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홍성사람-다문화가족 만세 기사 (20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최고의 아빠로 존경받는 데이빗 송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 광천에서 12명의 아이들 입양한 호주 출신 구세군 선교사 최고의 아빠로 존경받는 데이빗 송 직접 낳지도 않은 아이를 12명이나 입양해 친자식처럼 기르는 사람이 있다. 데이빗 송(63), 멀리 호주에서 온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거나 해체된 가정의 자녀들을 거둬 자신의 자식으로 삼았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는 독신남으로서 한국의 고아들을 위한 양부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행복한 일이라고 고백하는 사나이다. 지난달 23일 광천읍 신랑2동 서해삼육고 부근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ㄱ자 형태의 오래 된 한옥이었다. 7년 전 사서 수리해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만든 보금자리로 방마다 침대가 있었고, 자개농과 아주 오랜 옛날 우리 어른들이 쓰던 문갑 등의 고가구도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싫증나 버린 골동품을 외국인이 잘 모셔놓고 아껴 쓰는 것이 신기했다. 그는 방을 두루 보여줬는데 침대에 인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8-04-09 09:05 서민들의 간식 따뜻한 붕어빵 가족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2> 광천터미널 부근 노점상 이명성·뚜엔티 부부 서민들의 간식 따뜻한 붕어빵 가족 광천읍버스터미널 부근 시장 초입에 30년 전통의 붕어빵 노점이 있다. 두루뭉술한 포장을 둘러 벽과 지붕을 만들어 하늘을 가리고 기계와 좌판을 차린 가게지만 붕어빵만큼은 근사한 이름을 가진 고급 브랜드의 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빵을 굽는 사람은 뚜엔티(26), 키가 자그마한 베트남 여인이다. 그러나 베트남 붕어빵은 아니다. 그녀의 곁에는 자상한 시어머니 성복자(67) 여사가 사부 역할을 하며 며느리를 최고의 빵장사로 만들었다.성 여사는 거기서 붕어빵을 판지 29년이 됐다고 한다. 처음 노점을 할 때만 해도 광천읍이 인구도 많았고 경제적으로 매우 번성할 때여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회고한다. 그 때 열심히 돈 벌었으면 빌딩을 하나 짓거나 근사한 가게를 얻어 장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8-04-23 09:30 결혼 늦었으나 예쁜 딸 얻어 행복한 3대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3> 김상진·다랏트 부부 결혼 늦었으나 예쁜 딸 얻어 행복한 3대 김상진(55)·다랏트(55) 씨, 두 사람 다 동갑내기로 나이 42살에 만나 결혼했다. 늦은 나이에 첫 임신은 실패했지만 그 다음 해에 가진 아기는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지금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10살이다. 기자가 이들 부부의 가정을 방문한 날 딸 호연이와 어머니 이광예(83) 여사도 자리를 함께 했다. 광천읍 광천천 건너 원촌마을에서 삼대가 함께 산다. 그러나 이 여사는 처음에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시동생이 태국 처녀가 평택에 있다고 해서 같이 가 봤는데 나이가 너무 많았어요. 손주를 못 볼 것 같아 싫었죠. 그런데 아들이 선을 한번 보고 와서는 자꾸 호감이 가는지 자식이 안 생겨도 둘이 재미나게 살고 싶다며 결혼하겠다는 거예요.” 이 여사는 기왕이면 매우 젊은 며느리를 봤으면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08 09:05 한국말을 전혀 섞지 않는 교수법이 경쟁력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4> 위즈덤영어학원 윤제다 원장과 제네비이브 씨 한국말을 전혀 섞지 않는 교수법이 경쟁력 홍성읍 홍성초등학교 정문 주변은 학원이 밀집한 곳으로 홍성군에서는 비교적 뜨거운 교육열을 느낄 수 있는 동네다.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학원들로서 그 가운데 외국인이 운영하며 가르쳐 차별화된 곳이 위즈덤영어학원이다. 이 학원의 윤제다 원장과 제네비이브 강사는 필리핀 출신으로 모국에서 공용어로 쓰는 미국식 영어에 정통한 원어민이다. 두 사람 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서 결혼한 남편의 나라 한국에 와서 영어교육시장에 뛰어들었다.윤제다 원장은 2014년 처음 홍성에 와서 영어학원에 강사로 취업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8월 위즈덤영어학원을 인수했다. 윤 원장은 한국말을 할 줄 몰라 누구든지 영어로만 소통해야 한다. 오히려 그 점이 위즈덤영어학원의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21 09:20 주말에는 홍성지역 필리핀 커뮤니티센터 역할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5> 홍성전통시장 ‘안나마트’ 마일래 사장 주말에는 홍성지역 필리핀 커뮤니티센터 역할 안나중고폰마트, 홍성전통시장 내에 한국인 상점들 속에 자리 잡은 필리핀 가게다. 