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민중, 민주, 민족, 통일의 영원한 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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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민중, 민주, 민족, 통일의 영원한 불기둥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3.16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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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래전 유고시집 〈반도의 노래〉

1963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신중학교와 송산고등학교를 거쳐 1982년 숭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줄곧 학생운동의 선봉에 서 왔던 그는 인문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해 오던 지난 1988년 6월 4일, “광주는 살아 있다. 끝까지 투쟁하라!”,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부파쇼 타도하자!”를 외치며 분신, 이틀 후인 6월 6일 운명하였다. 그의 장례는 6월 12일 ‘민중해방 열사 고故 박래전 민주국민장’으로 치루어 졌으며, 그의 유해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앞 문장은 ‘도서출판 세계’가 1988년 8월 ‘세계시선’ 첫 번째로 펴낸 고 박래전 유고시집 <반도의 노래>에 밝힌 시인 박래전 열사의 약력이다.

시인이 분신으로 25년의 짧은 생을 마친 지 2개월 후에 유고 시들을 모아 펴낸 시집에는 시인의 육신은 주검이 됐으나 시인의 영혼은 노동, 민중, 민주, 민족, 통일의 영원한 불기둥이 되어 찬란히 살아 있다. 대학생 신분인 시인이 건설 노동자로 노동을 한 체험을 시화한 시 ‘질통’, 일제 강점기 이후 불의한 독재에 맞서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워 온 민중을 노래한 시 ‘진달래’, 분단돼 신식민지 파쇼공화국이 된, 민족의 통일을 염원한 시 ‘빼앗긴 땅에서 부르는 노래’, 앞서 예시한 시들을 모두 함축한 장시 ‘부활하라, 오월이여! 해방의 불꽃으로!’ 등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부른 탁월한 절창들이 수록됐다. 이들 중 장시는 1987년 5월 항쟁 계승주간 중, 숭실대의 다형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공동창작한 작품으로, 공동창작에 참여한 다른 이들의 동의를 얻어 수록했다. 또한 시인이 부모님, 백만학도,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남긴 세 개의 유서가 시인의 핏빛처럼 담겼으며, 시인의 형 인권운동가 박래군 씨가 쓴 발문을 대신한 글이 통절하게 담겼다. 시 ‘질통’ 전문을 소개한다.

모래알이 구르고/자갈이 밟힌다/2층으로 올라가는 발판을 타면서/나를 부정하려 한다//‘나는 대학생이 아니다/지금 여기서 나는 노가다판의 질통꾼이다’//그러나 옥상꼭대기에 잰걸음으로 다다르면/이것이 착각임을 곧 깨닫는다/수십 년을 발판타기에 매달린/손 씨의 삐꺽거리는 발걸음이 저만치 아래에 있다/“젊은이는 달라”/그리고 곧 부정한다/“대학생이 참 잘해”/대학생-지금의 나는 대학생이 아니다/부정을 해도 곧 그것은/자기 긍정에 지나지 않는다/넌 이방인이다//아무리 감추려 해도 난 이방인일 뿐이다/같은 땅에서 살아도/같은 발판을 타도 신분이 다른/이방인일 뿐이다.

고(故) 백기완 선생은 시집 서문에서 “스스로를 일으키는 자는 언젠가는 민중의 역사 속에 하나 되어 뜨겁게 뜨겁게 만나리라 했더니 마침내 순결보다 더 맑은 혁명, 혁명보다 더 해맑은 삶을 시로 쓰고자 그대는 먼저 갔구나”라며 “온몸으로 앞서 달려나간 저 까마득한 열사의 불빛 울며불며 쫓아가는 역사만 남은 이 빈터에서 마지막 벅찬 고비 최후의 승점을 단숨에 뛰어넘는 사람만이 아는 매몰찬 쇳소리 나는 그 짜릿한 쇳소리를 듣는다”고 탄복했다.

심산 문학평론가는 뒤표지 글에서 “박래전의 시가 주는 감동은 그것이 ‘열사의 유고시’라거나 ‘최초로 시화된 학생운동의 기록’이라는 특수성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는 그 자체로서 분명 민중적 민족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김용택의 서정적이면서도 저항적인 농민정서, 박노해의 한껏 고양된 투쟁의 정서, 그리고 김남주의 시편에서 발견되는 드높은 전사의 품성 등이 고르게 녹아들어 있는 경이로운 지평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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