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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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의 삶
  • 정명순(물앙금시문학회 회장)
  • 승인 2010.05.2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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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모두가 예스(Yes)라고 할 때 노(No)라고 할 수 있는, 모두가 노(No)라고 할 때 예스(Yes)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어느 광고의 문안이었다. 소신 있는 삶을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평상시 노(No)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늘 편치 않는 예스(Yes)로 멈칫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다 단호하게 노(No)라고 해버린 날은 마음이 불편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많은 일과 고민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마음 좋다는 칭찬 뒤에 결단력이 없다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살아가다 보면 늘 이분법의 벽에 부딪힌다. 살아가는 일이 흑과 백으로만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이유와 상황은 이분법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가끔을 선을 밟기도 한다. 하지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원인은 선을 밟았다는 결과에 묻혀버린다. 그건 핑계로 보일 따름이다.

칭찬과 격려보다 비판이 주를 이루는 팍팍한 세상. 내 가치 기준에 맞춰 남을 비판하고 궁지로 몬다. 똑같이 맞불을 놓아 상대 죽이기에 나서 싸움이 점점 커져만 간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왜 서로를 헐뜯고 비판하는 것인지. 그런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뒤로 주춤 물러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흔히 하는 말처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을까. 부족하니 사람이 아닐까. 그러나 세상은 흔들리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듯싶다. 마치 한 건 건진 것처럼 끝장을 보려고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부족한 것을 서로 채워가며 삶이 최종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행복으로 함께 갈 수는 없는 것인지.

48세의 영국인 노라 메이 웰비는 남성과 여성을 번갈아 살다가 세계 최초로 법적인 중성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얻었다고 행복해했다. 그의 성별은 '논 스페서파이드(non-specified)' 즉 '성별을 구별할 수 없음'이다. 남자와 여자로, 흑과 백으로 구별할 수 없는 0.5의 삶과 가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어떨까.

이분법의 경계에서 밤은 더욱 깊고 바람은 거칠다. 너그럽게 덮어주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는 봄이 그립다.

바람이 지나도
정 명 순

바람이 지나야, 비로소
나무는 자신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살랑살랑 선을 넘어보기도 하고
속절없이 아무에게나 손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잎사귀 몇 개 털어내는 이별,
가지 꺾이는 아픔에 울어도 보며
빼곡하게 쟁여있는 그늘을 털어낼 수 있는
흔들릴 수 있는 건 행복한 일

바람이 지나도, 결코
바위는 자신이 흔들릴 수조차 없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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