그러나 가게 안 매대에는 휴대폰을 찾아볼 수 없다. 필리핀 출신 마일래(28) 사장에게 물어보니 처음 시작할 때 주요 품목으로 중고폰을 취급했으나 지금은 판매하지 않고 식료품만 취급한다고 했다. 가게의 투명한 유리창에 코팅된 예전 상호 그대로지만 필리핀 출신 다문화가족들에게는 이미 유명해진 집결장소라 마 사장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물론 가게에 진열된 식료품은 한국산이 아니다. 전부 필리핀에서 수입한 것이다. 마 사장은 홍성군에 살고 있는 필리핀 사람이 약 100명 정도 된다고 추산하면서 특히 주말이면 좁은 가게가 미어터질 정도로 찾아온다고 했다. 가게를 처음 시작한 것이 지난해 9월. 사업 초기부터 마 사장은 대박을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04 09:08 산재사고 당한 환자에게 나타난 천사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6> 금마면 인산리 김선옥 산재사고 당한 환자에게 나타난 천사 2008년 홍성에서 전기공으로 일하던 최상부(53) 씨는 고압선에 감전돼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행히 고압선에 접촉된 신체의 일부만 훼손된 채 생명은 건졌다. 오른쪽 손가락의 살이 심하게 타버렸는데 곧장 서울 한강섬심병원으로 이송된 최 씨는 1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다른 부위의 살을 이식해 손가락의 원형을 겨우 살렸을 뿐 오른손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됐다. 원치 않는 장애인 신세를 한탄하며 병실에 누워 있던 그에게 천사가 나타났다. 매우 아리따운 한 여인이 아직도 40대 노총각이었던 그의 병실을 찾아와 극진히 간병하면서 구혼까지 했던 것이다. 그 천사의 이름은 김선옥(48) 씨, 지금 금마면 인산리에서 최 씨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2002년 한국에 연수생으로 왔지요.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18 09:16 방과후교실 중국어 가르치며 보람느껴요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7> 홍성읍 월산리 한영란 방과후교실 중국어 가르치며 보람느껴요 일제강점기 할아버지는 넓고 비옥한 땅을 찾아서 조국을 떠나 만주로 갔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조국은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영영 돌아갈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대신 손녀가 훗날 조국 땅을 밟았다.지금 홍성읍 월산리에 살고 있는 한영란(42) 씨는 18년 전 대한민국에 왔지만 아직 할아버지의 핏줄을 찾지는 못했다. 할아버지가 청주 한 씨라는 것과 청주가 고향이라고만 전해 들었을 뿐 그 많은 종씨들 속에 촌수가 가까운 혈족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국생활 3년째였던 2002년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지금은 외롭지 않은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2000년 취업 연수생으로 왔던 그녀는 처음에 식당 일부터 했다. 고향인 중국 도문에서 대학까지 졸업을 한 엘리트였지만 한국에서는 아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25 09:14 대도시 로망 없고 지금은 홍성이 엄마품이죠!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8> 홍북읍 신경리 황연옥 대도시 로망 없고 지금은 홍성이 엄마품이죠! 중국에서 대도시 생활만 했던 황연옥(43) 씨는 정작 한국에 와서 지방의 소도시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내포신도시에 살고 있는 그녀는 어릴 때 고향이 연길이다. 연길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로 인구가 50만 정도 되는 중소도시다. 1975년생 연옥 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호텔에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일찍 그만두고 베이징으로 갔다. 중국에서 변방이나 다름없는 연길에서 수도 베이징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기차만 34시간 타고 가야 했고, 베이징에 가서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스무 살 연길 처녀는 그런 불안과 엄청난 모험을 각오하고 수도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베이징에서 그녀가 처음 얻은 일자리는 식당 홀 서비스였다. 그 후 성실히 식당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옷가게를 차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10 09:07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죠”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9> 홍성읍 학계리 최소연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죠” 중국 심양이 고향인 최소연 씨는 한국어가 유창하다. 