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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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9>
  • 한지윤
  • 승인 2016.10.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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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어머니는 중년 특유의 다소 비대한 몸이었으므로 땀을 많이 흘려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샤워를 했으며 여관에서 주는 욕의는 싸이즈가 맞지 않았으므로 집에서 가져 온 욕의를 입고 느릿한 몸짓으로 창가의 등의자에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바둑을 두고 동생 규형이는 소설을 읽거나 한다. 규형이는 가족 휴가에서 간혹 빠져 버리는 때가 있기도 했다. 흥정을 해서 얼마만큼의 용돈을 타 내게 되면, 식구가 모두 떠나 버린 텅 빈 집안으로 친구들을 떼거지로 불러 모아 더 신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휴가 온 다음날 점심 무렵, 소영이는 흘러내리는 땀만큼 따분해서 산책길에 나섰다.
내리 쬐는 직사광선은 살을 뚫을 듯이  따갑지만 나무 그늘에는 시원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날이었다.
소영이는 이따금씩 길가의 풀을 부러뜨리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얼마 후 길 저 쪽으로부터 그녀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두 젊은 사나이에게 시선이 쏠렸다. 테니스 코트를 다녀오는지 둘 다 하얀 셔츠에 하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긴 바지를 입은 쪽은 키가 컸으며 반바지를 입은 청년은 키가 작았다. 키가 작은 남자는 얼굴에 온통 여드름 투성이어서 거무틱틱하고 커다란 귤껍질 같은데 비해 키가 큰 사내는 미남 축에 속하는 청년이었다.
두 남자는 사나이로서의 체면을 차리는지 소영이 곁을 그대로 지나쳤다. 소영이는 솔직히 그들에게 마음이 쏠렸다. 그녀는 지금 굉장히 따분한 것이다. 소영이는 그들과 지나치면서 그들이 머저리가 아니라면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소영이가 산들바람처럼 생긋 미소라도 보내주기만 한다면 그들은 당장 그녀에게 돌진해 와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러면 산책도 더욱 즐겁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소영이는 지금 마음속으로 ‘기다려 줘요’ 하고 외치고 있었다. 이 길을 얼마만큼 간 뒤에는 다시 돌아와야만 한다. 그러나 같은 길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피서지에서 결코 재치 있고 멋진 산책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길로 돌아서 원래의 제자리로 되돌아 올 수 있는 길이 또 있을 것이다.
그 두 젊은 사내도 조금 전에 지나쳐 버린 여자가 마음에 당겨 오고 그래서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 길로 돌아올 것이 분명한 일이다. 그러면 어딘가의 지점에서 세 사람은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다시 맞부딪치게 될 것이다.
소영이는 맞부딪치게 되는 쪽으로 기대를 걸어 놓고 길을 돌았다. 소영이는 새 소리와 주위 풍경을 감상하며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숲 저편에서 두 사람의 흰 옷이 어릿어릿 나타났을 때, 일이 너무 예상대로 들어맞아 떨어졌으므로 소영이는 도리어 가슴이 두근거려 왔다.
세 사람의 거리 간격이 10미터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소영이는 비로소 관심이 있다는 듯한 태도로 얼굴을 쳐들었다.
“안녕 하십니까?”
하고 귤껍질 같은 얼굴이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소영이는 무심결인 듯한 태도로 발걸음을 멈췄다.
“산책 중이신가요?”
미남 청년이 끈덕진 듯한 눈매로 소영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는 그러한 투의 눈매가 주는 효과를 마음속으로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에……”
“함께 산책해도 괜찮겠습니까?”
“좋아요.”
귤껍질의 제의에 소영이는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을 해 버렸다.
귤껍질의 남자라면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귀공자타입의 남자가 있다는 것으로 승낙해 버린 것이다.
“산책도 좋지만 실은 아직 우리들은 점심도 먹지 못했고…… 가능하다면 우리들 숙소로 가서 함께 거들어 주지 않으시겠소?”
귀공자 녀석의 말투는 제법 정중했다.
“숙소가 어느 쪽 이예요?”
“바로 저깁니다. 할멈이 있으니까……”
소영이는 정중한 말투로 허풍을 떠는 녀석에게 걸려들었구나 싶은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까, 그 귀공자는 귤껍질 쪽을 향해 달라진 말투로
“어이, 넌 먼저 가서 방 좀 치워 두지!”
하고 명령조로 말했다. 소영이에게 대하는 태도와 귤껍질에게 대하는 말 태도는 극단적이다.
“무슨 일을 하세요?”
소영이와 귀공자 둘만이 남게 되자 햇빛에 야성적으로 그을린 사내의 팔뚝을 바라보면서 소영이가 물었다.
“고시원에 다닙니다.”
“그럼 고관이나 정부관리의 친구분 이시군요.”
소영이는 그저 단순히 말했는데, 상대는 진지하게 그 말을 받아 대답했다.
“그렇죠. 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현 정당의 의원께서도 이 근처에 머무르셨더랬습니다. 그 때 이따금 전화를 드렸었죠.”
“네……그래요? 그분의 테니스 솜씨가 훌륭하다면서요? 모두들 칭찬하던데요.”
소영이는 불현 듯 하품이 나오는 것을 꾹 참아 삼켰다.
곧 그들은 할멈이 있다는 숙소에 도착했다. 문패에는 최고인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할멈 계신가?”
“있기 싫은 모양이지, 할망구 어디론가 도망쳤는데……”
먼저 와 있는 귤껍질과 귀공자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더니 소영이에게,
“어서 들어오십시오. 잔뜩 잡동사니로 어지럽습니다마는……”
하고 정중하게 안으로 안내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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