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행복마을 기사 (30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순수함' 속에 바지락과 주꾸미의 마을 15. 서부면 어사리 '순수함' 속에 바지락과 주꾸미의 마을 어사리는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에 있는 마을이다. 서부면에서 남당리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으며 앞에 천수만이 있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본래 결성군 하서면의 지역으로써 모래밭에 있으므로 어사라 하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염리, 중리 송천리, 소점동을 병합하여 서부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구렁목, 염리, 불당골 등이 있다. 구렁목은 구렁목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염리는 예전에 앞 바닷가에서 소금을 구웠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불당골은 불당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홍성읍에서 안면도 방면으로 가다 상촌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한 뒤 40번 국도를 타고 남당리로 들어가다 보면 남당리 바로 전에 있는 마을이 어사리다. 어사리는 송촌마을과 어사마을로 이뤄져 있다. 기획특집 | 박수환 기자 | 2010-01-18 16:23 도시와 농촌의 경계에서 넉넉한 인심 가득 16. 금마면 죽림리 도시와 농촌의 경계에서 넉넉한 인심 가득 홍성읍에서 21번 국도를 따라 예산방면으로 향하다보면 길 가에 가구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명 금마면 가구단지. 20여년 전 하나 둘 가게가 자리 잡더니 어느새 가구단지로 변해가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금마면 죽림리 일대이다. 죽림리는 금마면의 중심마을이다. 죽림리에 살고 있는 마을 주민만 해도 400여명에 이른다. 마을에는 금마․홍북파출소를 비롯해 홍성소방서 금마면지역대, 배양초등학교, 정원공업사, 자동차 매매상사 등 다양한 기관과 기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한 때 사람들로 시끌벅적 했던 장터도 아련한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금마면지에 따르면 죽림리(竹林里)는 대숲이 많이 있었다 해서 죽림골 또는 죽림동이라 불렸다고 한다. 죽림리는 내기와 배양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농사와 관련해서 전해 기획특집 | 윤종혁 | 2010-01-27 09:30 과거의 학교와 현재의 학교가 공존하는 마을 17. 홍성읍 대교리(교동마을) 과거의 학교와 현재의 학교가 공존하는 마을 마을은 마을마다의 옷을 입는다. 화려한 옷을 입기도 하고 담박한 옷을 입기도 하며 세련된 옷을 입기도 하기만 수수한 옷을 걸치기도 한다. 때로는 고풍스런 옷으로 멋스러움을 한껏 드러내기도 하고 최첨단의 옷으로 치장하기도 한다. 홍성읍 대교리(大校里)는 고풍스런 옷을 멋스럽게 갖추고 단정하며 담박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을이라는 인상이 짙다. 특히 대교 1․2리는 홍주향교, 혜학서원 터, 홍주의사총, 천주교순교성지 등이 남아있고 오랜 내력을 지닌 마을이라 그런지 예스러움이 가득 번져있는 마을이다. 대교리는 군청과 읍사무소가 있는 시내에서 가까워 개발이 크게 이루어진 지역이다. 특히 대교 2․3․4리의 개발이 두드러지고, 홍주향교가 있는 대교 1리는 그나마 옛 모습이 남아있긴 하나 전통적인 농촌마을과는 달리 시내 기획특집 | 전상진 | 2010-02-01 14:45 삼준산 아래 넉넉함과 풍요로움 가득한 마을 18. 갈산면 가곡리 삼준산 아래 넉넉함과 풍요로움 가득한 마을 갈산면소재지에서 수덕사쪽으로 4~6km 쯤 달리다보면 갈산면 가곡리 노상마을과 동막마을이 나온다. 가곡리는 마을 뒤쪽으로 삼준산이 병풍처럼 감싸안고 있으며 마을의 풍경이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자연마을로는 노상마을과 동막마을이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태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노상마을 노상마을은 삼준산 줄기에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갈산과 수덕사로 향하는 40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마을 안쪽으로는 넓은 들녘과 와룡천, 실개천이 지나고 있으며 들판 너머로 백월산이 건너다 보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地勢)라는 뜻으로, 풍수지리설에서 주택이나 건물을 지을 때 이상적으로 여기는 배치)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마을 동쪽으로는 예산군 복당리와 기획특집 | 이은주 | 2010-02-08 16:02 "사라져가는 마을의 애잔한 기억 담아" 19. 