그녀는 우리와 같이 피를 나눈 한민족으로 일제강점기 증조할머니가 한국을 떠나 만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포들이 두만강이나 압록강과 가까운 국경지대 부근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그녀의 증조할머니는 계속 북쪽으로 걷고 걸어서 더 먼 중국 내륙지방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종착지로 삼고 멈춘 곳이 봉천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후 봉천을 심양이라는 지명으로 바꿨다.심양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제국의 남하정책으로 개방돼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큰 도시가 됐다. 요령성의 성도이자 지역의 중심도시로 성장한 심양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국어를 알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사회에서 주류에 들기 위해서는 공산당에도 가입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23 09:00 “고부갈등 몰라요, 비빌 언덕은 남편뿐”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0> 광천읍 송혜란·권태범 “고부갈등 몰라요, 비빌 언덕은 남편뿐” 다문화가족들에게 한국생활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우선 넘어야 할 큰 벽이다. 게다가 세대차이로 인한 갈등도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필리핀 출신 송혜란(29) 씨는 신혼 초부터 고부갈등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혜란 씨가 너무 잘 했기 때문도 아니었고, 성품이 좋고 너그러운 시부모를 만나서도 아니었다. 시부모 두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고부갈등이 뭔지 모른다. 비록 갈등이 불가피하더라도 시어머니의 존재는 며느리에게 비빌 언덕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결혼 후 원래 이름이었던 마일라 벨리아(Myla Belia)대신 송혜란이라는 한국이름을 얻었다. 그녀가 성으로 택한 송 씨는 어머니의 성이다.“돌아가신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8-05 11:34 “시부모님 모시지만 너무 편하게 해주셔요”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1> 금마면 부평리 이하나·이한경 “시부모님 모시지만 너무 편하게 해주셔요” 홍성읍 롯데마트 4층에서 ‘사진사랑’을 운영하는 이한경(46) 씨, 그의 가게에 진열된 사진의 모델은 거의 모두 자신의 가족이다. 아내 이하나(29) 씨를 비롯해 어린 3남매까지 정말 한경 씨가 모델로 삼을 만큼 모두 인물이 좋다. 요즘 전 국민이 사진사여서 사진관이 어려울 것 같은데 한경 씨는 나름대로 틈새시장을 개발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편집해주고, 오래 전 옛날 퇴색한 사진을 가져오면 새롭게 만들어 주기도 하며, 사진으로 선물용 액자를 만들기도 한다.원래 사진을 좋아했던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2010년 필리핀에 가서 인형같이 예쁜 아내를 만났다. 하나 씨는 당시 음식점에서 일하다가 한경 씨를 만났다고 한다. 먼저 프러포즈를 한 쪽은 한경 씨, 당시 30대 후반의 나이로 미혼이었던 그는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8-20 09:18 낯선 고장에 문 연 태국식당 문전성시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2> 홍성읍 대교리 마티카 낯선 고장에 문 연 태국식당 문전성시 오후 3시가 넘으면 조용할 줄 알았는데 그 날도 손님들이 우루루 타이씨암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자도 그들을 뒤따라 들어가니 조삼현(50) 사장이 갑자기 분주한 상황에서 기자를 알아보고 인사하며 부인 마티카(40) 씨에게 특별한 손님이 방문했다고 알렸다. 마티카 씨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병 모양의 잔에 든 시원한 차를 갖다주고 방금 같이 들어온 손님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예닐곱 명 되는 손님들은 마티카 씨와 같은 태국 출신 노동자들로 보였다.2주 전에도 조용할 줄 알고 오후 3시 경 식당을 방문했다가 헛수고 한 적이 있다. 점심시간이 이미 지난 오후 어중간한 시간인데도 3~4개의 테이블을 채운 손님들로 왁자지껄했다. 겨우 인사만 하고 주방으로 모습을 감췄던 마티카 씨를 무작정 기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9-03 09:18 “일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해요!”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3> 홍북읍 신경리 메이린·박순철 “일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해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메이린(43)씨는 지금 96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부 중의 효부다. 