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옛 목사고을 고유지명 ‘홍주’를 찾지 못한 유일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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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옛 목사고을 고유지명 ‘홍주’를 찾지 못한 유일한 곳
  • <특별취재팀>
  • 승인 2015.06.1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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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①

 

1920년대 당시 홍주군 청사 전경(현재의 홍주아문)

홍성의 옛 고유지명 홍주 지명역사 1000년, 충남도청 홍성이전 원년
주(州)자 붙은 옛 목사고을 중 유일하게 ‘홍주’만 고유지명 못 찾은 곳
일제에 강제로 빼앗긴 고유지명 ‘홍주’ 되찾아 명예 회복해야 여론
광복 70년 ‘홍주지명되찾기 범군민운동본부’ 토종지명 되찾기 운동

 

전국을 비롯해 충청지방에서는 지금도 큰 고을 명칭에 ‘주(州)’자를 붙이고 있다. 옛날 관찰사가 주둔하고 있던 공주(公州)나 충주(忠州), 청주(淸州)가 그런 고을들이다. 그러나 한 때 공주, 충주, 청주와 같은 목사가 있었던 큰 고을 ‘홍주(洪州)’는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일제에 의해 강제로 홍성(洪城)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홍성 사람들은 스스로를 ‘홍주인’이라 부른다. 홍성읍을 휘감고 있는 성곽이 ‘홍주성’이며, 인근지역은 물론 예로부터 ‘홍주골’로 불러온 고장이다. 지금의 홍성군청 정문 옆에는 옛날 홍주목사가 집무를 보았던 ‘홍주아문’과 ‘안회당’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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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사(사진 위)에 실려 있는 홍주지명역사와 관련하여‘성종14년(995) 을미에 도단련사를 두었고 현종3년(1012) 임자에는 지주사를 두고 명칭을 홍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홍주의 진산(鎭山)인 백월산에는 ‘홍주청난사’라는 옛 사당이 있어서 홍성의 본래 이름이 홍주임을 증언하고 있다. 홍주는 지명역사 1000년이 넘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본래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전국에서 ‘주(州)’자가 붙은 옛 목사고을 중 유일하게 본래의 고유지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지역이다. ‘홍주’라는 지명 이름은 1012년(고려 현종 3)에 처음 붙여졌으니 역사가 1000년이 넘는다. 1358년(공민왕 7) 목(牧)으로 올리고 5군 14현을 관할하였으며, 조선 초기에도 ‘홍주목’이었다가 세종 때는 목사가 첨사를 겸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홍주’라는 이름은 유서 깊은 지명이다. 하지만 일제에 의하여 홍주는 홍성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 마리로 치욕스런 일이다. ‘홍주지명 되찾기 범군민운동’과 맞물려 광복 70년을 맞으며 지역의 토종지명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군민들의 여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2006년 홍성으로 충남도청이전이 확정된 이후 현재 충남도청신도시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다. 계획대로 건설공사가 진행된다면 2020년에는 충남도청신도시가 완성돼 10만 명의 인구가 몰리면 ‘시(市)’로의 승격이 가능할 수도 있다.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긴 이후 실로 80년 만에 성취된 ‘충남의 독립’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은 지난 2012년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는 해가 바로 홍성의 옛 지명인 ‘홍주’라는 지명이 생긴지 1000년이 됐다는 점이다. 홍성군은 지명사용 시점을 1018년을 기준으로 기념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1000년의 역사란 누가 봐도 대단한 역사이며, 이를 후손들이 기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뿌리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로 기념사업의 필요성을 수차에 걸쳐 제시했다. 홍성군과 지역사회단체 등에 ‘홍주지명 1000년’기념사업의 필요성을 재차 촉구하는 이유다. 이는 충남도청이전 신도시의 명칭에서 비롯되는 부작용과 관련해서도 홍주지명 1000년의 역사성과 상징성 등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며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지금의 홍성지역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감계비리국이 있던 곳으로써 백제시대에는 고막부리 현이 있었으나, 좀 더 자세히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고려 왕건은 934년 운주(지금의 홍성)전투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충남의 서북부지역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 여세를 몰아 936년 경북 선산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후삼국을 통일한다. 이후 고려 성종 14년(995) 전국을 재편성 할 때 이곳 홍성지역을 운주라 하고, 현종 3년(1012)개편 때 ‘홍주(洪州)로 고쳐 부르기 시작’하여 조선조까지 같은 지명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홍주군은 ‘결성현(結城縣, 지금의 결성면)’의 11개 면을 병합하면서 홍주군의 ‘홍(洪)’자와 결성현의 ‘성(城)’자를 따서 ‘홍성군(洪城郡)’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결국 ‘홍성(洪城)’이란 지명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명된 이름인 것이다. 충청도에서 충청도 4목·4부(홍주, 공주, 충주, 청주)중에서 충남의 공주, 충북의 충주와 청주라는 지명은 그대로 살아있으나 유일하게 ‘홍주’라는 이름만 빼앗겨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런 연유로 ‘홍주’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에 설득력이 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충남도청신도시 명칭의 혼란과 관련해서도 ‘홍주 고유지명되찾기 운동’은 반드시 펼쳐야 할 필수적 과제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홍성에는 ‘홍주’라는 지명의 흔적이 살아서 숨 쉬고 있다. 홍주성, 홍주아문을 비롯하여 홍주초등학교, 홍주중·고등학교, 홍주문화회관, 홍주체육문화센터, 홍주종합경기장 등 각종 기관단체의 명칭뿐만 아니라 상호, 간판 등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삶 속에서 ‘홍성’이란 일제가 강제로 만들어준 지명 속에서도 오롯이 ‘홍주’라는 토종 지명이 살아 숨 쉬며 면면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012년부터 지금까지 ‘홍주’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사용되고 있는 지명이 공교롭게도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해 온 지난 2012년에 1000년을 맞이했다. 이렇듯 지명의 역사가 1000년을 올곧이 이어 오는 지역도 드물다. 홍주지명 탄생 1000년을 맞이하여 ‘홍주이름 되찾기 운동’ 등을 펼쳐 일제에 강제로 빼앗긴 우리의 고유지명 ‘홍주’를 되찾아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고려사 등 각종사료와 홍양사, 홍성군지 등에 기록된 역사를 중심으로 홍주지명 1000년을 맞는 의미를 새기면서 홍주(홍성)역사의 정체성과 정서적 통합 및 충남도청 홍성이전에 따른 ‘홍주 지명역사 1000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충남도청소재지로서의 위상제고 및 도시브랜드 가치 등을 높여야 하는 일은 필수적 이기 때문이다.

