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과 상업의 도시, 토굴새우젓·조선김의 고장 ‘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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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과 상업의 도시, 토굴새우젓·조선김의 고장 ‘광천’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2.09.29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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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재의 홍주낭만기행 ②잠들어 있는 용, 광천읍

한 작가는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형식인 여행기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다양한 실패담과 예상치 못한 역경들이 담겨 있다. 가장 효율적인 일정을 세워 바삐 취재를 다니던 홍성이 아닌 땅에 발을 딛고 천천히 둘러본 홍성, 기자의 시선이 아닌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홍성을 새로운 목소리로 들려주고자 한다. 홍성의 11개 읍·면을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하며 경험한 일들과 방문한 장소들, 느낀 점들을 기록하려 한다. <편집자주>  

 

광천이 품은 아름다움

‘광천’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활발한 해상교통과 철도변에 자리한 서해안 중심도시의 이미지다. ‘관청 많은 홍성에 가서 아는 체하지 말고, 알부자 많은 광천에 가서 돈 있는 체하지 마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명성을 날리던 옛 시절의 광천. 많은 여행자들이 그 때의 향수와 모습을 찾기 위해 광천을 방문한다. 지난 주말 방문한 광천은 마치 잠들어 있는 용을 연상케 하는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장항선 옹암 건널목은 광천역으로 들어오는 기차가 속도를 줄이며 지나는 철도 건널목이다. 기차가 지날 때는 경보기가 울리며 빨간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고 차단 막대기가 내려간다. 기차가 철도 위를 지나는 소리, 연신 울려대는 종소리를 동시에 들으며 기차가 지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퍼레이드가 연상된다. 지레짐작이지만 광천에서 자란 사람들은 한 때 이 퍼레이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건널목 앞을 서성인 기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다. 
 

뉴트로 감성이 느껴지는 광천의 한 건물.
뉴트로 감성이 느껴지는 광천의 한 건물.

광천의 오래된 골목과 건물에도 왕년의 추억들이 묻어있다. 수많은 눈동자와 목소리, 바쁜 걸음의 세월이 그곳에 담겨 있다. 광천이 강한 기운을 뿜어낸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의 흔적이 서려있는 사물이나 장소에는 강한 기운이 담긴다. 오래전 쓰던 평범한 그릇이 지금은 어느 박물관에 전시돼있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애들은 이 기운을 ‘뉴트로’라고 부르며 열광한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카페나 식당들이 최근 몇 년 사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나른한 주말 오후, 느린 걸음으로 마주한 광천은 길목마다 노스탤지어 덩어리가 가득했다. 아직 한계를 잘 두지 않는 젊은 눈동자엔 그 모든 것들이 가능성으로 담겼다.
 

광천전통시장에서 파는 토굴새우젓.

정겨운 소음이 있는 광천

“찍지 마러~!” 
광천전통시장에 줄지어 나란히 누워 있는 생선을 촬영하다 아주머니의 우렁찬 고함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찍으면 안 되나요?” 

나와 눈이 마주친 생선장수의 아들은 멋쩍게 웃는다. 

“우리 초상권 비싸게 받어.” 
매장 안에서 나온 다른 아주머니가 거들며 말했다. 
‘생선에도 초상권이 있었던가?’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이내 길을 나섰다. 24일은 장날이었다. 광천전통시장 오일장은 49장이라고 한다. 날짜에 4와 9가 들어간 날에만 열리는 장이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온갖 젓갈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광천의 명물 토굴새우젓뿐만 아니라 황석어젓, 갈치액젓 등 도시에서 자란 내겐 다소 생소한 젓갈도 많이 보였다. 생선 주위에 모기향을 피워놓은 가게도 더러 있었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확인을 하기 위해 상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모기향은 파리 쫓아내려고 피우는 거예요?”
“예~ 이거 피워놓으면 파리가 안 꼬이더라고.”
 

생선, 대하, 꽃게, 바지락, 닭다리 튀김, 뻥튀기, 땅콩빵, 잉어빵, 국화빵, 핫도그 등 광천장에는 없는 게 없었다. 물론 없는 것도 있다. 그만큼 먹을거리가 많았다는 의미다. 각종 튀김과 핫도그를 함께 팔고 있는 한 노점상에서 핫도그를 구입했다. 어릴 때 먹던 그 맛이었다. 오랫동안 손님이 없었는지 토마토 케찹이 대량으로 쏟아졌다. 한 번 뿌려지면 다시 사용될 일이 별로 없으니 입구에 묻은 소스가 굳어버리는 것이다. 

“오전에는 사람 많이 왔었어요?”
“아니~ 사람이 없어… 어지간히 없어 젊은 사람도 없고… 그래서 다 나가잔혀….”
어느 좁은 골목에는 물건을 팔러 장에 나온 상인들이 옥신각신 떠들고 있었다. 
“아스콘 깔려 있으면 다 정부소유여~ 아줌마 말은 법적 근거가 없다니까 글쎄?” 

자리싸움인 듯 했다. 시장을 떠나 광천역 인근의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저녁엔 마침 광천에서 식사 약속이 있어 맛난 불고기를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까지 걸어갔다. 2층에 있는 한 주점에서 드럼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렸다. 작지 않은 소리였다. 올라가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금세 마음을 접었다. 내 또래는 없을 것 같았다. 

숙소에 도착해 창문을 열고 바라본 광천의 밤은 부드러웠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때때로 축산의 향기도 방에 머물다 사라졌다. 다음 주 여행지는 홍북읍이다. 이번 주도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광천역 인근 숙소 객실 내부 모습.
광천역 인근 숙소 객실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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