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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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
  • 권기복(홍주중 교감·칼럼위원)
  • 승인 2015.06.1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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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교 학생 한 명이 전학을 갔다.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3학년이다. 거주 이전이 되어 집 가까이 편하게 학교를 다니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본인이 우리 학교가 싫어서 떠나는 것도 아니다. 야간 학습 참여는 싫어도, 학교에서 노는 것이 좋아서 오후 9시 반에 학교를 나가던 아이였다. 휴일이나 방학 때에도 어슬렁거리며 찾아와서 친구들과 어울리던 아이다. 지난 해, 11월 4일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에서 강제전학이 결정되었던 아이였다. 강제전학 조치 이전에 권고전학을 요구한 바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학폭위의 어설픈 결정도 있었다. 학폭위의 결정으로는 권고전학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내면에는 위 학생으로부터 내 자식, 내 학교를 보호하려는 지나친 이기심이 내재되어 있었다. 위 학생으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동급생에게 금품갈취를 한 것이 학폭위를 열게 된 계기였지만, 그 이전에 분노조절이 잘 안 되어 책걸상을 뒤엎거나 책과 공책을 북북 찢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언제 자신이나 재학생이 상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학교의 불안감, 내 자식이 저 학생으로부터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피해 학생과 또 다른 학생들의 학부모, 게다가 처음부터 가해학생을 전학시키지 않으면 내 자식을 전학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피해 학생의 아빠! 이런 점들이 개선의 여지를 두지 않고, 아이를 전학으로 몰고 갔다. 권고 전학을 수긍한 가해 학생의 아빠는 한두 군데는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문이 금방 퍼지는 시골 동네의 학교에서 받아줄 리가 만무했다. 필자는 학폭위 절차대로 양가에 통보하고 상급기관에 보고를 하라고 했지만, 학생부장은 금방 전학을 갈 거라면서 절차를 미루었다. 결국 그러다가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위 학생은 꾸준히 학교에 잘 나왔다. 그 후로는 금품갈취 건도 없었고, 피해 학생을 괴롭히는 일도 없었다. 피해 학생도 밝은 표정으로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었다. 필자도 두 학생을 만날 때마다 상황을 살피고, 주의 당부를 하곤 했다. 결국 피해학생 아빠는 가해학생을 전학시키지 않는다며, 해당 교육지원청에 항의를 하였다. 그 이전에 그 아빠를 만나서 설득시켜 보려고 하였지만 막무가내였다. 교육지원청에서는 이미 결정된 사안이기 때문에 강제전학을 안 시킬 수가 없다면서 교육장명으로 전학조치가 이루어졌다. 하급기관인 학교로서는 그 명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학교폭력 사안을 얼버무렸다는 불명예도 떠안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놓였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모르고 할머니와 아빠 품에서 자란 아이였다. 아빠가 무슨 직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부유한 형편도 아니었다. 분노조절이 안 될 때와 금품갈취 건만 빼면, 심성이 순수하고 예의범절도 바른 아이였다. 언제 어떤 사고가 날지는 몰라도, 본교를 떠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도 복도에서 서성거리는 그 아이를 보았는데, 시급하게 1학년 단체 건강검진을 인솔하여야 해서 말 한마디 나눌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지난 주 목요일에는 위 학생이 전학 갈 학교에서 교감선생님이 교육지원청으로 부터 통보를 받고 문의 전화를 한 바 있었다. 지난 상황을 대략 전하고, 우리 학교의 사정을 말씀드리자 오히려 그 쪽에서 필자를 다독거려 줬다. 잘 보살필 터이니, 염려 말라는 위안의 말씀도 건네줬다. 위 학생에게도 우리 학교에 비하면 규모가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그 학교가 잘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학생을 강제로 떠나보낸 아픔은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다.

지난 학폭위 당시에 나만이라도 전학은 쉽사리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였더라면, 그리 쉽게 전학 결정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일로 다시는 성급한 결정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우리 학교를 강제로 떠나게 된 아이와 아빠에게 교직자로서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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