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의 생쥐처럼 포근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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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의 생쥐처럼 포근한 삶
  • 이철의 <홍성녹색당>
  • 승인 2025.07.24 07:23
  • 호수 901호 (2025년 07월 24일)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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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의 <홍성녹색당>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1817년생이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나 1862년에 눈을 감았다. 그는 에머슨과 깊이 교류했으며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의 사상은 초절주의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사상인가? 

문예대사전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신성(神性)이 있고, 우주의 영혼과 동일하며, 큰 영혼이 갖는 모든 것을 내재적(內在的)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잠재해 있는 여러 성질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 철저히 개인주의적(個人主義的) 낙천사상(樂天思想)으로, 1830년대로부터 1850년대에 걸쳐 미국 사상계를 휩쓸었다”고 한다. 

어이구 어려워라. 저런 알쏭달쏭한 사상은 그런가 보다 할 뿐 이해하고 싶지 않다. 어려운 철학보다는 소로우의 행동거지와 마음가짐,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돼 사는 생활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내가 귀촌해 농사를 짓는데 큰 영감을 준 책이다. 나의 시골살이에는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자급자족, 자연주의, 간소한 삶의 철학을 실천한 부부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과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 그리고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영향을 줬는데 그중 헨리 데이잇 소로우의 《월든》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작은 땅을 경작하며 거기서 나온 곡식과 채소로 살아가는 소로우의 소박한 삶은 내 일상에도 스며 있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은행나무/ 2011년 8월/ 13,000원

처음 《월든》을 만났을 때 나는 완전한 좌절과 소외, 자괴감과 울분에 쌓여 있었다. 인생을 걸고 추진한 일은 벽에 부딪혀 절망의 상태가 됐다. 그 무렵 나는 주위의 모든 이들과 단절한 채 고립돼 지냈다. 유일한 위안은 산에 오르는 것이었는데 홀로 배낭을 지고 경기도와 강원도의 높은 산들을 하염없이 걸어 다녔다. 그때 우연히 만난 《월든》의 구절들은 울적하던 저녁 시간에 나를 위로해 줬다.

“바람이 부는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그것뿐.” 선문답 같은 구절이 왜 내 마음을 흔들었을까? 책의 서문과 몇 개의 구절을 읽고 곧바로 책을 사가지고 왔다. 《월든》의 문장은 간결하고, 정돈돼 있으며, 선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소로우의 생활과 생각들은 나에게 위로를 주고 질문했으며 어떤 제안을 건네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풀밭의 생쥐처럼 포근히 살았다.” 나도 시골에 가서 풀밭의 생쥐처럼 살아야지. 아니지, 나는 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므로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편안해지고 싶었다. 

“그날 밤은 벽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잤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내 목이 굳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목이 굳어진 것은 꽤 오래된 얘기다.” 소로우는 왜 목이 굳어졌을까?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었거나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때 나도 책상에 지나치게 앉아 있어 목이 굳어진 지 오래였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은 극히 사소하다. 서민은 그것을 곧 잃어버리나 군자는 조심스럽게 간직한다.” 소로우는 논어와 맹자를 읽었다. 책 여러 곳에 그런 흔적들이 등장한다. 헤르만 헤세가 불교에 심취했듯이 소로우가 동양의 철학서들을 읽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당시 미국의 지성인들이 꽤 폭넓은 독서를 했다는 사실을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나는 군자는 아니지만 속된 욕망을 쫓다가 좌절한 것은 아니다. 나는 위로가 필요한 시기였으므로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했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그때 왜 내가 실패했는지 알고 있으며, 자빠진 자리에서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육식에 대한 거부감은 경험의 결과가 아니고 일종의 본능인 것이다.” 

“나 자신의 경험에 의하면 현재 이 나라에서 의식주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몇 가지 도구, 즉 칼, 도끼, 삽, 손수레 따위이며, 학구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램프, 문방구, 그리고 몇 권의 책인데, 이런 것들은 모두 사소한 비용으로 마련할 수 있다.”

“내가 월든 호숫가에 간 목적은 그곳에서 생활비를 덜 들여가며 살거나 혹은 호화롭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개인적인 용무를 보자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자기의 오두막을 마련하려면 생의 반 이상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허위의 인간 사회여, 세속적인 명성을 찾기에 바빠 천상의 뭇 즐거움은 공중에 흩어지는구나.”

“호화 유람열차를 타고 가는 내내 유독한 공기를 마시며 천국에 가느니, 차라리 소달구지에 앉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땅 위를 돌아다니고 싶다.”

만일 소로우가 옆에 있으면 친구로 삼고 싶다. 머리 나쁜 나하고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겠지만 내가 농사지은 옥수수나 참외, 오이나 가지 같은 것을 선물하면 방문을 거절하지는 않겠지. 지금은 나도 소로우처럼 농사를 짓고 산다. 평생 노동계급으로 살았으므로 최소한의 임금 노동을 하고, 작은 땅에서 지치지 않을 만큼 작물을 돌본다. 남는 시간에는 개들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빈둥거리며 논다. 소로우처럼 주로 혼자서 먹고 마시며 혼자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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