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사진예술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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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사진예술은 어디로 가는가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11.06 07:18
  • 호수 915호 (2025년 11월 06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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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김상구<br></strong>전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br>칼럼·독자위원 
김상구
전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
칼럼·독자위원 

산업혁명 초기, 영국에서는 기차나 자동차 같은 새로운 ‘자동운송수단’이 등장하면서 안전 문제와 사회적 반발이 일어났다. 그래서 속도를 제한하는 법이 생겨났는데, 그 법의 이름이 속칭 ‘붉은 깃발 법(Red Flag Act, 1865)’이다. 기계의 진동, 소음, 매연이 말과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이유로 자동차 앞에 반드시 보행자 한 명이 붉은 깃발을 흔들며 앞서 걸어가야 한다는 법이다. 지금 보면 우스꽝스럽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당시, 노동자들은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해 공장의 ‘기계를 부수는 운동(Luddite Movement)’도 일어났다. 방직 공장에 기계식 방직기나 직조기가 도입되면서 수공업자들의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임금이 떨어졌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기계가 인간을 대체했다고 믿고 공장 기계를 부수며 저항한 것이다. 기술진보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산업혁명 당시의 상황보다 다방면에서 더 빠르고, 폭 넓게 AI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AI 퇴출 운동이 일어나기보다는 AI를 이용해 내 삶을 편리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근육의 시대를 기계로 바꾼 혁명이었다면, AI 혁명은 두뇌의 시대를 알고리즘으로 확장하는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AI는 인간의 ‘생각하는 힘’을 약화시키기 보다는 새로운 사고의 프레임을 제공하는 거울이 될 수 있다. 예술가가 AI를 조수로 활용하고, 의사가 진단 보조로 AI를 이용하며, 작가가 AI를 편집 파트너로 사용하는 식이다. AI는 인간의 대체자라기 보다는 내면의 확장된 기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인간의 ‘감정과 직관’, AI의 ‘계산과 분석’이 보완하는 구조가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AI와 인간의 관계를 사진으로 제한해 볼 때, 사진의 제작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카메라를 들지 않아도, 몇 줄의 프롬프트(지시 명령어)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화소는 사라지고, 어플리케이션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기술적 완성도만 놓고 보면, AI는 이미 인간 사진가를 능가했다. 합성, 보정, 색상 조절, 심지어 몽타주까지 몇 초 만에 완성된다. 요즘 핫하게 사용되는 구글의 ‘나노 바나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러나 예쁘고, 아름답고, 멋지게 합성했다고 해서 예술이 될 수는 없다. 완벽한 이미지가 곧 예술은 아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그 안에는 ‘살아 있는 눈의 흔적’이 없다. 인간이 찍은 사진에는 흔들림이 있고, 예기치 못한 빛의 왜곡이 있으며, 순간의 감정이 담긴다. 기술은 오류를 없애지만, 예술은 때로 그 오류 속에서 태어난다. 오히려 AI가 만든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직접 찍은 사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빛이 필름이나 센서에 직접 닿아 그 흔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면 사진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전적 의미로 사진은 렌즈, 노출, 감광재라는 광학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생성된 이미지를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앞으로 사진예술은 두 갈래의 길을 걸을 것이다. 첫째는 AI와의 협업이다. 즉 인간과 알고리즘이 함께 만들어내는 하이브리드 예술이다. 사진가는 단순히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AI의 시각을 설계하고,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창조하는 이미지 디렉터로 진화할 것이다. 미래의 이미지 디렉터는 기술적 역량뿐만 아니라 예술적 안목과 인문학적 통찰을 모두 갖춘 하이브리드형 인재가 될 것이다. 둘째는 아날로그 리얼리티의 귀환이다. 필름, 즉석 사진, 직접 인화 등 ‘진짜 존재했던 순간’을 남기는 방식이 다시 주목받을 것이다. 넘쳐나는 가상 이미지 속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세계의 증거는 하나의 예술적 진실로 남는다. ‘왜 이 사람이 이 순간, 이 각도에서 셔터를 눌렀는가?’라는 질문으로 회귀할 것이다.

AI는 예술가의 적이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도구이며,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창이다. 문제는 누가 그 도구를 더 인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기계가 이미지를 만들 수는 있어도, 세상을 느끼는 마음은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이다. AI시대의 사진예술은 기술이 아닌 감정의 예술, 기계가 아닌 사람의 시선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묻게 될 것이다. “AI가 이미지를 만든다면, 인간은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 

철학자 하이데거가 《예술작품의 근원에 대하여》에서 언급했듯이 예술이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진리(Sein의 Wahrheit)의 드러남”이다. AI 시대, 사진예술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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