막내딸이 젖을 뗄 무렵부터 시작해 올해 7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생활력도 강한 엄마다. 메이린 씨는 공장일도 마다하지 않고 남편과 함께 맞벌이를 하며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올해 넓고 근사한 집을 샀다.지난 5월 내포신도시에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홍예공원 근처의 신축아파트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 동안 살았던 홍성읍내의 집도 신축아파트였지만 17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헌집이 됐다. 주말에 모처럼 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면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홍예공원을 한 바퀴 돈다. 평소 종일 거실의 침대에서 혼자 TV만 보며 무료함을 달래는 어머니에게는 자녀들과 함께 하는 기획특집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9-17 09:18 필리핀 세 자매의 즐거운 홍성살이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4> 홍성읍 오관리 박규성, 카트린 필리핀 세 자매의 즐거운 홍성살이 한국 사회는 19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화에 따라 인구의 국가 간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특히 농촌 지역에서 혼인 적령기를 놓친 미혼 남성들이 국제결혼에 눈을 돌리면서 더 활발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한 심심치 않은 불편한 시선도 존재했지만 각 지자체와 정부의 다양한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 등으로 인해 이제 다문화 가정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다.필리핀에서 온 카트린이 친언니의 권유로 한국에 오게 된 것이 지난 2010년이다. 필리핀에서 11남매의 아홉째인 카트린은 한국에서 결혼해 정착한 친언니의 권유로 홍성에 오게 되면서 지금의 남편인 박규성 씨를 만나 사랑의 꿈을 이뤘다. 이후 여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09 09:13 서로가 잘 도와주는 우리는 필리핀 가족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5> 장곡면 산성리 김점대, 김에델라 서로가 잘 도와주는 우리는 필리핀 가족 낯선 나라에 이주해 오랜 시간 정착해 살아도 그 나라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 나라 말을 잘 하고, 음식을 잘 먹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낸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내 가족이 있고 모국의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 외롭지 않게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필리핀에서 이주해온 다문화 가정들이다.장곡면에 거주하는 김점대, 김에델라 씨는 지난 2014년에 결혼했다. 김에델라 씨가 한국에 온 것은 지난 2004년이었다. 결혼과 함께 한국에 왔지만 결혼에서는 쓴 고배를 마셨다. 이후 김점대 씨를 만나 아이를 낳고 시아버지를 모시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한국 여자들도 쉽지 않은 시골살이를 더구나 몸이 불편한 시아버지를 모시며 말끔하고 정갈하게 생활하고 있음에 그 칭찬이 자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15 09:13 하늘이 내게 보내준 천사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6> 홍북읍 신경리 조경철, 조은하 하늘이 내게 보내준 천사 한국의 사진작가 김영갑은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사진 작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돌 하나하나 자신의 마음을 담아 두모악 갤러리를 만들었다. 이제 갤러리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사진작가의 애잔하고 가슴 벅찬 사진을 관람한다, 루게릭병은 근위축성측색경화증으로 뇌와 척수에 있는 운동신경이 손상되는 희귀 질환이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조경철 씨의 옆에는 필리핀에서 온 조은하 씨가 있다.조은하 씨는 필리핀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학업을 그만두고 이후 아버지 병시중을 거들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3년을 넘기지 못하고 55세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한국으로 시집 간 친척언니가 지금의 남편을 소개했다. 남편이 장애인이었지만 3년 동안 아버지를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22 09:17 “한국에서 살아 기쁩니다”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7> 홍북읍 신경리 이 예브니아·이 알렉산도 “한국에서 살아 기쁩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를 통틀어 고려인이라 일컫는다. 