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의 친구들 대표
“막걸리? 옛날에는 집집마다 다 빚어 마셨어. 누룩도 다 디뎠지. 지금은 누가 하는지 모르겠네.”
“금평리 중일이 할머니가 술 참 잘 담갔는데… (“지금은요?”) 돌아가셨지.”
“지금이야 안 하지만, 나도 젊었을 때는 술 빚었어. 근데 이제 기억도 안 나.”
“돌아가신 친정엄마 술이 맛있었는데, 우리 형제 중에 배워놓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너무 아까워.”
“시집올 때 피로연을 하는데, 그때 시어머니가 빚어주신 술이 맛있어서 홀짝홀짝 마시다가… 기억이 안나. 호호호.”
“홍동에 직접 술 빚으시는 분 아세요?” 이 질문에 다양한 답이 쏟아져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전에는 술 빚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술 빚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도 술에 관한 추억은 있다’. 다행 중 불행 중 다행이랄까.
홍성으로 귀촌해 친구가 된 이들이, 농사지은 쌀로 막걸리를 빚어보자고 의기투합해 급기야 ‘막걸리의 친구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직접 빚어 먹는 술, 그래서 맛도 향도 제각각인 술의 매력을 알리고, 술이 농사·농촌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특히 지역과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술은, 지역생활사 한 부분을 차지하고 술의 의미와 가치를 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통주 붐이 일고 값비싼 수제프리미엄 막걸리의 인기가 한창이지만, 술의 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누가 어떻게 왜 만들게 됐는지, 이 술만이 가지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면, 아무리 맛있게 만들었다고 해도 조금 싱겁게 느껴진다.
‘막걸리의 친구들’은 ‘2025년도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홍주문화관광재단)’의 일환으로 <홍성지역 가양주문화 기록 사업>을 진행했다. 홍성에도 분명 오랫동안 술을 빚어온 고수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 지역만의 술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 빚는 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을 이장님, 부녀회장님,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혹시 술 빚는 분 아시는지 묻고 물어 세 분의 ‘명인’을 찾았다. 집집마다 술 빚어 먹던 풍습이 사라진 시대,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추천한다면 술맛과 경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나 마찬가지. 세 분께 가양주문화 기록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하고 술 빚는 과정을 기록하게 해주십사 부탁드렸다. 서로 가까운 마을에 살지만, 가양주 레시피는 모두 달랐다. 당연히 맛도 달랐다. 술에 얽힌 사연도 가지각색. 우리는 각 가양주의 고유성과 특별함, 그리고 지금껏 술을 빚어온 것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명인의 이름을 따 ‘화리주’, ‘경복주’, ‘영숙주’라는 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진짜’의 맛과 이야기를 ‘막걸리의 친구들’만 알기 아까워, 지난 10월 22일 가양주 명인 세 분을 모시고 주민들을 초대해 발표회를 열었다. 남녀노소 다양한 기대와 추억이 모여 발표회 자리는 잔칫날 같았다.
‘화리주’는 홍원리 김화리 님의 술이다. 시집와서 술을 빚기 시작해 40년쯤 됐고, 주로 제사 때, 명절 때 술을 빚으셨단다. 찹쌀과 누룩이 주재료이고 소주와 발효제(이스트)가 조금 들어간다. 상큼하고 화사한 백포도주 맛이다. 김화리 님의 조카는 “소곡주 같다”고 표현한다. 몇 년 전부터는 풀무신협 산악회 시산제에 올리는 술로도 쓴다.
‘경복주’는 술 빚기 경력 50년의 금평리 나경복 님의 술로 시어머니께 배워 술을 빚다가 농업기술센터에서 정식으로 술을 배웠고, 전통주대회에 나가 상도 탔다. 설기 밑술에, 찹쌀과 멥쌀을 섞어 고두밥을 해 넣는다. 부재료로 당귀를 넣어 깊고 진한 향이 난다. 술맛뿐 아니라, 이야기도 깊고 진하다. 큰아들 결혼할 때 쌀 한 가마 술을 해서 예식장까지 가져갔다니. 시부모님 환갑 등 집안 대소사 때마다 한 말씩 열 차례 넘게 술을 빚어 동네 사람들한테 “봇짱(배짱)도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7년 전까지는 누룩도 디뎌 썼고, 항아리는 시어머니 쓰시던 걸 쓴다.
‘영숙주’는 술 빚기 경력 60년 경력, 문당리 정영숙 님의 술이다. 스물셋에 시집와 술을 빚기 시작해 어느덧 여든을 넘기셨다. 힘들어서 술 안 빚은 지 몇 년 되셨다는데, 실력은 그대로다. 저울도, 온도계도 없이 ‘감’으로 빚는데, 지금껏 한 번도 술 망가진 적이 없다고 한다. 영숙주는 밑술에 엿질금을 넣는 게 특징이다. 구수하면서도 산뜻한 맛. 정영숙 님을 만나보라고 제보했던 마을 이장님은 발표회 때 참여해 술맛을 보시고는, 이내 정영숙 님께 마을행사 때 술을 한 말 빚어달라고 부탁해 마을분들께 대접하기도 했다.
누구네 집 술 이야기지만, 이야기는 어느덧 담장을 넘고 마을로 간다. 술 빚기가 금지됐던 시절, 술독을 땅속에 숨겨 놓았더니 (온도가 맞아서인지) 더 맛있어졌다는 이야기, 맛있다고 소문난 술에 사람들이 하도 찾아와 남은 술을 몰래 버렸다는 이야기, 누룩 디딜 때 쓰는 ‘메꾸리’도 직접 만들던 이야기, 제사 지낼 술이 필요한데 쌀이 없어 보리로 술을 빚은 이야기… 그 시절의 술은 단지 흥청망청 마셔버리는 기호식품이나 품평의 대상이 아니라, 마을의 역사와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소재였다. 귀한 쌀로 정성껏 빚어 기쁜 자리에서 나눠 마시던 가양주. 그렇다, 술은 그런 것이었다.
직접 술을 빚어보니, 쌀 한 말로 술을 빚어 아들 장가보내는 결혼식장에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그 많은 쌀을 백세해 고두밥을 찌고 치대서 항아리에 넣고 맑은 술만을 조심히 떠냈을 수고로움이라니… 집안 대소사와 명절에 숱하게 술을 빚었을 여성들의 노동에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담긴 사랑과 정성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술을 빚어온 수십 년의 세월,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흉내낼 수 없는 술맛, 각자의 노하우와 탁월한 감각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박수를 보냈지만, 정작 우리의 명인들은 “술 빚는 거 아무것도 아니다. 명인이라고 부르지 마라”며 손사래를 치시고, “별 것도 아닌데 부끄럽다”, “그냥 술이 필요해서 계속 빚었을 뿐이다”라고 자세를 낮추신다. 우리가 명인들에게 배우고 계승해야할 것은 막걸리 레시피만이 아니라, 술 그리고 삶에 대한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인지도 모른다.
막걸리의 친구들은 우리 지역의 가양주, 그리고 가양주와 연결된 우리 지역의 이야기가 사라지기 전에 부지런히 술 빚는 분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막걸리 한 잔에서 지역을 배우고 사람을 배우고 삶을 배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