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16>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만취 김용복 화백
상태바
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16>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만취 김용복 화백
  • 장윤수·김경미 기자
  • 승인 2015.11.23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만취 김용복 화백

“보일 듯 하면서도 보이지 않으며, 맘과 뜻대로 되기보단 항상 부족한 것이 바로 예술이 아닐까요.”
가을 하늘이 유난히도 높던 날, 만취 김용복(57) 화백을 만났다. 김 화백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크레용으로 초가집을 그리기도 했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연필로 연예인들의 얼굴을 스케치하기도 했는데 보는 사람마다 똑같다며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 화백의 아버지는 그림 그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며 만류를 하셨다. 그럼에도 김 화백의 어머니는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그렇게 김 화백은 예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됐다.

김 화백은 “고향은 홍성이지만 예술의 길은 한이 없다는 생각으로 18살의 나이에 고향을 멀리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전라도 광주로 내려가, 의제 허백련 선생님 문하에 들어가 공부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공부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나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의제 허백련 선생 생전엔 전국 각지에서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연진회’라는 모임에 들어가 공부를 했고 김 화백도 그곳에서 공부를 했다. 김 화백이 미술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농사를 져 번 돈으로 하숙비를 부쳐줬다. 김 화백은 공부를 하다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마음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 장곡면 지정리가 고향인 김 화백은 “지금은 인천에서 자리를 잡고 서화실을 운영하면서 예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며 “고향에 아직도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종종 내려와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어머니께서 제가 어릴 때부터 늘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술은 끝까지 가야하는 길이므로 절대 포기하지 말고 살아생전에 잘 되기를 기원한다’는 말씀이죠. 어머니의 뜻대로 더 나은 예술가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강의하고 연구하며 노력 중에 있습니다.” 문인화를 그리는 김 화백은 “묵으로만 그리는 그림을 묵화라 하고, 채색하는 그림을 문인화라 한다”면서 “예술의 혼과 정신을 담아 선과 선을 일필휘지로 그려내는 것이 문인화”라고 말했다.

“내가 남에게 나의 예술세계나 작품을 알리려고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가 열심히 임해 누군가가 알아주는 것이 최고의 예술의 경지가 아닐까요.” 김 화백은 “꽃은 피고 지는 것이지만, 인생은 계속해서 변해가는 것”이라며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언제까지 예술의 길을 걸어야 마음에 꼭 드는 훌륭한 작품이 나올지 마음으로만 짐작해본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김 화백은 “예술이 좋아서 하는 것이지, 내가 잘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예술은 잘하든 못하든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술을 한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의 예술을 평가한다는 것은, 남의 가정을 흉보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자와 사는 것이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일이 아닌 것처럼, 내가 사랑해서 하는 예술은 실력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 (닭)사랑싸움 70x58cm.


대표작을 묻는 질문에 김 화백은 “나 자신이 흥에 겨워서 선과 선을 따라 묘사한 것이 좋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자신감 있게 선을 묘사할 때 진귀한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화백은 광주에서 공부를 하고 과천에 살다가 인천에 자그마한 집이 있어 이사를 하게 됐다. 김 화백은 현재 인천에서 서화실을 운영하며, 인천여성복지관, 고양시청, 서부소방서 등에 출강해 제자들을 양성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김 화백은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문인화를 배우시는데 그 분들을 가르칠 때가 가장 즐겁고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제가 가르치는 분들 중에 85세이신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선생님을 만나 너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시면 그보다 더 행복할 때가 없죠.” 김 화백은 지난 10일과 11일에는 추사고택에서 열리는 추사휘호대회에 제자 15명을 출전시키기도 했다. 김 화백은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덧붙였다. “고향에 내려와 작은 예술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그래서 유치원 어린이부터 일반인까지 누구나 구경도 오고 예술에 대해 마음껏 의견을 공유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싶죠.”

 

만취 김용복 화백은…
충남 홍성 출생으로 인천대학교 행정대학원 10기 수료, 고대대학교 식품과정 3기 수료, 아주대 산업대학원 경영학과 10기 수료, 고아주 연진회 미술원 수료, 옥산 김옥진, 금봉 박행보, 계산 장찬홍, 창현 박종회 선생 사사,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 동아미술제 입선,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입선, 대한민국 서도대전 초대작가, 목우회 공모전 입선, 전주 대사습놀이 서예백일장 휘호대회 초대작가, 추사 휘호대회 초대작가, 대전 한밭 휘호대회 초대작가, 충주 김생서예대전 초대작가, 충청 휘호대전 초대작가 등으로 활동 중이다. 단체전 및 그룹전으로 창묵회 회원전(백악예전), 의정부 교도소 재소자 돕기 자서전, 인천문인화회원전에 참여한 바 있으며 세종문화회관 제1회 개인전과 홍성문화원 제3회 개인전을 비롯해 지금까지 총 13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