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 많았던 인생, 봉사하는 인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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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 많았던 인생, 봉사하는 인생으로”
  • 장윤수·김경미 기자
  • 승인 2015.11.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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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이야기]최종수 무공수훈자회 사무국장

▲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홍성군지회 사무국장 최종수 씨.

“7살 때 아버님을 여의고, 14살에는 어머님을 여읜 뒤 형님 슬하에서 자랐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니 한스러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홍성군지회 사무국장 최종수(70) 씨의 말이다. 최 씨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아버지 같은 큰 형 아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큰형과 나이차이가 많다보니, 최 씨와 조카의 나이는 두 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큰형은 자식들을 챙기느라 최 씨에겐 소홀할 때도 가끔 있었다.
“형님 둘과 누님 둘을 둔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나다보니, 버릇이 없어 고생도 많이 했죠. 또 옛날엔 다들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간신히 다닐 정도로 힘들었잖아요. 저도 어릴 때부터 신문을 돌리는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최 씨는 이발소에서 기술을 배우게 됐다.
“옛날에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질구레한 일부터 시작해 얻어맞으며 배우는 것이 기본이었죠. 날씨가 추운 겨울에 아침 일찍 혼자 나와 연탄으로 난로를 피워놓으면 기술자들이 나와 일을 시작하고, 저는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이발소에서 기술을 배운 최 씨는 군에 입대하고 월남전에 참전하게 됐다.
“스물 셋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은 뒤에 군대에 갔죠. 국가의 부름을 받아 월남전에 지원해 참전하게 됐습니다.”
최 씨는 월남으로 파병될 때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고 떠나 뒤늦게 편지를 보냈는데, 아내는 ‘죽을 수도 있는데 위험하게 왜 월남에 갔느냐’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다. 최 씨는 월남전 당시 7사단 맹호부대에서 공로를 세워 인헌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간부가 아닌 일반 사병이 훈장을 타는 경우는 드물었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12년째 참전유공자회에서 사무국장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최 씨는 지난 2003년 처음 보훈회관을 찾았고, 지휘장의 임명을 받는 사무국장직에 추천을 받아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때부터 회원들의 신임을 얻어 12년간 사무국장 직을 이어오고 있고, 최 씨의 재임기간동안 거쳐 간 회장만 해도 7명에 이른다.

“회원들이 다 고령이셔서 활동을 잘 못하시는데, 바람을 쐬는 전적지 탐방 등을 진행하면 ‘사무장이 잘 해줘서 이렇게 잘 다닌다’며 즐거워하십니다. 그 모습을 보면 제일 크게 보람을 느끼죠.”
최 씨는 젊은 시절, 이발 기술로 조양문 근처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폴리텍대학에서 경비로 일하고 있는데, 매 주 수요일마다 보훈회관 무료급식 시간에 이발 봉사를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제가 가진 기술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보람을 참 많이 느낍니다.”
70년 동안 홍성읍 오관리에서 살아온 진짜배기 홍성 토박이인 최 씨는 “아직도 고향이 좋아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제가 살아왔던 곳이고, 지금도 살고 있는 곳이 홍성이니까요. 남들은 잠시 다른 지역에 나갔다 돌아오기도 하던데, 저는 평생을 이곳에서 살다보니 고향이 제일 좋습니다. 앞으로도 무공수훈자회 회원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즐겁게 살아가려 합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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