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우리지역의 광복을 다시 읽다 기사 (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광복 80주년 특집] 1945년 8월 15일 정오 민족의 해방, 한반도 운명 좌우한 38도선 광복 80주년, 우리지역의 광복을 다시 읽다 〈1〉 [광복 80주년 특집] 1945년 8월 15일 정오 민족의 해방, 한반도 운명 좌우한 38도선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천황의 항복 연설은 우리 민족에게 광복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일제 강점기 35년의 식민통치가 끝장난 8·15 민족해방은 한민족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제국주의 일본이 패망함에 따라 식민지였던 한반도가 일제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 해방됐음을 의미한다. 8월 15일의 해방은 민족해방운동을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전개해온 독립운동가들의 노력과 민족의 의지에 기인하는 것이면서 연합국이 승리함으로써 이뤄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광복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한민족은 항일운동을 계속했고,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기획특집 | 한관우 발행인 | 2025-06-27 07:21 [광복 80주년 특집] 조국의 광복, 충남도민 ‘중선일보’ 한글신문 보고 ‘감격’ 광복 80주년, 우리지역의 광복을 다시 읽다 〈2〉 [광복 80주년 특집] 조국의 광복, 충남도민 ‘중선일보’ 한글신문 보고 ‘감격’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충남지역의 중심인 대전에서 발행되던 ‘중선일보’가 마침내 민족의 해방과 일본의 항복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특히 이날 중선일보의 기사는 전부 한글로 인쇄됐는데, 충남도민들은 오랜만에 ‘한글신문’을 보고 다시 한번 감격했다.당시 충남도청에서 한국인 직원의 정신적인 리더로 신망을 얻고 있던 충남도 광공부장 현석호는 해방이 된지 이틀 만에 전 직원을 도청광장에 집합시킨 후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와 더불어 광복과 독립의 기쁨이 전국뿐만 아니라 충남도 전역에서 가득한 가운데 축하의 행렬과 만세의 기획특집 | 한관우 발행인 | 2025-06-27 07:23 [광복 80주년 특집] 홍성의 건국준비위원회, 좌파세력과 인민위원회 개편 광복 80주년, 우리지역의 광복을 다시 읽다 〈3〉 [광복 80주년 특집] 홍성의 건국준비위원회, 좌파세력과 인민위원회 개편 1945년 9월 중순부터 당시 도립홍성의원 원장인 이인규의 지도하에 인민위원회 조직의 움직임이 홍성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조선공산당에서 홍성에 조공의 세포를 만들고 건국준비위원회를 인민위원회로 개편하려는 작업을 위해 송길한이라는 사람을 파견했다. 송길한은 김동진, 한보국, 이광순, 전명재 등과 접촉했고, 9월 26일에는 박헌영이 파견한 배 모라는 사람이 자치위원회를 찾아와 대전에서 개최되는 ‘충남도인민위원회 결성대회’에 대표 2명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손재학은 인민위원회에는 대표를 파견할 수 없다고 거절하자, 기획특집 | 한관우 발행인 | 2025-06-27 07:26 [광복 80주년 특집] 홍성의 우익세력, 단독정부수립운동 좌우익 대립·갈등 광복 80주년, 우리지역의 광복을 다시 읽다 〈4〉 [광복 80주년 특집] 홍성의 우익세력, 단독정부수립운동 좌우익 대립·갈등 1945년 10월 1일 좌익세력이 인민위원회를 결성해 일시 우세를 보이자, 우익도 곧 세력결집에 나섰다. 10월 7일 손재학, 원준성, 조영행, 송병진, 김봉룡, 이인상 등은 수덕사에서 회합, 우익단체를 결성하기로 합의한다. 당시 중앙에는 수백 개의 우익단체가 있어 어느 단체와 연결할지를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조직을 만들기도 합의하고 명칭은 잠정적으로 ‘사회민주주의동맹’으로 부르기로 했다. 10월 10일에는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사무실은 적산가옥인 ‘남산장(南山莊)’이라는 여관을 사용하고, 군내에서 1800여 명의 조 기획특집 | 한관우 발행인 | 2025-06-27 07:29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