충남도청 신도시 이주민들의 이야기 "사라져가는 마을의 애잔한 기억 담아"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이제 곧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명절을 앞두고 있다. 설날이면 선물꾸러미를 양손에 들고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로 눈이 부시다.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설레는 일인가. 도시 생활에 지치고 타향에서 겪는 서러움 같은 것이 와락 밀려올 때면 늘 생각나곤 하는 것이 바로 고향 아닌가. 거기에 설 명절이 곧 다가오니 얼마나 마음 설레고 그리움이 왈칵 밀려오는가. 정말로 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고 어린 시절 같이 뛰어놀던 고향 친구들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차가 밀려도 평소 때보다 서너 시간 늦어도 고향은 언제나 고향이다. 포근한 그 무엇인가가 우리들을 잡아 끌어당기니 말이다. 그러나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오히려 명절이 더 견디기 힘들다. 그리 기획특집 | 전상진 | 2010-02-12 14:00 오늘을 발판삼아 미래 꿈꾸는 마을 20. 홍동면 구정리 오늘을 발판삼아 미래 꿈꾸는 마을 홍동면 구정리(求精理)는 조선시대 말엽 홍주군 홍안송면 지역이었다. 홍동면지에 따르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요리, 신기리, 박석리, 신대리, 방축리, 동막리, 상동리를 병합해 구정리라 하고 홍동면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현재 고요마을과 동막마을로 나뉘어 있다. 고요마을은 마을 북쪽으로 박석고개가 있어 박석고개마을이라고도 부르며 서쪽으로는 고인돌, 괸돌마을이라 부르는데 마을에 지석묘가 있었다고 한다. 동막마을은 구정리의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지형이 금반처럼 생겼다고 해서 금반양(金盤陽)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홍동면 구정리는 홍동면에서 마을 터가 넓은 지역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넓은 들판에서 행복 일구는 동막마을 동막마을은 젊은층이 없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모습을 간직하고 있 기획특집 | 윤종혁 | 2010-03-02 13:25 바닷가 사람들의 꿋꿋한 삶이 되살아나는 전통의 마을 21.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마을 바닷가 사람들의 꿋꿋한 삶이 되살아나는 전통의 마을 "온통 잿빛 하늘이다. 바다는 거친 풍랑으로 들썩이며, 역시나 하늘을 닮아 온통 잿빛이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포구에 미친바람은 속절없이 이내 간장 다 녹이듯이 세차게 불어제친다. 고기잡이 나간 아비와 아들은 이 거친 파도 속에서 감감 무소식이고, 무사귀환을 바라는 어미와 딸의 마음은 가늘게 찢어져 내린다. 이윽고 저 멀리 바다에서 소리가 들린다. 정적을 깨치는 뱃고동 울리는 소리며 사람들 아우성치는 소리. 만선이다, 만선! 이번 뱃길도 만선일세, 풍어야! 아비와 아들이 돌아오고, 모두가 돌아오고. 어미와 딸은 기뻐 어깨를 들썩이며 덩실덩실 춤추며 어깨춤을 추는 이웃들의 무리 속으로 한없이 솎아져 둥글게 원무를 만든다."어디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다. 서해안을 따라가다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전라도 해 기획특집 | 전상진 | 2010-03-09 09:28 드넓은 평야와 물장구 치던 금리천에서 희망 발견하다 22. 결성면 금곡리 드넓은 평야와 물장구 치던 금리천에서 희망 발견하다 결성면 금곡리는 본래 결성군 현내면의 지역으로 검은갯골 또는 금곡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천리, 해리, 동호리, 성대리, 교후촌, 우촌의 각 일부와 기산면의 목현리 일부를 병합해 금곡리라 해서 결성(용천)면에 편입됐다. 