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공장 기계노동자 아버지의 삶을 치열하게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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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공장 기계노동자 아버지의 삶을 치열하게 담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1.19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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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 시대 대학운동권 오철수 시인의 〈아버지의 손〉

시집 <아버지의 손>은 오철수 시인이 1989년 다수의 집단창작집에 참여한 이후 1990년 5월에 펴낸 시집이다. 

군부독재 시대 대학가 노동 민중 인권운동 활동가 출신인 시인은 대학 재학시절 ‘할미꽃 밑에 잠자는 민족’이란 장시를 써서 배포하다가 필화 사건으로 검거돼 지하 감옥에서 20여 일간 구타 협박 회유 등 고초를 당하다 석방됐다. 대학 졸업 후에는 개봉역 인근에 안경점을 개업, 운동권 활동가 등에게 활동 자금 등 경제적 도움을 줬다. 필자도 그 혜택을 받았다. 안경을 맞추러 가면 매번 여타의 안경점보다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해줘 적자가 날 것 같아 걱정했더니, “그래도 손해는 안 본다”며 안심시켰다.

시인의 아버지는 일제 해방 후 1세대 기계 노동자다. 작업장에서 해당 분야 최고 기술을 보유했지만 대학 기계공학과 출신 공장장이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는 것에 마음이 상해 시인을 기계공학과에서 수학하도록 했다. 향후 자식이 참된 공장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시집에는 시 ‘아버지의 손’ 연작시를 비롯해 ‘다시 부르는 노래’, ‘일어서는 새벽’, ‘최후의 동지’ 등 아들이 공장장 되는 아버지의 꿈을 뿌리친 시인의 이십 대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1세대 기계노동자의 삶과 노동이 감동적이고 치열하게 담겼다.

이규배 시인은 ‘죽음 앞에서도 우리를 지키는 것’이란 제목의 시집 해설문에서 “연작시 ‘아버지의 손’은 ‘이야기성’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라며 “이 시들은 모두 자기 체험의 이야기를 구체적인 언어로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있다. 그러니까 이 시들은 오철수의 민중과 혁명에 대한 신념체계가 형성되어온 과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셈이 된다”고 평했다.

연작시 ‘아버지의 손 3’을 함께 음미해 보자. “이 세상 알몸뚱이로/믿을 거라곤 오직 손에 붙은 기술뿐이 없이/살아온 아버지/공장이 싫어도/공장뿐이 없다고/목숨 달고 그래도 유일하게 당당할 수 있는/기계 앞의 기술자/아버지는 늙으실수록/식구들에게 미안해했다/아버지는 연세가 드실수록/힘이 없으셨다/우리들이 더 배울수록/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손처럼 사셨다/자식놈이 장성하면서부터 그렇게 좋아하시던/술도 끊으셨다/아들딸 시집 장가들여야 하는데 라며/아버지 공장 생활 삼십 년/켜로 앉은 시멘트 가루보다 깊은/줄담배도 딱 끊으셨다/나이 오십에 정년을 하시고/이제 자신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해 먹을 것도 없다고/갑자기 십년은 더 늙어버린 아버지/퇴직금 받아 어떻게라도 될까 봐 조심조심/구멍가게 하나를 내시곤/새벽같이 문 열고 늦게 닫으시며/석사가 뭔지도 모르시면서/그저/서울대 다니는 딸이 자랑스러워/꼬깃꼬깃 학비를 챙기시던 아버지/장남이 데모하다 제적당하자 길길이 뛰시던 그 양반/장남만 보면 배고프시다던/아버지를 묻는다/분노만 지고 사신 자연적 노동자의 일생을/이제 묻는다/우리의 한걸음에/자신할 것이라곤 기계뿐이 없던/시대를 묻는다/혁명의 땅에”

1958년 인천 출생인 시인은 국민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으며, 1986년 무크지 <민의>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아버지의 손>, <먼길 가는 그대 꽃신은 신었는가>, <아주 오래된 사랑>, <아름다운 변명>, <조치원역> 등과 기타 <우리가 써야 할 시>, <현실주의 시 창작의 길잡이>, <시가 사는 마을>, <시 쓰는 엄마>, <시 쓰기 워크숍1·2·3> 등 30여 종의 저서가 있다.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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