‘홍주(洪州) 지명역사 1000년’의 기록은 1969년 8월 15일에 발행된 ‘홍양사(洪陽史) 연혁편, 군명’에 “성종 14년(995)을미(乙未)에 도단련사를 두었고 현종 3년(1012) 임자(壬子)에는 지주사를 두고 홍주(洪州)로 명칭을 고쳤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1980년 12월 15일에 처음 발행된 ‘홍성군지의 제2편 역사 서(緖)’에서도 홍성지명의 역사적 유래의 고려시대의 왕 또는 연도에 ‘성종14년(995)’의 명칭에는 “운주(運州) 안평(安平) 해풍(海豊) 홍양(洪陽)”이라 기록했고, 설명에는 도단련사(都團鍊使)를 둔 것으로 돼 있다. 또 “홍양(홍주 일부)현 신설관할. 원군(遠軍) 3군 11현 관할)”이라 기록돼 있다. 따라서 이 기록대로라면 995~1012년 사이에 이미 ‘홍주(洪州)’라는 지명이 사용됐거나 불리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홍주(洪州)’라는 지명이 어느날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이름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 어느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용되어 온 대표적 지명인 ‘홍주(洪州)’를 지명으로 고쳐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에 설득력이 더하는 이유다.

<이 기사는 지역공동체캠페인사업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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