금곡리는 예로부터 매우 온화하고 비옥한 토지와 천혜의 어염시수가 풍부해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나 수령, 즉 현감이 부임 시 울고 와서 떠날 때는 아쉬움에 울고 간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지리적으로는 은하면 목현리와 경계를 이루며 마을과 마을사이로 금리천이 흐르고 넓은 평야를 가진 아담하면서도 탁트인 평화로운 마을이다. 또한, 불과 몇 해 전까지 바닷물이 드나들던 천수만 상류이기도 하고 60~70년대에는 커다란 고깃배가 마을 앞 기획특집 | 이은주 기자 | 2010-03-12 13:21 백월산 줄기따라 새롭게 형성돼 도·농이 공존하는 마을 23. 홍북면 중계리 1 : 홍천마을 백월산 줄기따라 새롭게 형성돼 도·농이 공존하는 마을 홍북면 중계리 홍천마을은 홍북면사무소의 동남쪽에 위치해있으며 동쪽으로는 홍성읍 소향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예산군 덕산면의 대동리와 낙상리가 위치해 있다. 또 남쪽으로는 홍성읍 월산리와 인접하고 북쪽으로는 중계리 동막마을과 상하1리가 인접해 있다. 홍천마을은 예로부터 백월산 줄기가 마을 가운데로 뻗어나와 부엉바골을 경계로 좌우에 형성된 마을이었다. 경지정리 이전의 홍천(洪川)은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개울가를 따라 논과 들이 형성되어 논배미마다 담수어족이 풍부해 겨울철이면 기러기와 두루미 등의 철새들이 모여드는 마을이라 해서 홍천(鴻泉)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홍천마을은 예로부터 함안 이씨와 청주 한씨들이 세거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넘말과 뒤뜸에는 함안 이씨들이 살았고 삼밭골에는 기획특집 | 이은주 기자 | 2010-03-22 12:07 박토를 비옥한 토지로 일궈내 부촌으로 성장시킨 마을 24. 홍북면 중계리 2 : 동막마을 박토를 비옥한 토지로 일궈내 부촌으로 성장시킨 마을 홍북면 중계리라는 명칭은 중리와 동계를 합해 붙인 이름이다. 동막마을은 홍동산과 용봉산 사이에 위치한 마을로 봉신리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용봉초등학교를 지나 500여 미터를 더 가면 동막과 홍천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동막마을의 입구로 마을표지석과 두 기의 나무 장승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막마을은 남북으로 홍성읍 소향리와 예산군 덕산면 가루실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에는 홍천마을과 인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상산마을이 있다. 홍북면지에 따르면 현재는 다양한 성씨들이 살고 있는 각성바지 마을이지만 오래전부터 전의이씨 청강공파의 후손들이 세거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의이씨 명준은 1603년 문과에 장원하여 성균관 전적과 사헌부 감찰 등을 거쳐 덕산현감, 충청도 관찰사, 병조참판 등을 기획특집 | 이은주 기자 | 2010-03-29 10:31 마을주민들의 화합으로 날마다 발전하는 부자마을 25. 홍성읍 월산리 1 마을주민들의 화합으로 날마다 발전하는 부자마을 백월산 정상에 올라서면 월산1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그 형상이 꼭 대한민국 지도 모양을 닮았다. 백월산 정기를 받아 이어져 흘러내려온 듯 일월산 계곡의 산수와 함께 자리한 마을. 월계천이 흘러내려 라는 지명이 생긴 월산1리는 동쪽으로는 오관6리와 접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월산2리, 남쪽으로는 옥암리, 북쪽으로는 소향리와 인접하고 있다. 월산리는 백제 때 금주군, 신라 때 해풍현, 고려 때 홍주고을에 속했었다. 조선 초 홍주군에 속했다가 조선 말 홍주군 주북면으로 백월산 아래에 위치하면서 이라는 지명이 생겼다.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하리, 감계리 및 월산리·월계리·서문리 일부를 합해 월산리라 해, 홍양면에 편입됐다. 1940년 10월 홍성읍으로 승격되면서 홍성읍 월산리가 됐다. 월산 기획특집 | 전상진 기자 | 2010-04-06 10:48 "백월산 정기로 홍성의 대표 정치인 배출한 자랑스런 마을" [우리동네 행복마을] 26. 홍성읍 월산1리 두번째 "백월산 정기로 홍성의 대표 정치인 배출한 자랑스런 마을" 홍성의 진산으로 일컬어지는 월산, 또는 일월산이라고 불리는 백월산은 홍성읍으로부터 약 4㎞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예로부터 이 산은 신령함이 높은 곳으로 이름나 있어서, 인근 지역에 사는 무속인이나 신도들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무속인과 신도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는 유명한 산이다. 