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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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자전거
  • 이상헌(홍성여자고등학교 교사, 연극인)
  • 승인 2010.06.0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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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중국에서 오자마자 자전거부터 샀다. 3년 전 중국가기 전에 자동차를 조카에게 사용하라고 빌려주었는데 달라고 하기가 좀 그랬다. 조카도 자동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냥 사용하라고 했다. 새 자동차 구입 계약을 했는데 한 달 여가 지나야만 출고가 가능하다고 했다. 걸어다니기는 어렵고 그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자전거 문화가 일상화가 되어있다. 자전거를 타고 시장보기 출근하기 학교가기…. 특히 어떤 친구들은 신문을 보면서 자전거를 몰고, 자전거를 훔쳐 가는지 자전거를 몰면서 다른 자전거를 끌고 가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자전거 도사들이 많다. 또 자전거에 채소 등을 산더미처럼 싣고 다닌다. 그것은 땅이 평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또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가서도 제일 먼저 구입한 게 자전거이다. 고급 21단 기어 자전거를 360위안이라는 당시 거금을 주고 샀다. 허름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중국인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는 멋진 신형 자전거였다. 평지를 살짝살짝 페달을 밟기만 하면 쭉쭉 나가는 자전거는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잘도 나갔다.

한 일 년 정도를 그렇게 신나게 타고 다니며 텐진의 거리거리를 핥고 다녀 본토박이처럼 거리를 알 정도였다. 지리를 익히고 유적을 답사하는 데는 자전거만 큼 좋은 운행수단도 없다. 천천히 가면서 그 동네의 풍을 느끼고, 조그만 유적지라도 있으면 그냥 세워 놓고 노트에 기록을 할 수 있다.

관리를 잘 했지만 한 명의 도둑을 열 명이 지키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잃어버렸다. 만 3년이 넘는 동안 잃어버린 자전거만 해도 석 대가 넘는다. 오토바이는 샀다가 팔았고, 전동자전거도 구입했다. 귀국할 때 친구에게 자전거 한 대와 전동자전거를 무료로 주었다. 다음에 중국에 오면 빌려준다는 조건으로.

시골에 살고 있던 나는 시내에 나가려면 반드시 진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 고개는 지금은 조그만 고개에 불과하지만, 당시 어렸을 적엔 내가 본 가장 큰 고개였다. 열네댓 살 나는 멀리 한 번 가본 적이 없었다. 우리집은 자전거가 있었지만, 아버지 전용이어서 나는 그저 바라만 보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쯤에 가랑이를 넣어 자전거를 배웠다. 아버지가 먼 곳에 출타해서 계시지 않으실 때, 몰래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의 체인이 옷에 걸려 기름(당시 아브라라고 했다)이 묻었는데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자전거를 탄 증거라며 혼냈다.

중학교 입학하여 학교에 갈 때 진고개를 넘자마자 살을 에는 칼바람에 떨어야 했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며 씽 지나가는 친구들이 미웠다.

걸어 다니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서 나는 거의 혼자 외로움에 떨며 등하교를 했다. 지나가는 친구가 무거운 가방을 자전거의 핸들에 걸어주는 날은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를 갔고 또 돌아왔다. 가방을 실어주는 친구가 제일 좋았다. 우리집은 길가에 있어서 하교하는 날엔 가방을 우리집 대문 쪽에 놓고 가면 그만이었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불쌍한 듯 바라보는 듯한 시선 때문에 진고개를 넘은 다음부터는 약수터 쪽으로 혼자 터덜터덜 걸었다.

날이 따뜻해지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리라 마음먹고 정비를 해두었다.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어서 자전거 도로를 타고 출근을 한다. 신호등 앞에 줄지어선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내게 시선이 꽂힌다. 머리도 벗어지고 흰머리도 듬성듬성 있는 중늙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딱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아님 일찍 퇴직해서 등산이나 건강을 위해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소일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 나도 그 무리 속에서 자유를 구가할 텐데, 모두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마당에 자전거 출퇴근은 어찌 보면 이방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자전거 도로가 끊기고,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고, 일반도로에서 자전거 길로 올라가려면 턱이 있어 자칫 잘못하면 넘어진다. 평지도 아니고 가다보면 가로수도 걸리고, 보행자도 있어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된 자전거의 도시 경북 상주가 부럽다.

마침 엊그제 먹은 옻순의 영향으로 항문주위에 가려움 증이 있는데 힘을 주어 안장에 엉덩이를 붙이고 마찰을 하면서 자전거를 타면 가려움이 사라진다. 미풍을 맞으며 하얀 눈송이 같은 이팝나무 꽃잎을 어깨에 견장처럼 붙이고 멀리서 날리는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멋진 우리 홍성 시내를 자전거를 타고 누비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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