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문화 간직한 ‘홍성읍’ 과거와 현대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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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문화 간직한 ‘홍성읍’ 과거와 현대의 공존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2.09.23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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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재의 홍주낭만기행 ①전통과 현대의 조화, 홍성읍

한 작가는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형식인 여행기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다양한 실패담과 예상치 못한 역경들이 담겨 있다. 가장 효율적인 일정을 세워 바삐 취재를 다니던 홍성이 아닌 땅에 발을 딛고 천천히 둘러본 홍성, 기자의 시선이 아닌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홍성을 새로운 목소리로 들려주고자 한다. 읽을 만한 여행기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에 여행의 목적이나 구체적인 계획도 정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익숙해진 홍성에서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돌아와 지루한 여행기를 들려주게 될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홍성의 11개 읍·면을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하며 경험한 일들과 방문한 장소들, 느낀 점들을 기록하려 한다. 한 주에 한 곳씩 11주에 걸쳐 진행될 이 여행을 통해 어떤 고난을 겪고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박한 행장을 꾸려 젊음을 무기로 무작정 길을 나섰다.<편집자주>

 

첫째날

홍성에 대한 내 첫인상은 홍주읍성이다. 나는 지난해 4월 처음 홍성에 내려와 부동산 중개인의 차를 타고 홍주읍성을 지나며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웅장한 전통 건축물은 단숨에 나의 시선과 마음을 훔쳐갔다. 나를 사로잡았던 홍성을 다시 만나기 위해 지난 17일 홍주읍성을 방문했다. 성곽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까치는 늦은 오후까지 나뭇가지에 앉아 울고 있었다. 

눈을 감고 온갖 소리에 집중했다.

자동차 경적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행사가 열린 여하정 뜰에서는 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씩 자전거 체인이 돌아가는 소리도 들렸다. 

성곽 주변에 심어진 나무 아래 마련된 의자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인은 잘 익은 감 2개를 신문지 위에 올려놓고 행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근처에 앉은 후에도 한참을 더 앉아 있던 노인은 감에 묻은 흙먼지를 신문으로 툭툭 털어내더니 다시 신문지를 펼쳐 감을 싸들고 길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홍주읍성 홍화문에 올랐다. 펼쳐진 도심 풍경 속 우뚝 선 웨딩홀과 관광호텔건물이 눈동자에 담겼다. 영광스러웠던 전성기를 지나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듯 보였다. 사색을 뒤로하고 행사가 한창인 여하정 일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년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청년보다는 가족단위 방문객과 아이들, 청소년들이 더 많이 보였다.

‘청년들은 부푼 꿈을 안고 홍성을 다 떠났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는 부스에 눈길이 멈췄다. 2500원짜리 소시지 구이와 닭꼬치를 사먹었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빨대가 꽂혀있는 4000원짜리 코코넛 열매도 구입했다. 태어나서 처음 코코넛을 먹어본 소감은 미지근했다. 아주 달지도 않았고, 그리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 열대 휴양지를 연상시키는 겉모습 하나만큼은 봐줄만 했다. 

금세 저녁이 됐다. 홍성에 살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 하나를 불러 홍성읍 대교리에 있는 한식뷔페를 찾았다. 단돈 8000원에 마련된 음식을 무한정 먹을 수 있는 ‘내포기사식당’은 업무 차 홍성을 자주 방문했던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식당이다. 혼자 사는 자취생에겐 이만한 메뉴도 없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과 맛난 반찬, 시원한 국 한 그릇이면 장땡이다. 맛이 좋아 과식을 해버렸다. 
 

내포기사식당에서 먹은 저녁식사.

식사를 함께한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숙소를 알아봤다. 1박에 4만 5000원 가격으로 숙소 예약 앱에 올라온 홍성읍 월산리 소재 ‘조이모텔’을 가명으로 예약했다. 굳이 실명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굳이 가명을 쓰지 않을 이유도 없다. 나는 여행지에서 식당이나 숙소를 예약할 때 가명을 곧잘 사용하는 편이다. 여러 사람이 어울리며 부대끼고 지내는 삶의 터전과 

소란한 일상에서 벗어나 철저히 아무것도 아닌,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홍성읍과 홍북읍의 경계에 있는 이 숙소는 잘 정돈된 순백색 시트로 나를 맞이했다. 화장실도 넓고 깔끔했다. 이날 밤 나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있다 곧바로 잠에 들었다.  
          

둘째날

이른 새벽, 추위에 떨며 잠에서 깼다.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잠에 든 것이 화근이었다. 간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며 어슴푸레한 창밖을 바라봤다. 산과 나무가 전해주는 풀내음을 만끽했다. 풀벌레 소리가 들렸고, 조금 후에는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새벽 5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소박하게 꾸린 행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벌써 세 번도 넘게 읽은 책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새 책처럼 읽혔다. 작가의 참신한 생각에 혼자 싱겁게 웃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전 10시 무렵 잠에서 깼다. 11시부터 홍성군장애인스포츠센터에서 진행될 홍성군자율방범연합대 결의대회 취재 일정이 있어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장애인스포츠센터 바로 옆에 있는 홍주종합경기장에서는 홍성읍민체육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체육대회에 방문해 잔치국수와 수육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자원봉사 청소년들의 친절한 응대에 기분이 좋았다. 

첫 여행지였던 홍성읍은 ‘도심 공동화’라는 위기에 직면해있지만 아직까지는 사람이 북적이고 도시의 소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월산리 소재 조이모텔 객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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