홍성군에서도 해마다 정월 초하루 날 백월산 정상에 올라 해맞이를 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고천대제를 지내며 한 해 모든 군민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그만큼 백월산은 홍성의 진산으로 군민들로부터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산이다. 홍성읍 월산1리(월계마을)도 이 산의 정기를 받아 산등성이를 이고 산줄기를 따라 마을의 터전이 마련됐다. 야트막한 산자락에서 이어져 내려와 평지에 다다르기까지 집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마을곳곳 기획특집 | 전상진 기자 | 2010-04-12 17:35 꽃산·꽃사태, 봄마음 일렁이는 사랑스런 마을 28. 홍성읍 고암2리 꽃산·꽃사태, 봄마음 일렁이는 사랑스런 마을 온통 꽃산이다. 꽃사태가 났다. 꽃사태가 나듯 흐드러지게 피어나 봄이 무르익었다. 꽃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다. 멀리 다른 곳으로 꽃구경 갈 필요도 없다. 벚꽃이 활짝 피어나 봄 마음이 일렁이는 사랑스런 마을, 홍성읍 고암2리를 찾으면 된다. 마을사람들 합심으로 마살미동산 만들어 홍성읍 고암2리의 마을 뒷산 마살미 또는 마산(馬山)에는 마을에서 정성껏 가꾼 벚꽃이 올해 4월에도 어김없이 가득 차 피었다. 꼭 10년 전 마을에서는 이기식(67) 전 마을운영회장을 중심으로 왕벚나무, 겹벚나무, 잣나무를 마실미동산에 심었다. 지금은 왕벚나무 꽃이 활짝 피었고, 일주일이나 열흘쯤에는 겹벚나무 꽃이 피어오른다. 이 전 마을운영회장은 "마살미동산은 마을의 공동소유로 돼 있고 군 기획특집 | 전상진 기자 | 2010-05-04 09:57 넓은 농경지와 주민단결로 화합 이루는 얌전한 마을 30. 홍성읍 송월리 넓은 농경지와 주민단결로 화합 이루는 얌전한 마을 홍성읍 중심지에서 29번 도로를 따라 청양방향을 달리다보면 1km지점에서 우측 남쪽으로 향하는 길로 3.2km 거리에 죽전마을 입구가 있다. 삽교천에 접한 낮은 구릉지대로 송월리 전체에 백제시대의 고분유적이 확인되고 있을 만큼 예로부터 사람 살기에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 송월리는 그리 넓은 면적은 아니다. 해서 다른 마을처럼 분구되지 않고 죽전마을과 송암마을, 월천마을 등 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송월리는 홍동천을 경계로 홍동면 팔괘리와 나뉘어진다. 송월리의 입향조는 죽전마을 파평윤씨, 송암마을 신평이씨, 월천마을 청주이씨 순으로 입향했다고 전해진다. 죽전마을은 대나무가 울창해 지어진 이름으로 최초로 파평 윤씨가 입향해 살았다고 전해진다. 파평 윤씨는 현재 30대째 후손이 이어져 살고 있으며 기획특집 | 이은주 기자 | 2010-05-17 09:16 드넓은 평야와 넉넉한 인심 가득한 마을 [우리동네 행복마을] 31. 서부면 광리 드넓은 평야와 넉넉한 인심 가득한 마을 홍성읍에서 갈산터널을 지나 서산방면으로 40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보면 광리교차로가 나온다. 광리교차로에서 좌회전 해 바로 보이는 마을이 서부면 광리이다. 광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마을 앞쪽으로는 AB지구 간척지가 한눈에 바라다 보일정도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광리는 조선 말 고종 32년(1895)부터 결성면 상서면의 지역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서부면에 편입되어 현재 중광마을과 소리마을 두 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돼 있다. 넓은 산마루에 안겨 인심 넉넉한 중광마을 광리 중앙에 자리한 중광마을은 마을 부근에 넓은 산마루가 있어 너분마루, 너분말, 광 기획특집 | 이은주 기자 | 2010-06-04 17:54 넓은 농경지와 작목반 활성화로 부농 일구는 효도마을 [우리동네 행복마을] 33. 광천읍 운용리 넓은 농경지와 작목반 활성화로 부농 일구는 효도마을 광천읍 운용리는 대평리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광천읍 가운데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장곡면 가송 2리, 서쪽으로는 대평리, 남쪽으로는 장곡면 죽전리, 북쪽으로는 홍동면 홍원리와 인접하고 있다. 운용리는 홍동면에 편입됐다가 198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일일생활권에 가까운 광천읍에 편입됐다. 