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차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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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차이에 대해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17.04.1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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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홍주중 교사·칼럼위원>

오랜만에 큰아들이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그는 곱창구이를 희망했다. 우리 가족은 별다른 의견 충돌 없이 그의 의사를 따르기로 했다. 실은 자식이 셋이나 되다보니, 외식거리를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오라지 쇠고기를 찾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돼지갈비 먹자고 대느는 녀석이 있고, 뜬금없이 오리고기나 닭고기를 찾는 녀석이 있어서 어디로 갈까 의견 조율하다가 외식 자체가 파토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곱창 집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곱창구이를 맛있게 먹으려면 참 부지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곱창구이를 한 판 시키면, 끊임없이 국자를 들고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젓고 또 저어야 한다. 오늘은 잘게 썰은 마늘까지 한 접시 추가해 뒤섞어서 익히다보니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옆에서 아내는 너무 자주 뒤집는 것이 아니냐며 나의 분주한 손길을 염려하기도 했다.

곱창보다 먼저 노릇노릇해진 마늘을 골라내고 나니, 곱창 또한 제 빛깔로 맛나게 구워졌다. 큰아들 녀석도 정말 맛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술잔이 서너 잔씩 기울어지자 자연스럽게 사람 사는 이야기가 곱창 안주에 곁들여졌다. 오늘은 만족할만한 식당에 왔지만 정말 아니다싶은 식당을 갔을 때, 엄마나 아빠는 끝까지 먹고 나가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나간다는 말부터 시작됐다. 우리들은 일단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한 후에는 맛이 있건 없건 먹고 본다. 마음에 안 들면, 그 다음에 다시 찾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맛이 없다 싶으면 금세 자리에서 일어선다고 한다. 식당 주인이 주문한 량에 대하여 청구를 하면, 입맛을 본 만큼에 대하여 일만 원 선에서 지불하고 가차 없이 일어선다고 한다. “내 돈 내고, 왜 맛없는 것을 억지로 먹어야 합니까?”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는 한 번 들어간 직장에서 뼈를 묻는 자세로 일하셨지만, 요즘은 대기업 취직자 중 40%가 3년 안에 회사를 그만 둡니다. 아빠 세대는 자신의 행복보다 가족과 사회라는 조직에 충실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보다 더 충실하죠.” 나는 우선 그의 말에 수긍을 하였다. 그렇지만 인간 사회라는 것이 단칼에 무 토막 내듯이 단순하게 결론을 낼 일은 아니었다. 나의 헌신으로 가족과 사회가 행복한 분위기가 조성되면 결국 나의 행복으로 귀결됨이 아닌가.

그는 일반대학을 1학기 마치고, 지원 신청으로 군대에 갔다. 제대 후에는 복교를 하지 않고, 학비 등을 전액 지원하는 전문대로 바꿨다.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서 알선한 중소기업에 취직을 하여 3년 째 접어들었다. 그런데 아마 그 회사에서 한 직원으로 생각하기보다 산업연수생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중간에 그만 두면 수 천 만원의 대학 지원비를 물어내야 한다는 부담을 껴안고 버티는 중이었다.

나도 큰아들의 현재 상황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부담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권유하였다. “네 나이 30 전에는 돈 벌라고 하지 않겠다. 남은 네 인생을 위해 무엇을 하던지 충분히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아라.” 이제 그의 나이 24이니, 내년부터 새 길을 걸어도 5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는 자기의 입장을 이해하여 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대화는 잘 끝났다. 그런데 뭔가 좀 서운하고 아쉬운 감정이 남았다. 아비는 자식의 안위까지 행복의 범주로 삼고 있는데, 그는 철저히 자기만의 범주에 갇혀 있었다. “그래, 아들아! 지금은 네가 책임질 일이 없으니 그러겠지. 너도 네가 원해서 가정을 갖게 되고, 어떤 사회의 일원이 된다면 아빠 마음도 분명하게 알겠지.”

집에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아들과 어깨동무를 했다. 15㎝는 더 큰 아들 녀석에게 매달려 가는 처지였지만, 서로 느끼는 미묘한 차이가 서로에게 미묘한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발견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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