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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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 박승규 전문기자
  • 승인 2017.12.1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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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박사 박승규의 곤충 이야기<12>
굼벵이의 배부분 주름과 둥부분 주름의 모습.

며칠 전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에 곤충과 관련해 유쾌한 속담이 실린 것을 읽어 본 적이 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 “메뚜기도 한철이다.” 이런 속담 속에 숨겨진 곤충의 생리적 특성을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의 곤충을 대하는 혜안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굼벵이라는 흰점박이꽃무지는 부엽토 속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햇빛에 노출되면 재빨리 햇빛을 피하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몸을 굴린다. 몸을 등으로 이동하기 쉬운 위치를 만든 후 햇빛이 없는 곳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나방의 애벌레는 솔잎을 먹는 나방의 애벌레가 먹이 먹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이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는 말은 누에 번데기와 굼벵이가 번데기 된 후 몸에 난 10여 개의 주름을 관찰한 결과이기도 하며, 메뚜기는 가을에 땅 속 깊이 산란한 알이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늦봄에 알에서 깨어나 뜨거운 여름을 살다가 가을에 다시 산란을 하고 죽으니 한여름에서 가을까지 볼 수 있는 곤충이 메뚜기이기에 붙어진 속담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굼벵이는 옆으로 구를까?
필자가 실제 굼벵이에게 구르는 재주가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관찰한 결과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굼벵이는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말은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를 굼벵이라고 불렀던 조상들의 관찰력에서 나온 말로 판단된다.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는 항상 흙(톱밥 또는 부엽토) 속에서 생활을 한다. 그래서 한 번도 햇빛을 볼 수 없으니 애벌레인 굼벵이는 햇빛에 노출되면 죽을힘을 다 해서 흙 속으로 들어가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한다.

굼벵이를 많이 모아 놓고 자세히 관찰해 보면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실 활동성이 강한 것이 아니다. 눈이 퇴화돼 햇빛을 피하기 위해 굼벵이 무리 속으로 서로 먼저 들어가려는 몸부림이자 치열한 전투과정이다. 이렇게 치열한 전투과정 속에서 굼벵이들은 몸에 상처를 입게 되고 상처가 난 굼벵이의 몸으로 병균이 침투하면 녹강병, 백강병, 패혈증 등 무서운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따라서 굼벵이를 판매하는 생산농가들은 생산된 굼벵이를 한 곳에 수북이 쌓아 놓고 판매할 것이 아니라 항상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빛 관리를 잘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굼벵이의 몸에 난 주름은 배 쪽에 10개, 등 쪽에 크고 작은 26개의 주름이 나 있다. 굼벵이의 주름이 등 쪽에 26개나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몇 차례의 실험을 했는데 바로 눈과 발에서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굼벵이의 눈은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퇴화돼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햇빛에 노출되면 눈에 상처를 입기 때문에 눈을 보호해야 한다. 햇빛을 가능하면 눈에 덜 받는 위치로 몸의 방향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 옆으로 구르는 것인데 이 모습을 보고 조상들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한 것으로 판단된다.

굼벵이의 가슴부분에 모두 모여 있고 다리 길이는 현미경 자를 이용해 측정한 결과 짧은 것은 1.4mm에서 길어야  4mm에 지나지 않아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하며 이동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구조가 아니다. 게다가 발은 모두 머리 부분에서 불과 7mm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발가락을 이용한 이동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왜 몸을 굴려 등으로 기어갈까? 굼벵이가 등으로 뒤집어져 이동하면 눈에 빛을 받는 정도가 바르게 기어가는 것보다 적다는 사실이다. 필자의 측정결과, 굼벵이가 등으로 기어가면 약 60°각도로 햇빛을 받지만 배로 기어가면 120°의 각도로 햇빛에 노출되게 되므로 상대적으로 햇빛을 적게 받을 수 있는 각도인 약 60°의 각도로 빛을 받는 등 쪽으로 몸을 재빨리 굴리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햇빛에 노출된 굼벵이가 재빨리 몸을 움직여 이동하기 위해서는 눈에 받는 햇빛의 양을 줄이고 몸의 주름이 상대적으로 많은 등 쪽으로 몸을 뒤집어 배를 하늘로 하고 등 부분의 26개나 되는 많은 주름을 이용해 기어가는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굼벵이의 다리가 배 전체에 발달해 있다거나 발가락이 길어서 이동을 손쉽게 할 수 있다면 굳이 몸을 뒤집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굼벵이를 과학적으로 관찰해서 이런 속담을 만들어 냈는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박승규 전문기자<내포곤충학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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