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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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기록하다
  • 김옥선 칼럼위원
  • 승인 2020.01.2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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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티시의 저서 ‘마을만들기를 위해 알아야 할 28가지’에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정의가 몇 가지 나온다.

‘마을공동체’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빈번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이 살면서 그들이 사는 장소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심리적 끈을 가진 사람들이다. ‘마을공동체’란 구성원들이 소속감과 이웃들 사이에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감정 그리고 서로의 헌신으로 부족한 부분을 태울 수 있다는 믿음을 나누어 갖는 것이다.

그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정의가 있었다. ‘마을공동체’란 지역의 일반 시민들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지역 공공재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의 마을공동체는 지리적으로 가까이 산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 노력한 결과다. 이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며, 경험의 결과나 의도하는 바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집단으로 노력한 결과로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모든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마을 일에 한마음 한 뜻으로 나섰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존재하지만 주민들은 한결같이 그 당시를 기억한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때는 누구나 없이 살았기에 서로가 도우며 사는 일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개인 소유의 땅이지만 마을을 위해 희사하고, 공동 퇴비장을 만들며, 마을 안길을 가꿨다. 그렇다면 지금은 누구나 모두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단지 살기가 조금 편해졌을 뿐이다. 적어도 전쟁이나 기아 등에 허덕이며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마을공동체를 강조하고 복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답은 단순하다. 외롭기 때문이다. 농촌사회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이 살기는 하지만 예전만큼의 심리적 끈으로 엮여 살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는 지난 2018년부터 홍성관내 마을만들기사업이 이뤄지지 않은 마을을 대상으로 마을의 신청을 받아 마을 조사를 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 마을지를 제작하고 마을주민들과 함께 책거리 잔치를 진행했다.

홍동면의 한 마을에 조사를 갔을 때의 일이다. 지리적으로 마을의 가장 끝에 위치한 집이지만 부부는 지금까지도 부침개 한 장 부치면 몇 장 더 부쳐서 이웃 주민을 부른다.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말이 오갔다.

“예전이 훨씬 살기가 좋았다. 이웃 간의 인심도 좋았고, 서로 어려울 때 도와줬다, 지금은 그런 거 하나도 없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여기 들어와 산다고 하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반대할 거다. 뭐 먹고 살 것이 있다고 여기 들어와 사나? 지금 농촌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 때가 좋았다.”

주민들이 말하는 그 때는 거의 대부분이 1960~70년대를 말한다. 한국전쟁 이후 마을주민들이 힘과 마음을 모아 마을 일을 하던 시기다. 마을공동체가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났던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기록하는 일, 그래서 이를 후세에 남기는 과정이 마을을 기록하는 일이다.

마을의 8~90대 어르신들이 생존해 있는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마을의 과거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어르신 한 명이 돌아가시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을 굳이 인용하고 싶지는 않다. 마을 조사는 마을의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그리고 마을을 기록하는 것은 마을의 과거를 바탕으로 마을의 현재와 미래를 꿈꿔 나가는 일이다. 마을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사람’이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김옥선<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팀장·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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