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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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 이예이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6.01.22 07:13
  • 호수 926호 (2026년 01월 22일)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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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이예이</strong><br>홍성녹색당<br>칼럼·독자위원
이예이
홍성녹색당
칼럼·독자위원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노트 맨 앞장에 신년 목표나 다짐 같은 것을 적어 둔다. 조금씩 달라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매년 비슷하다. 꾸준했다 볼 수도 있지만, 실은 깊은 잠에 빠져있던 게 아닐까. ‘편안한 일상’이라 포장하고, 지루하게 자기 반복을 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의 글을 읽으며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었다. 자기 쇄신. 그는 ‘쇄신’이 유교 문화권의 독특한 자아관이라 설명했다. ‘진정한 나’라거나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서구의 고정된 자아상과 달리, 쇄신은 자아란 변화한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그 변화는 ‘나’에서 ‘다른 나’로의 이동이라고. 

그런데 ‘다른 나’라니, 그것도 결국은 ‘나’라는 한계 속 상상의 산물 같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책의 제목처럼 ‘산처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자아를 확장해 이동할 수 있다면 그걸 ‘쇄신’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쇄신’을 자아의 확장이라고 읽는 데 무리가 없다면, 공자가 살던 때보다 더 희박한 사건이 된 게 아닐까. 현대의 우리는 ‘소비자’라는 좁은 정체성에 강하게 붙들려 있으니까. 이건 끝없는 되먹임이라 의지만으로 쉽게 어찌할 수가 없다. 공동체가 파괴되면 ‘나’는 작아지고, 또 작아져 ‘소비자’로 위축되고, 소비자들만 있는 세상은 파괴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그런 세계는 다시 개인을….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우치다 타츠루/ 유유/ 2024년 4월/ 16,000원

우치다의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에 이 되먹임에 관한 예시가 나온다. 출판 시장의 위기를 두고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거나 ‘요즘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는 등 독자 탓을 하는 게 보통이지만, 저자는 시각을 뒤집어 본다. ‘안 팔리는 책은 바로 절판시킨다’는 식의 자본 논리가 결국 척박한 출판 환경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하는. ‘책’은 돈벌이 수단, 독자는 ‘소비자’로 한정한 것, ‘잘 팔리는 책만 낸다’는 업계의 풍토에 위기의 원인이 있지 않냐는 지적이다. 이런 주장의 바탕엔 책은 소비재가 아닌 공유재라는 저자의 믿음이 있다.

좀 황당한 소리로 들리지만, 이런 설명이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골격은 ‘죽은 자와의 연결’이고, 책은 그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고로 책은 일종의 공유재다. 여기서 ‘죽은 자’란 말 그대로 이전 세대를 뜻할 수도, 그들이 남긴 무형의 것들, 지혜나 지식일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비물질적인 가치 전반을 포괄한 초월적인 무엇이기도 하다.

군의 새해 다짐 격인 ‘2026 군정 구상 공개’를 보며, 나의 신년 계획들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해 군정 성과에서 최고 평가를 받았다는 ‘홍성글로벌바비큐페스티벌’을 올해 그대로 이어간다. 올해는 세계화로의 도약이 목표다. ‘남당항 복합문화 관광 명소화’도 여전히 목표로 삼았다.

지난해 <홍주신문>에서는 기획특집으로 국내외 지역축제를 돌며 연속 기사를 실었다. 그 중 ‘지역축제 포화시대, 가장 큰 숙제는 지역 정체성 담기’라는 내용에 공감이 갔다. 공동체는 공유지와 분리할 수 없다. 지역도 하나의 공동체라면 해당 지역 공유지의 특징이야말로 독특하고 자연스러운 ‘지역 정체성’이 될 거라 생각한다. 우치다가 정리하고 있는 공유지(커먼)란, 재산이나 지혜, 기술을 다음 세대에 넘겨줄 의무가 있는 선대인들의 공동체에서 기원한 것으로, 그래서 공유지란 다음 세대를 의식한 공동체 윤리, 삶의 방식을 내포한다. 정리하자면 윤리의식이나 삶의 방식과 동떨어진 채, 고기를 굽거나, 스카이 타워 같은 대형 구조물 설치 등으로 지역 정체성을 간단히 ‘랜드마크’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우치다는 민간 업체에 업무를 위탁한 규슈의 한 시립도서관을 다녀오고 나서 이 책의 제목처럼 생각하게 됐다. 위탁 이후 도서관은 향토사처럼 인기 없지만 귀중한 자료들을 폐기하고, 카페를 들이는 등 방문자 수를 늘리는 데 몰두한다. 실제로 전보다 방문객 수는 두 배로 늘어난다. 이것으로 도서관의 사회적 유용성이 좋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시장 원리에 따라 주변이 파괴될수록 어떤 공간만은 “초월적인 것, 외부적인 것, 미지의 것”에 닿을 수 있는 여백으로 남아야 한다. 올해도 군은 용봉산, 남당항 등에 관광 거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지만, 출판 시장이 위기를 맞은 것처럼 군민이 ‘소비자’로 위축될수록 공동체로서의 홍성에도 득이 될 리 없다. 우리에게도 공유의 감각을 회복할 ‘쇄신’의 기회가 있으려면, ‘죽은 자와 연결’될 최후의 보루들, ‘좁은 나’를 순간이나마 확장해 줄 장소들, 이를테면 도서관, 산 그리고 바다엔 어쩌면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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