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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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죠”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7.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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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9>

홍성읍 학계리 최소연
중국어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라고 강조하는 최소연 씨.

중국 심양이 고향인 최소연 씨는 한국어가 유창하다. 그녀는 우리와 같이 피를 나눈 한민족으로 일제강점기 증조할머니가 한국을 떠나 만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포들이 두만강이나 압록강과 가까운 국경지대 부근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그녀의 증조할머니는 계속 북쪽으로 걷고 걸어서 더 먼 중국 내륙지방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종착지로 삼고 멈춘 곳이  봉천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후 봉천을 심양이라는 지명으로 바꿨다.

심양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제국의 남하정책으로 개방돼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큰 도시가 됐다. 요령성의 성도이자 지역의 중심도시로 성장한 심양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국어를 알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사회에서 주류에 들기 위해서는 공산당에도 가입해야만 했다. 소연 씨 집안은 한족과 어울려 살기 위해 중국어를 열심히 배웠고, 공산당에도 가입했다. 그러자 주류에 편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족 틈바구니에서 공무원과 군인 등 공직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중국에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중국어를 하지 않으면 안돼요. 할아버지는 군인으로 근무하셨고, 전역하신 후에는 은행장을 맡으셨습니다. 한족사회에서 중국어를 안하면 살아남을 수 없어서 우리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다 공산당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도 가질 수 없었다.

“제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찾아와 전도를 하는데 할머니가 우리는 공산당 집안이어서 절대 안된다고 거부하셨습니다. 작은아버지도 은행에 다닙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큰 회사에 다 다니는데 교회에 다닐 수 없어요.”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산당원이 돼 철저히 세뇌교육을 받고 자랐다. 심양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온 남편을 만나 결혼한 소연 씨가 증조할머니의 조국에 온 것은 2002년, 남편의 고향인 홍성읍 학계리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중국과 달리 종교의 자유를 맘껏 누리는 한국사회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종교를 부정하는 그녀의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종교에 반대하는 입장이 강했죠. 나중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취직했더니 기독교봉사회가 운영하는 곳이라 아침마다 기도를 하더군요. 또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선생님이 사회복지가가 되려면 종교를 인정해야 된다고 가르치는데 나중에는 저도 인정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제 순서가 되면 기도를 했어요. 교회가 운영하는 삼육초등학교도 제가 중국어 전임교사여서 기도를 합니다. 한국에 오니까 교회와 관련된 곳이 너무 많더군요.” 그렇다고 소연 씨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종교적인 문화를 인정하고 질서를 따를 뿐이라고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죠. 다문화가족 가운데도 자기 나라 것만 지키려고 하면서 이것은 절대 아니다고 하면 안 돼요. 아닌 것도 인정해야죠.” 소연 씨는 다문화가정에서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예외지만 남편과 작은 아이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다닌다고 밝히는 그녀는 서로 인정하고 배려할 줄 아는 자세를 거듭 강조했다.

대신 소연 씨는 중국어학원을 운영하면서 주말도 없이 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16년 시작한 해법중국어교실은 홍성읍과 내포신도시, 광천읍까지 3개 교실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2017년부터는 전국의 해법중국어교실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계속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교육의 질도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해법중국어 서울본사에서 2017년 상·하반기, 2018년 전반기 평가에서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습니다. 우리가 3관왕을 한 것입니다.” 게다가 경사는 또 있다. 홍성군이 다문화가족 자녀들을 위해 지원하고 있는 이중언어교실에 참여한 초교생 2명이 최근 중국어 자격증 시험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얻어 ‘해법스타’로 뽑혔다.

“두 아이 엄마가 중국 조선족 출신인데 시험을 너무 잘 봐 전국 스타로 뽑혔습니다. 지금 5학년 밖에 안된 아이들이 계속 성장하면 나중에 외고도 갈 수 있습니다. 우리 학원에서 배워 우송대학교에 다문화가족 외국어 특기장학생으로 전액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학생도 있어요.” 소연 씨는 요즘 홍성에도 중국어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어는 이제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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