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다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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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다시보자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9.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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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며 ‘한가위’ 또는 ‘중추절’이라고도 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추석(秋夕)’은 그냥 ‘가을 저녁’이다. 더 좋게 말하면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나 ‘유난히 달이 밝은 가을날’ 정도가 된다. 추석의 어원에 대해 정설로 알려진 것은 없으나, 사기(史記)의 ‘천자춘조일 추석월(天子春朝日, 秋夕月: 천자가 가을 저녁에 제사 지낸다)’이라는 구절에서 왔다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크다’, ‘가위’는 ‘가운데’라는 의미가 있는 순 우리 말로, 신라 때에는 ‘가배(嘉俳)’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타나 있다. 보름달이 뜨는 음력 8월 15일이 ‘한가위날’이며 ‘가윗날’이라고도 한다. ‘중추절(仲秋節)’은 중추(8월을 뜻함)에 있는 큰 절기라는 뜻으로,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에서도 사용하는 단어다. 예전 달력에는 이 말이 병기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추석, 한가위, 중추절’ 중에서 추석만 유독 애매한 뜻을 가지고 있는 셈이며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올해는 유난히 추석이 빠른 편이다. 들판의 벼는 아직 황금색에 이르지 못했고, 가을을 대표하는 여러 과일 또한 제 빛깔을 내지 못하고 있다. 추석이 이렇게 빠른 이유는 당연하게도, 양력과 음력이 일치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해가 빠르면 다음 해가 늦는 것이 일반적이다. 올해는 9월 10일이지만 내년에는 9월 29일이 추석이다. 2014년에는 9월 8일에 닿기도 했는데 ‘이러다가 8월에 추석이 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추석이 빠르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여름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날씨가 덥고, 여름휴가가 끝나자마자 추석을 맞게 되니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심적인 부담이 생긴다. 또한 오곡백과가 무르익지 않아 명절 분위기가 나질 않고 제대로 익은 햇곡식과 과일을 차례상에 올리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이른 추석을 반기는 것은 바로 추석 연휴가 덤으로 가져다주는 ‘대체휴일’이 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는 광복 후인 1946년에 공휴일로 지정됐고, 1989년부터는 추석 앞뒤로 하루씩을 더해 3일간의 연휴가 됐다. 2014년부터는 대체휴일제가 시행돼 추석이 공휴일과 겹치면 하루를 더 쉬게 됐다. 

이런 까닭으로 10월 초에 추석이 닿으면 개천절 한글날 등과 섞이면서 추석 연휴가 상당히 길어지는 ‘즐거운’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타이틀을 추석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10월 연휴와 무관하지 않다. 통계에 의하면 명절 기간 벌어지는 ‘민족의 대이동’과 ‘해외 출국자수’에서 추석이 ‘설’보다 근소하나마 우위에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는 것이 오랜 풍습이었다. 미리 벌초를 하지 못하면 추석 당일에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벌초(伐草)는 ‘처삼촌 벌초하듯’이라는 말처럼 우거진 풀을 대충 친다는 뜻이 있고, 참초(斬草)는 풀을 베어내는 것이며, 금초(禁草)는 풀이 나는 것을 아예 금할 정도로 정성들여 묘를 손질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추석의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벌초와 성묘를 미리 하고 추석 당일에 차례만 지내는 것은 흔한 일이 됐고, 차례가 끝나면 집안 어른들의 잔소리를 피해서 조기 귀경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혼자 사는 형태가 늘다 보니 추석이 명절 아닌 ‘연휴’로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도 생겨났다. 추석빔도 볼 수가 없고, 심심풀이 ‘고스톱’도 휴대폰 게임에 밀려난 지 오래됐다.

예전에는 아무리 먹고살기 바쁘고 여유가 없더라도, 고향 집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고 차례를 함께 지내는 것이 명절을 대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이었다.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서 밤을 새우고,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가득 찬 열차를 타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모여 쌓인 이야기를 새벽까지 하는 것이 흔한 명절 풍경이었다.

지금은 서로 간에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보는 것이 휴대폰만 들면 언제나 가능한 시대다. 명절 때 얼굴보기 위해 내려가지 않아도 되고, 부모님의 정성이 담긴 음식은 보자기에 싸가지 않아도 택배가 집으로 배달해 주며, 승용차가 넘쳐나서 더이상 열차표를 끊지 않아도 된다. 먹고 사는 데에 여유가 있어서 추석 ‘명절’ 대신 여행 ‘명소’를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은,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명절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근 유교문화의 정수인 성균관에서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발표했다. 상에 올리는 음식을 최대 9개로 정했는데, 송편, 나물, 구이(산적),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 기본음식에 육류, 생선, 떡이면 족하다고 밝혔다. 차례상이 부담돼 명절을 생략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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