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군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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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군가가
  • 변승기 칼럼위원
  • 승인 2017.03.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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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서 등산을 가기로 약속했다. 회원이 많지는 않지만 각자 하는 일이 달라서 어렵게 날짜를 잡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가기 전날 갑자기 개인적인 일이 3건이 겹쳐 발생했고 부득이 등산을 못 가게 되어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약속한 사람들에게 굉장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갑자기 발생한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선순위를 나름대로 만들다보니 등산도 중요한 약속이었지만 뒤로 밀리게 되어 연기했다.

삶에는 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 당황스럽고 신념처럼 여기는 삶의 기준이 흔들린다.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은 단계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한꺼번에 몰려온다. 천천히 단계적으로 발생하면 사람은 대처할 시간과 기술을 만들어내지만, 반대인 경우는 심하면 병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린 아동들에게 너무 잔인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동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소화할 인지적 능력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아동을 보호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고, 더 멀리 본다면 아동의 보호는 건강한 사회인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포함된다. 만약 개인이 그동안의 삶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정신적인 부분, 즉 인지적 측면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왜 그런 변화가 생길까? 그 이유 중 하나가 항상성이다. 사람은 불편한 것이 생기면 바로 그 부분을 해결하여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바로 항상성이다. 사람은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기 어렵다. 그런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 항상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면 사람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하면 그 사람만이 적응할 수 있는 고유한 것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일반사람들의 상식에 맞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독특하다면 병리를 일으켰다고 말할 수 있다. 상식에 맞지 않는 또는 문화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병리를 일으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더 깊이 살펴본다면, 어려움을 혼자 극복하느라고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심리치료가 필요하거나 정신과 치료와 약물처방을 병행해야할 때가 있다. 병원에서 약물처방을 받을 정도면 그 사람의 괴로움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거리를 둔다.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는다면 마치 큰 문제라고 있는 사람처럼 취급하고,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잠시 뒤를 돌아보자. 삶을 살면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예상 못한 일들이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지.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려움을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면 힘이 생긴다. 게다가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말로 표현하고, 들어줄 사람이 있으면 통찰과 더불어 항상성을 만들어낸다. 그 항상성은 혼자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면 더 잘 만들어지고 오래 유지된다. 그 누군가가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가 될 수도 있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생각해보자. 전문적인 지식이나 훈련, 임상적 경험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냥 상대방의 말을 지긋이 들어주는 것도 큰 효과를 나타낸다. 들어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함께 걷는 기분으로 박자 맞추어 걸어가는 것과 같다. 말을 들어줄 때, 내 말은 중요하지 않다. 정답, 해결, 판단, 평가, 설명을 배제하고 그냥 들어주면 된다. 말만 잘 들어줘도 항상성은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갑자기 떠오른다.

변승기<광천고 교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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