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제일고등학교 58회 졸업생 김동춘(64) 씨

1947년 광천읍 신진리에서 태어난 김동춘(64) 씨는 쉰 살 부모의 늦둥이 막내아들로 태어나 산 좋고 물 좋은 고향에서 덕명초등학교, 광천중학교를 졸업하며 남들과 같은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다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이후 김동춘 씨는 학업과 농사 짓기를 병행해야했기에 다른 이들보다 아침을 일찍 맞고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부지런함을 길러야 했다.
1963년도에 광천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약 2년여 간의 학교생활은 김동춘 씨에게 고난의 연속인 시간이었다. 혈기를 주체할 수 없었던 탓일까, 사춘기의 홍역 때문이었을까. 김동춘 씨는 “나 자신이 잘났다고 착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부기시간과 주판시간만 되면 선생님한테 시간마다 매를 맞고 죄인처럼 허둥대며 보냈다. 말썽도 많이 피웠다.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닐 만큼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김동춘 씨는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을 1년여 앞두고 학교를 중퇴했다. 품속에서 꺼내 보인 낡은 주판2급 자격증은 1963년도에 취득한 것으로 못다 한 학업에 대한 열망을 대신하고 있었다.
김 씨는 중퇴이후 성공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군대를 다녀오고 무역회사와 인쇄회사의 말단에서 직장일을 배우다, 그를 눈 여겨 보는 거래처 독지가의 눈에 들어 스카웃 제의를 받기에 이르렀다. 61세에 정년퇴직을 하기까지 한 개인의 재산과 건물을 관리했다고 한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모든 일을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던 김 씨의 삶에 어느덧 안정적인 여유가 생긴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는 항상 예상치 못한 시기에 터지고야 만다. 1996년도에 2층 높이의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김 씨는 세 차례의 대수술을 받았고, 현재 척추장애 5급 판정을 받은 상태이다. 김 씨는 “무척이나 힘든 시기였다. 고통의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항상 곁에서 힘을 주는 친구들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정년퇴직 이후 고향인 광천으로 내려왔고, 늘 가슴 한 켠에 숙제로 간직해온 고등학교 졸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모교인 광천제일고등학교에 복학했다. 45년만의 복학이었다. 광천제일고 역사상 유례없는 만학도의 등장이기도 했다. 유통정보과 2학년으로 복학한 김 씨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할아버지’, 가끔은 ‘오빠’로 불리며, 어린 동급생들과 우정을 만들어갔다. 광천제일고 김철중 교장은 “새벽같이 학교에 와 빈 교실을 지키며 공부를 하는 모습에서 많은 학생들이 교훈을 얻었다. 인생선배이자 같은 학급의 동기로써 때때로 다독이고 건전한 생활로 모범을 보이는 모습에서 학교 선생님들도 ‘선배님’으로 모시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광천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죽마고우로 지낸 김주호(광천지역학교 통·폐합 추진위원위원장) 씨도 김동춘 씨의 학교와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주호 씨는 “학교는 물론이거니와 매일같이 광천도서관에 출·퇴근하다시피 하면서 광천지역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도부장 선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근상, 모범상, 봉사상, 선행상 등 김동춘 씨가 광천제일고에 복학한 이후 받은 상장들이 김 씨의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김동춘 씨는 16일, 드디어 고등학교 졸업장을 품에 안게 됐다. 김 씨의 졸업장은 19살 고등학생들의 졸업장과는 감동의 무게가 다르다. 광천제일고는 김동춘 씨의 형설지공(螢雪之功)을 기리기 위해 졸업장과 더불어 졸업기념패를 준비했다. 졸업식이 열릴 강당을 돌아보는 김 씨의 눈빛에는 설레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묻어나왔다. 김동춘 씨는 “학교에 복학하고 졸업을 하기까지 살집을 선뜻 마련해 준 이병천(산림조합장)과 학비를 지원해준 허운(미도식당), 김주호에게 한없이 감사하다”며, “나를 도와준 친구들의 도움이 헛되지 않도록 만학의 꿈을 잃지 않겠다”는 마지막 소감을 전했다.
김 씨는 요즘 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자신과 같이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나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노년의 삶을 보내는 자신의 모습을 종종 그려보곤 한다. 아직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동춘 씨. 만학의 꿈을 이루며, 지역사회 곳곳에 긍정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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