동을 건다. ‘타임 오딧세이 in 홍성’사업은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서 공모한 창조지역사업에 선정돼 추진하는 역사문화 골목길 복원, 정비사업 이다. 국비 16억 원, 지방비 4억 원 등 2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는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히는 천년 홍주 역사문화 골목길’ 사업과 더불어 홍주성 해자(홍성천, 월계천)에 야생화를 식재하고 홍성천 하상주차장에는 홍주골 전통놀이 벽화를 제작하며, 옛 보안대 앞에서 홍성고 입구를 역사문화 골목길로 만드는 등 ‘스토리가 있는 명품 테마 길’ 조성에 나설 계획이다.

 

홍주성 역사문화 골목길에는 천년 홍주의 역사문화가 담겨져 있다.

천년홍주 역사문화 골목길, 천년의 스토리 가득 담겨
홍주성 복원과 잔존 골목길 스토리·디자인 입혀야
천년홍주의 역사성 갖춘 도시브랜드 구축 계기 마련
역사문화골목·홍주천주교성지순례길 스토리텔링 길로

또한 엽전 형태의 홍주성 화폐를 제작해 전통시장과 홍주성 일원에서 실제 사용가능토록 하고 시장입구 하천변에 홍주성 역사와 관련한 아트펜스를 설치하는 반면 홍성전통시장과 홍주성 일원에서 문화예술공연을 실시하는 등 ‘흥과 정이 넘치는 장터 가는 길’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홍주성역사관에 홍주성 및 역사인물 디오라마 설치, 홍성의 역사관광자원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 제작도 추진하게 된다. 홍성군은 창조지역사업을 통해 도시관광을 활성화하고 천년홍주의 역사성을 갖춘 도시브랜드를 구축함으로써 원도심 공동화에 대비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업추진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이밖에도 홍성 광천복합공공청사 앞 골목길과 주변 건물 담벼락이 옛 추억 물씬 풍기는 ‘광천의 옛 풍경과 학창시절’로 채워졌다. 홍성에서도 골목길 복원·재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일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홍성의 역사문화 골목길사업인 ‘타임 오딧세이 in 홍성’사업의 성패가능성 등을 진단해 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타임 오딧세이 in 홍성’사업에 주목하는 부분은 천년역사길 공공아트 프로젝트, 홍주천년 천년홍성 스토리텔링, 역사문화 골목길에 ‘스토리가 있는 명품 테마 길’을 조성하는 사업 등이다. 사실 홍성에서 역사문화 골목길을 살린다는 것은 자원과 여건이 부족하다. 특히 홍주성 복원사업과 맞물려 현재 잔존하고 있는 골목길을 어떻게,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살리고 복원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물음표로 남는다. 따라서 천년역사길 공공아트 프로젝트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홍주천주교성지순례길, 홍주역사문화골목길, 홍성전통시장길과 서부약국 앞에서 홍성고 입구에 이르는 홍고통 골목길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골목길 곳곳의 스토리가 담긴 벽화가 정겹다.

