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여학생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친한 친구가 자취방에서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철이 삼촌이 좀 도와달라는 문자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문자를 받고 확인 차 이 여학생 담임선생님을 만나 뵙고 이런 사실을 말씀드리고는 오늘도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 여학생의 자취방으로 가 보았습니다. 이 아이의 어머님이 어릴 때 가출하신 관계로 아버님과 단둘이 지금껏 생활을 해온 아이였는데 부여에서 홍성으로 이사 온지 얼마 안 된 학생의 자취방은 정말 말 그대로 무질서 그대로였습니다. 제가 자취방 방문을 열고 확인할 때에는 여중생과 남중생 2명이 잠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남학생들을 야단친 후 부모님께 인도하고는 여중생은 쉼터로 데려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여학생의 아버지께서는 생활비를 보내주기로 하고는 행방불명이 돼 연락이 안 되는 상태였습니다.
쉼터 생활 시작부터 이 여학생과는 말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갑의 담배를 피우며 처음 한 약속은 한 달 안에 담배를 끊겠다는 약속이었는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이 아이…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큰 그릇에 얼음을 담아 자기 방에 가는 것을 봤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무슨 얼음을 갖고 가니 하고 물어보니 이 아이는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 얼음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간 저는 매일같이 3kg의 얼음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고는 일과를 시작한 후 1개월 만에 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 담배를 끊게 한 후부터는 또 가출을 자주하는 아이로 변해가는 이 아이, 쉼터 생활 중 자기가 잘못을 하는 날은 이유 없이 가출하는 이 아이, 정말 답답하고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고1 여름방학 때 또 남학생과 가출을 해 버렸습니다. 쉼터 생활 2년 동안 여섯 번 째 가출을 한 날이었습니다. 이날따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쉼터라는 공간에서 이런 작은 문제로 아이들을 포기해버리면 우리 아이들을 누가 지도하고 돌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이럴 때마다 나 자신을 꾸짖고 다시 용기를 내 지금까지 이 아이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이 아이가 저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조용히 눈물을 글썽이며서 부모님과 가족들이 자기를 버렸는데 내가 지금껏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정확하게 쉼터생활 24개월 만에 처음으로 듣는 한 여학생의 가슴에 묻어두었던 아픈 가족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삼촌 돌봐 드릴게요”라는 말에 2년이란 긴 시간의 힘들고 마음 아팠던 생활들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너무도 뿌듯하고 보람있었습니다.
달라진 이 아이의 생활에서 쉼터 가족들은 요즘 행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하고픈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많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어른들의 참 사랑과 기다림 앞에 청소년들이 제자리를 찾나 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너무나 긴 기다림 후에 맞는 아주 소중한 기쁨을 말입니다.
<2002년 11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