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사선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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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사선을 넘는다!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11.17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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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모영 감독 ‘올드 마린보이’
올드 마린보이 2017.11.02 개봉 | 85분 | 전체 관람가

파란색의 심연이 펼쳐지는 고요한 바다 속, 박명호 씨가 노란색 공기줄 하나에 의지해 바다를 헤치고 다니며 소라, 멍게, 문어 등을 잡는다. 박명호 씨는 머구리다.

북한과 바로 붙어 있는 강원도 고성 저도 어장은 매년 4월 1일에 개장한다. 이날만큼은 해녀배, 그물배 등 300여 척 이상의 배가 한꺼번에 나온다. 남한과 북한의 군사분계선인 그 바다에서는 다른 한편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시작된다. 박명호 씨는 지난 2006년 남한으로 넘어왔다.
“17살부터 군대 생활을 하면서 북한의 흥망성쇠를 겪으며 남한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들과 합의하는데 6~7년의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 탈북 경로는 중국을 경유하는데 우리는 서해바다를 경유해 가기로 했다. 바다에서는 남북한 군인 모두를 피해야 한다. 그 때의 공포는 마치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5월 24일 인천 옹진군으로 들어왔다.”

남한에서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를 고민하던 박명호 씨는 군대 시절 머구리를 배웠다. 머구리는 9kg의 잠수복을 입고, 15kg이 되는 투구를 쓰고, 앞 연추 11kg, 뒤 연추 10kg, 신발 각 6kg를 몸에 걸치고 바다로 내려간다. 몸무게를 더하면 거의 120kg에 달한다. 모든 머구리가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은 의식에 가깝다. 마치 사람의 껍데기 같은 잠수복을 입고 앉으면 다른 이의 도움이 없이는 투구와 신발을 신을 수 없다. 모든 의식을 마치고 바다로 들어가는 머구리는 바다 안에서만큼은 자유롭게 활보한다.

“머구리가 혼자 물에 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머구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생명줄인 공기 호스가 끊어지는 것이다. 머구리 혼자 자체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냥 죽는거다.”

그래서 머구리의 삶을 ‘저승 가서 벌어다 이승 가서 살다’고 표현한다. 매순간이 생과 사의 경계선에 놓여 있는 머구리는 ‘내가 오늘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우리 집 식구들이 오늘 먹을 쌀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박명호 씨는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화면에는 압도적인 파란색 바다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머구리의 삶이 그려진다.

박명호 씨는 탈북자다. 그래서 아무 연고도 인맥도 없다. 그저 네 가족이 전부일 뿐이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 모든 사람의 시선은 측은과 동정심이었다. 사람들은 탈북자를 노동력으로만 부린다. 만약 우리가 치고 올라가게 되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조건은 재력, 지력, 인력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은 체력 밖에 없다.”

그래서 박명호 씨는 미친 듯이 운동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잠수부 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몸이 불편하면 작업이 재미없어진다는 것이 박명호 씨 생각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밥을 물에 말아 한 술 뜨고 바다로 나간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운동을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박명호 씨 하루 일과다. 그 뒤에는 아내 김순희 씨와 큰아들 박철준과 둘째 박철훈 씨가 있다. 선장이 배에서 내리는 일이 생기면서 박명호 씨는 아들 철준을 부른다.

“아버지가 남한에 오기 전 그런 말을 했다. 엄마랑 나만 있으면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두 자식이 있으니 넘어가야겠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가족이 같이 일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가끔은 갑갑하고 힘들다.”

가족은 얼마 전 횟집을 시작했다. 손맛 좋은 부인 김순희 씨가 횟집을 운영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아무 연고 없는 곳에 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은 서로의 어깨를 기대며 오늘도 생과 사의 경계를 넘는다. 박명호 씨의 소원은  단 하나다.

“지금도 남한으로 넘어오던 그날 밤을 생각하면 두렵다. 그러나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늘 불안하고 나는 아직도 위험하다. 내 마지막은 바다가 될 것이다. 잠수복과 투구까지 씌워 그대로 땅에 묻히는 것이 내 마지막 소원이다.”
 

<영화의 한 장면>

잠수부가 명예롭게 죽는 방법은 바다에서 죽는 것이라고 말한다. ‘올드 마린보이’는 한국에서 탈북자가 살아가는 삶과 머구리의 삶이 교차되는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며 가장으로서의 삶을 보여준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다큐멘터리로도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진모영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만나는 출연자들, 다루는 소재들은 사실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만들면서 ‘사랑은 이런 거야’라고 했을 때, ‘올드 마린보이’를 만들면서 ‘가장들의 삶이란 이런 거야’라고 했을 때 결코 화려하거나 위대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사랑에는 참아내야 하는 것이 있고, 가족을 위해서는 누군가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 이는 결코 낡은 진리가 아니라,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위대한 진리라고 생각한다”고 연출관을 밝혔다. 평범해서 위대한 그 삶의 진리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다큐멘터리, 올드 마린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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