홍성군의 창조지역사업 ‘타임 오딧세이 in 홍성’은 지난 2012년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의 공모사업에 선정된 후 2015년까지 3년간 국비 16억 원, 지방비 4억 원 등 2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추진되고 있다. ‘홍주성 천년 여행길’은 홍성역에서 출발, 홍성시장, 대교리 미륵불, 홍주의사총, 홍주향교, 홍주성길, 적산가옥 골목길, 명동상점가, 당간지주, 홍성천 벽화길, 홍주천주교성지 순례길 등 지역의 오랜 역사를 통해 쌓여온 역사문화자원을 잇는 8km 구간의 도보길로 조성돼 있다. ‘홍주성 천년여행길’은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의 가치를 재창조하고 생활자원과의 융화를 통한 관광상품화를 목적으로 조성됐다. 홍성의 홍주성 천년 여행길은 2010년 홍성천변 하상주차장에 ‘홍성 옛 길을 따라 장터로’라는 주제로 홍주성 내의 관아 및 장터, 궁리포구와 옹암포구의 옛 모습을 형상화 한 벽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홍주성 천년 여행길’의 상징인 홍주성은 백제 멸망 후 부흥운동과 후 삼국시대와 고려, 후백제때는 전쟁터로 이용된 평지석성으로 수많은 전투가 일어난 곳이다. 과거에는 건물이 35동에 길이가 1772m에 이르렀으나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810m의 성곽과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동헌), 여하정이 남아 있다. 홍주성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홍주아문을 출발점으로 한다. 홍주아문은 조선왕조 때 홍주목사가 행정을 하였던 동헌 안회당의 외삼문으로 고종(1870)때 당시 홍주목사 한응필이 보수하면서 세웠다. 홍주아문에 걸려있는 현판은 대원군의 친필로 사액한 것으로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성군청 앞마당, 수령 600년을 넘긴 일명 오관리 느티나무는 고려 공민왕(1358)때 심은 나무로 고을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밤새 울었다는 영험함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관리들이 부임해오면 가장 먼저 이 나무 아래에서 고을의 무사 평안을 기원하며 제를 올렸다고 한다. 군청건물 뒤에는 홍주목의 동헌인 안회당이 있다. 안회당은 22칸의 목조 기와집으로 조선 숙종 4년(1678)에 축조되었으며, 동헌이라는 명칭대신 ‘안회당’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 ‘노인을 평안하게 모시고 벗을 믿음으로 하여 아랫사람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일제 때 내삼문을 헐고 군청 건물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군청건물을 신축하면서 일제가 혈을 끊기 위한 방법으로 군청 현관 입구 땅 밑에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홍주성 일대는 18~19세기 천주교 박해로 수백 명이 순교한 성지로 그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홍주천주교성지 순례길은 지금도 사계절 끊임없이 전국에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목사의 동헌 앞에서 신자들이 끊임없이 문초와 형벌을 받은 곳으로 순교자들의 숭고한 신앙을 기리게 하는 곳이다. 안회당 잔디공원 한 켠에는 조그마한 연못을 품고 있는 여하정은 고종 33년(1896) 이승우 목사가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정자로 정자 내의 기둥에는 시액 12현판이 걸려 있다. 정자와 나란히 있는 고목에 더 눈길이 끌린다. 홍주성곽 주변에는 옛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물들이 산재되어 있다. 성곽은 토성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는데 성곽만 따라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홍주성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켜 이 곳 성에 주둔하여 일본군을 화포로 공격하여 퇴각시키기도 했다. 그런 역사의 흔적들은 성곽 외곽을 돌다보면 역사의 인물을 흉상으로 만날 수 있다. 고려의 명장 무민공 최영장군, 사육신의 성삼문 선생, 청산리 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 님의 침묵의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선사 등이 있다. 홍주성 남문인 홍화문의 성벽방향으로 오르다보면 홍주성 수성비와 홍주목사 선정비를 볼 수 있다. 특히 홍주성 수성비는 1824년(순조24) 황폐된 홍주성 보수를 완공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성의 축조과정을 알 수 있는 비이며, 홍주목사 선정비는 조선시대 선정을 베푼 홍주목사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한편 성내에는 홍주성 우물터의 외형이 복원이 되어 있는데, 1872년 제작된 ‘홍주지도’에서 확인 된 홍주성 안에 있었던 3개의 우물 중 하나라고 전해진다. 옥사는 형벌을 집행하기 전에 수용하는 감옥으로 역사공원으로 추진하면서 2012년에 복원됐다. 옥사 안에는 형을 집행할 때 사용하였던 형구와 감옥에는 죄수까지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옥사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시내 한 복판에는 홍주성의 동문인 조양문이 버티고 있다. 조양문은 홍주의병, 동학농민운동 등 격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여전히 천년 역사의 홍주 땅을 지키고 있다. 이렇듯 천년홍주 역사문화골목길에는 천년의 스토리가 가득 담겨 있는 골목길의 이야기가 지역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을 견인하고 있다. 또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생동감 넘치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한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