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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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살아 기쁩니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10.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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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7>

홍북읍 신경리 이 예브니아·이 알렉산도
이 예브니아, 이 알렉산도의 즐겁고 행복한 한국살이를 응원한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를 통틀어 고려인이라 일컫는다. 러시아어로는 ‘카레예츠’라고 하며, 현지의 한인 교포들은 스스로를 고려사람(Koryo-saram)이라고 부른다. 한국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 농민 13세대가 한겨울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서 우수리강(江) 유역에 정착했고, 이어 1865년에 60가구, 그 다음해에 100여 가구 등 점차 늘어나 1869년에는 4500여 명에 달하는 한인이 이주했다.

이후 이민은 계속됐는데, 거의가 농업 이민이었으나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망명 이민도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이른바 대숙청 당시 연해지방의 한인들은 유대인과 체첸인 등 소수민족들과 함께 가혹한 분리·차별정책에 휘말려 1937년 9월 9일부터 10월 말까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이들은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개쳐졌는데 당시 고려인 수는 17만 50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1만 1000여 명이 도중에 숨졌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한인집단농장을 경영하는 등 소련 내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잘사는 민족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러다 1992년 1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외에 11개 독립국가로 분리되면서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국가에서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됨으로 인해 고려인들은 직장에서 추방당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자 다시 연해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 키르기스스탄에는 현재 2만 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조국을 잊지 못하며 살고 있다. 이 예브니아, 이 알렉산도는 지난 2016년에 한국에 왔다. 2015년 알렉산도가 형님의 소개로 취업을 하면서 그 이듬해 예브니아도 아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뭐니 해도 의사소통이었다. 분명 같은 민족이건만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 특히 알렉산도는 직장 생활을 해야 하니 그 어려움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아들은 어려서 그런지 한국말도 금방 배워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아들에게 물어본다. 그 외에는 문화도 비슷해서 적응하는데 별 다른 어려움은 없다.”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한국에 와서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한국어도 배우고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을 밟으며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날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설, 추석 등의 명절을 지낸다. 모양은 다르지만 송편도 만들고 만두도 만들어 먹는다. 아기들 돌잔치나 환갑잔치 하는 것도 비슷하다.”

비록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지만 한국을 떠나 한국문화를 잘 지켜온 조부모님들 덕분에 한국의 문화가 낯선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문화로 받아들여졌다. 고려인들의 만두는 ‘배고자’라고 하는데 김치 대신 양배추와 채소 등이 들어간다. 김치는 ‘짐치’로 부른다. 먼 이국에서 조국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리움을 달래며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힘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이 아닐까 싶다. 고국의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자손들에게 고국의 맛을 잊지 않도록 해준 고려인 1세대들이 있어 더 이상 고려인들은 낯선 이방인이 아니다. 

“한국에 와서 제일 좋은 일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밤에 여자나 아이 혼자 돌아다니기에 너무 위험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밤에 여자 혼자 다녀도 위험하지 않아 좋다. 한국에 살게 돼서 너무 기쁘다.”

사람은 분명한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며 살아간다. 그 정체성의 중심에는 자신의 조국이 있다. 가슴 아픈 역사의 한 흔적이 되어버린 고려인들은 낯선 이방인이 아닌 우리와 분명한 같은 민족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다문화가족이라는 말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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