러시아어로는 ‘카레예츠’라고 하며, 현지의 한인 교포들은 스스로를 고려사람(Koryo-saram)이라고 부른다. 한국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 농민 13세대가 한겨울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서 우수리강(江) 유역에 정착했고, 이어 1865년에 60가구, 그 다음해에 100여 가구 등 점차 늘어나 1869년에는 4500여 명에 달하는 한인이 이주했다.이후 이민은 계속됐는데, 거의가 농업 이민이었으나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망명 이민도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이른바 대숙청 당시 연해지방의 한인들은 유대인과 체첸인 등 소수민족들과 함께 가혹한 분리·차별정책에 휘말려 1937년 9월 9일부터 10월 말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29 09:01 두 아이 엄마가 된 네팔아가씨, 우니사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8> 구항면 마온리 타망 우니사 두 아이 엄마가 된 네팔아가씨, 우니사 네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얀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다.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 남서면에 위치한 나라로 중국의 시짱자치구와 국경선을 접하고 있으며 동·서·남으로 인도에 둘러싸여 있다. 대히말라야산맥은 티베트와 경계를 이루는데 정작 네팔 사람들이 눈을 만져보는 기회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저 멀리 눈이 쌓인 산맥을 바라볼 뿐이다.네팔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타망 우니사는 지난 2013년에 남편을 따라 홍성에 왔다. 현재 홍성에 거주하는 네팔 다문화 가족은 모두 3가구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많다.“네팔은 라면 공장, 담배공장, 술 공장 밖에 없다. 공장이 다양하게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러 외국으로 나간다. 20살이 되면 말레이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곳으로도 많이 나간다. 벼를 많이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1-05 09:00 조금은 다른 문화지만 즐거운 한국생활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9> 홍북읍 신경리 툐 올가 조금은 다른 문화지만 즐거운 한국생활 고려인들은 이주 후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환경을 열렬한 교육열로 억척스러운 삶을 극복해내고 러시아 소수민족 중 아르메니아계, 독일계, 오세트계, 유대계 등 다음으로 돈과 학식이 있는 민족으로 성장했다. 고려인들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고려인의 정체성을 딱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현재 젊은 층은 거의 대부분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물론 한국이 자신의 민족인 고려인이라고 자각은 하고 있다. 고려인들의 이름 역시 거의 모두 러시아식 이름을 사용한다. 또한 소련 해체 후 지역 민족주의가 대두하면서 여러 심한 차별을 받게 된 고려인 중에는 연해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해주를 자신이나 부모의 고향으로 여기는 노인들,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젊은 고려인들 가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1-11 09:19 “보면 볼수록 어여쁜 사람”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20> 광천읍 내죽리 이성진, 짠티칸리 “보면 볼수록 어여쁜 사람” 베트남은 54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베트남은 일찍이 1000년 동안이나 고대 및 중세 중국 제왕조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는 한편 중국문화의 영향도 받아왔다.베트남에는 킨족을 제외한 800만 명에 달하는 53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주된 민족인 베트남인(킨족)이 델타나 평야지대에 거주하면서 벼농사에 종사하는 것과 반대로 이들 소수민족의 대부분은 산악 또는 고원지대에 산재하며 유목이나 화전경작을 영위해 왔다. 베트남인들은 스스로 근면, 성실, 인내, 친절, 용감성 등의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는 외침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국민으로 자신들을 표현하고자 하며 무엇보다 외세에 굴복하지 않은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성실함과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1-19 09:16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