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홍성지역 필리핀 커뮤니티센터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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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홍성지역 필리핀 커뮤니티센터 역할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6.0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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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5>

홍성전통시장 ‘안나마트’ 마일래 사장
가게를 방문한 언니들이 일을 도와줘 큰 힘이 된다는 마일래 사장(가운데).

안나중고폰마트, 홍성전통시장 내에 한국인 상점들 속에 자리 잡은 필리핀 가게다. 그러나 가게 안 매대에는 휴대폰을 찾아볼 수 없다. 필리핀 출신 마일래(28) 사장에게 물어보니 처음 시작할 때 주요 품목으로 중고폰을 취급했으나 지금은 판매하지 않고 식료품만 취급한다고 했다. 가게의 투명한 유리창에 코팅된 예전 상호 그대로지만 필리핀 출신 다문화가족들에게는 이미 유명해진 집결장소라 마 사장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물론 가게에 진열된 식료품은 한국산이 아니다. 전부 필리핀에서 수입한 것이다. 마 사장은 홍성군에 살고 있는 필리핀 사람이 약 100명 정도 된다고 추산하면서 특히 주말이면 좁은 가게가 미어터질 정도로 찾아온다고 했다. 가게를 처음 시작한 것이 지난해 9월. 사업 초기부터 마 사장은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지난 24일 방문했더니 마 사장이 커다란 종이상자를 뜯어 그 안에 있는 상품을 꺼내 진열하는 작업으로 분주했다. 필리핀에 주문한 물품이 방금 국제특송으로 도착한 것 같았다. 가게를 방문한 여성 2명이 더 있었는데 그들과 같이 작업을 했다. 같은 나라에서 온 다문화가족들로 마 사장은 혼자서 운영하는 가게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언니들’이 도와준다고 했다. 그들끼리는 기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모국어인 타갈로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투명한 창 안으로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가게 내부는 지극히 단조롭고 소박한 분위기에 사방 벽과 공간을 다 채울 만큼 물건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해외에 나가면 김치와 고추장, 라면 등을 그리워하듯이 먼 이국땅에 와 있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고국의 식료품이 다 구비돼 있는 듯 했다. “필리핀 식품만 취급해요. 필리핀 과자, 라면, 양념, 간장 다 있어요. 가게에 다른 직원은 없어요. 언니들 안 바쁘니까 같이 간식 먹고 얘기도 나누고 도와줘요.” 마 사장은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하고 싶어도 인건비가 비싸 엄두를 못 낸다고 했다. “가게세 비싸지 않아요. 다른 데보다 여기가 싸요.” 아직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가냘퍼 보이는 여성이 한국 상인들 틈새에서 사업주가 되어 가게를 꾸려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당차고 대견해 보였다. 한국말도 잘 하는 편이었다.

마 사장이 한국에 처음 온 것은 2012년, 한국인 남편을 따라 왔다. 남편 윤세덕(48) 씨가 당시 필리핀에 구혼하러 와서 그녀와 결혼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남편과의 나이 차이는 무려 20년, 국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쉽게 극복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로 서툰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짧은 영어 단어로 대화하면서 남편이 한국말 많이 가르쳐줬어요. 처음에는 몇 달 동안 집에서 배우고 복지관에 가서도 2년 정도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마 사장은 지금 6년째 한국생활을 하면서 두 딸도 낳았다. 지금 5살, 4살로 어린이집에 다닌다. 아이들이 젖을 떼고 성장하면서 사업을 시작한 것인데 무엇보다도 남편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몹시 바쁜 가운데서도 남편은 가게를 얻어주고 처음 몇 달 동안은 틈만 나면 가게 일을 도와줬다. 마 사장은 남편이 아니었으면 이 사업을 못 했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지금 진열된 물건에 비해 가게는 다소 넓어 보이는데도 마 사장은 주말에 몰려드는 필리핀 사람들 때문에 너무 좁단다. 그들이 마음 놓고 차를 마시며 고국의 가족들에 관한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쉬고 갈 수 있는 카페도 같이 운영하는 것이 마 사장의 꿈이다.

안나마트가 필리핀 다문화가족을 위한 커뮤니티센터가 되면서 마 사장은 금세 빠지는 물품을 채우느라 일주일마다 고국에 주문을 한다. 수입도 좋은 편이어서 생활비를 대고 은행에 저축할 여유도 생겼다. 월·화요일 가끔 쉬기도 한다.

여전히 한국말이 어렵다고 하는 마 사장은 아이들이 조금 더 성장하면 노래로 타갈로그어를 가르쳐 주고 싶다고 했다. 물론 두 딸은 엄마보다 한국말을 더 잘한다. “필리핀 말은 노래로 먼저 배우는 게 쉬워요. 노래는 신나게 부를 수 있으니까요.” 외모에서 풍기는 부드러운 모성 속에 강인한 모습을 발견한 기자에게 마일래 사장이 반복해서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살려면 약하면 안 돼요. 강해야 돼요. 마음이 강해야 돼….”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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