운용리에는 상원마을과 원천리 마을 경계에 위치한 아홉골짜기로 이뤄진 석삼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아홉 개의 골짜기 중 구룡실마을에는 용이 아홉마리가 살고 있어 구용쟁투의 형국이라 하여 구룡동, 구룡실, 구렁실로도 불리웠다. 광천에서 청양으로 가는 96번 도로를 가로지르는 위치에 있는 그멀들(검은들)은 장곡면 죽전리와 가송리에 접해 있고 벙어골 아래와 도축재능선 끝자락에 넓은 평야 기획특집 | 이은주 기자 | 2010-06-25 15:17 수백년 된 느티나무 아래 오손도손 모여사는 마을 34. 갈산면 쌍천리 수백년 된 느티나무 아래 오손도손 모여사는 마을 ㆍ 홍성읍에서 갈산방면으로 국도 29호선을 따라 가다보면 갈산면소재지에서 동쪽 방향으로 3km지점에 갈산면 쌍천리가 위치해 있다. 갈산면 쌍천리는 마을 앞쪽으로는 논으로 이뤄진 넓은 들판과 남산천이 나란히 흐르고 있으며 하류지점에서 구항면 오봉리 쪽에서 내려오는 남산천과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쪽에서 내려오는 와룡천이 합류한다. 해서 쌍천리의 지명은 마을 앞에서 두 개의 큰 냇물이 합쳐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와룡천과 남산천이 합류하는 지점 바로 위쪽에서 조그만 실개천과 남산천이 마을 하류쪽에서 먼저 합류해 두 개의 냇물이 합쳐지면서 흐르다가 와룡천과 다시 합류하게 되므로 세 개의 내가 합류하는 셈이다. 쌍천리에는 마을 생활권이 두 지역으로 갈라져 기획특집 | 이은주 기자 | 2010-07-12 10:11 마을 수호신 미륵 섬기며 화합 이루는 마을 35.홍북면 용산리 마을 수호신 미륵 섬기며 화합 이루는 마을 홍성읍 대교사거리에서 홍주의사총을 경유해 금마천을 따라 6km가다보면 용산리의 입구를 알리는 용산교와 돌비석이 자리잡고 있다. 용산리는 용두와 용갈산 마을로 이뤄져 있으며 전면에 금마천이 흐르고 넓은 농경지를 형성하고 있다. 뒤편엔 낮은 야산의 산줄기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그 산세가 마치 용과 같다 하여 용머리 자리는 용두리라 불리며 용의 꼬리는 용갈미, 용갈산 이라 하였다. 용산리의 생활권은 산세를 중심으로 소구릉지상의 집촌취락과 산촌취락으로 크게 나뉘어져 집촌취락의 주 농경지는 논농사, 밭농사, 목축, 딸기재배가 동시에 행해지고 산촉취락의 주 농경지는 논, 밭, 과수원, 인삼밭, 목장 등 다양한 농경지로 이뤄진다. 또 용의 머리 형국으로 금마천 방향으로 튀어나와 있는 산등성이를 경계로 용두와 용갈산 마을 기획특집 | 이은성 기자 | 2010-08-02 10:13 유서깊은 향교와 소박한 선비의 기품 간직한 마을 [우리동네 행복마을 결성면 읍내리-1 교촌마을 ] 유서깊은 향교와 소박한 선비의 기품 간직한 마을 유서깊은 향교와 소박한 선비의 기품 간직한 마을 어와 벗님네야 백제땅 결성으로 구경을 가자꾸나 성호에서 배를 타고 관난정 돌아드니 8학사가 노니는 듯 성남에 비친 별은 하지를 스쳐가는 노일성이 분명한데 석당산 올라보니 관청의 옛 모습 좌우촌에 즐비하네 교촌의 옛문화 밝혀주는 봉화산이 나날이 밝았기로 - '결성풍류가' 중에서 결성면 읍내리 동쪽에는 향교의 전통이 오롯이 전해지는 교촌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마을은 차령산맥의 낙맥으로 먼 옛날 청룡이 승천했다하여 불린 청룡산이 감싸고 있으며, 청룡산의 지혈이 내려와 조그만 산에 멈춰 명당을 이룬 자리에 향교가 건립됐다. 마을은 향학을 하고자 각지에서 모인 선비들이 향교를 중심으로 정착하여 이뤄졌는데 향교가 있는 촌이라 하여 향교마을, 즉 '교촌' 이라 이름 붙여졌 기획특집 | 이은성 기자 | 2010-08-06 18:02 오래된 유적지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마을 [결성면 읍내리-2 좌우촌마을] 오래된 유적지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마을 결성읍내리 좌우촌마을을 감싸고있는 석당산은 해발 146m 그리 높지 않지만 정상에서 서쪽으로 보면 멀리 천수만과 안면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산도에서 수룡동, 성남리, 해동마을까지 이어지는 바닷길을 볼 수 있어 옛 결성읍성이 위치해 있었다. 결성현의 관아도 정상에 위치해 서해관문의 요지에 속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산이다. 금왕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석당산은 광물이 풍부했던 산이라고 한다. 거대한 바위3개로 구성된 산에 읍신당이 있어 석당산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설이 내려져 오는데 읍신당은 현재 신당터만 남겨져 있는 상태이다. 예로부터 뱃사공들이 길을 떠날 때 제사를 지내던 신당으로 공조참판 김덕함과 그의 부인 조씨의 신위를 모셔놓고 제를 지낸 자리기도 하다. 읍내의 신당터로 결성의 무 기획특집 | 이은성 기자 | 2010-08-20 17:29 처음처음12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